레버쿠젠의 손흥민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파리 생제르맹과 맞붙는다. 파리 생제르맹은 지난 시즌 프랑스 리게 앙 우승팀이며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었다. 비록 8강에서 FC 바르셀로나에게 덜미를 잡혔으나 원정 다득점에서 밀렸을 뿐 1~2차전 모두 비겼다. 올 시즌에는 리게 앙 1위, 챔피언스리그 32강 C조 1위를 기록하며 유럽 축구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추세다. 손흥민을 비롯한 레버쿠젠 선수들이 16강에서 쉽지 않은 경기를 펼치게 됐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레버쿠젠이 파리 생제르맹에게 밀린다. 스쿼드와 팀의 자금력을 봐도 레버쿠젠이 절대적으로 열세다. 두 팀의 최고 이적료를 경신했던 손흥민(1000만 유로, 약 144억 원) 에딘손 카바니(6400만 유로, 약 926억 원)의 엄청난 금액 차이를 봐도 선수층에서 파리 생제르맹이 우세다. 더욱이 레버쿠젠은 팀 전술도 매끄럽지 않다. 챔피언스리그 A조 6경기에서 역습에 치중하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 미드필더들의 창의성 부족, 왼쪽 풀백 불안(최근에 극복중인)을 노출했다.
[사진=손흥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딘손 카바니 (C) UEFA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그럼에도 레버쿠젠이 파리 생제르맹과 16강에서 대결하는 것은 다행일지 모른다. A조 2위 자격으로서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맹, 첼시 중에 한 팀과 16강에서 맞붙어야 할 상황이었다. 다섯 팀 모두 유럽 무대에서 막강한 경기력을 과시하는 팀들이나 파리 생제르맹은 다른 팀들에 비해서 '해볼 만 하다'는 평가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이전까지 한동안 유럽 무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를 기준으로 1994/9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2008/09시즌 UEFA컵(지금의 유로파리그) 8강 진출 이외에는 유럽 대항전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없었다.(폐지된 대회는 논외)
지금의 파리 생제르맹 전력이라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의 성과를 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지난 시즌에는 도르트문트에 가려졌으나 8강에서 FC 바르셀로나와 대등한 접전을 펼치며 언젠가 유럽을 제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올 시즌에는 카바니 영입에 의해 이전보다 전력이 더 좋아졌다. 이런 팀을 상대로 레버쿠젠이 8강 진출을 노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달성하려면 파리 생제르맹 같은 강한 팀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이제부터는 쉬운 팀과 토너먼트에서 상대할 수 없다.
손흥민은 팀의 간판 공격수 스테판 키슬링과 함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카바니와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이들이 16강 1~2차전에서 얼마나 골을 많이 넣거나 팀의 득점 과정에 기여하느냐에 따라 레버쿠젠과 파리 생제르맹의 운명이 엇갈릴 것이다. 손흥민이 즐라탄이나 카바니처럼 유럽 무대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아직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이 없었으며 정규리그 득점왕 경쟁을 펼쳤던 경험도 없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이었던 키슬링에 비하면 아직 '완성된 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손흥민이 분데스리가를 뛰어 넘어 유럽 무대에서 떠오르는 공격수로 진화하고 싶다면 즐라탄-카바니를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한다. 두 명의 유럽 정상급 공격수와 대등한 경기력을 과시하거나 또는 두 선수를 뛰어 넘는 클래스를 발휘해야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레버쿠젠의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내년 6월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의 돌풍을 주도해야 할 손흥민은 빅 경기를 많이 치러봐야 한다. 그래야 강팀을 요리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한다. 레버쿠젠이 승승장구할수록 체력 소모가 많아지는 부담이 따를 수도 있으나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손흥민은 즐라탄-카바니에게 안될 것이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비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손흥민은 이미 유망주 레벨을 넘어섰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12골 2도움 기록했으며 올 시즌에는 전반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분데스리가 7골 2도움, 시즌 9골 5도움 올렸다. 레버쿠젠에서는 윙 포워드를 굳히면서 함부르크 시절에 비해 팀 플레이와 수비력이 부쩍 향상됐다. 네이마르(FC 바르셀로나) 마리오 괴체(바이에른 뮌헨) 잭 윌셔(아스날) 같은 1992년생 동갑내기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경기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손흥민은 파리 생제르맹전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오른쪽 풀백 그레고리 판 데르 비엘과 매치업을 펼칠 것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준우승을 공헌했던 인물로서 올 시즌 상대팀 공격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면서 안정된 공격 전개를 과시하며 팀의 오른쪽 측면 뒷 공간을 책임졌다. 손흥민이 즐라탄-카바니보다 더 나은 경기력을 과시하려면 판 데르 비엘을 반드시 농락해야 한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16강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