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도르트문트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골을 터뜨렸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결승에 진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슈팅 6개를 날렸으나 유효 슈팅이 1개에 그쳤고 경기 내용까지 좋지 못했다. 왼쪽 허벅지 부상 후유증이 이번 도르트문트전 부진으로 이어졌고 챔피언스리그 7경기 연속골 도전까지 무산됐다. 4강 1차전에서는 동점골을 넣었던 장면을 제외하면 경기 내내 도르트문트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다.
호날두가 큰 경기에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12골)를 기록중이며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에 약한 징크스를 오래전에 극복했다. 그저 도르트문트전에서 불운했을 뿐이다. 4강 1차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고질적으로 독일 원정에 약했으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게 무려 4실점을 허용했다. 4강 2차전은 선수 스스로 힘든 경기를 펼쳤다. 부상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된 몸으로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끈질긴 견제를 받으며 팀의 기적을 연출하기에는 버거웠다.
4강에서 고생했던 호날두에게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실패는 뼈아프다. 2008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동시 수상(당시 두 시상식은 분리 운영) 이후 5년 만의 '세계 최고의 선수' 등극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현재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에 올라있으나 세계 No.1으로 복귀하기 위한 또 다른 성과가 없다는 것이 수상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지난해 FIFA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도 2011/12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고개를 떨궜으나 '한 시즌 최다골', '한 해 최다골', 2011/12시즌 프리메라리가 50골 달성이 No.1을 지켰던 결정타가 됐다.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대결도 끝나지 않았다. 2위를 기록중인 레반도프스키(10골)가 결승전에서 2골 넣으면 호날두와 공동 득점왕이 된다. 도르트문트의 우승까지 이끌면 2013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할 유력한 후보가 된다. 메시와 호날두의 양강 체제가 2013년에 깨질 수 있다. 도르트문트와 결승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에른 뮌헨은 호날두와 레반도프스키 같은 유력한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후보는 없으나 토마스 뮐러와 필립 람처럼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할 가치가 있는 인물들이 몇몇 있다.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 득점 대결만으로 메시를 이겼다고 볼 수도 없다. 프리메라리가에서는 메시에게 13골 차이로 밀렸다.(메시 44골, 호날두 31골) 메시는 두 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 50골 달성에 도전하는 상황. 앞으로 프리메라리가 5경기에서 6골을 터뜨려야 50골 고지에 오른다. 메시가 FC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지속적으로 골을 기록하면 호날두의 FIFA 발롱도르 수상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포르투갈 대표팀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F조 3위(3승 2무 1패, 승점 11)에 머물렀다. 2위 이스라엘과 승점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과 득점에서 열세다. 1위 러시아가 승점 12점(4승)을 기록중이나 다른 팀들에 비해 1~2경기를 덜 치렀던 이점이 있다. 최악의 경우 포르투갈 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수 있다. 러시아가 갑작스럽게 무너지지 않는 이상 포르투갈은 플레이오프를 통해 브라질행 티켓을 따내는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호날두에게 2013년은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할 최적의 기회였다. 메시의 5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도전을 거의 무산시켰으며 FC 바르셀로나는 4강 1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0-4로 대패하며 결승 진출이 힘들어졌다. 또한 포르투갈 대표팀은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이 없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호날두가 2014년에 FIFA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15년이면 30대에 접어드는 만큼 2013년이 세계를 제패할 절호의 시기였으나 끝내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다른 관점에서는 호날두가 없었으면 레알 마드리드의 4강 진출은 어려웠다. 레알 마드리드가 16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8강 갈라타사라이전을 통과하기까지 호날두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팀의 결승 진출 실패로 2013 FIFA 발롱도르 수상 전망이 불투명하나 여전히 레알 마드리드 에이스로서 제 몫을 해냈다. 레알 마드리드가 시즌 내내 원톱이 불안하지 않았다면, 사비 알론소와 페페가 4강에서 자기 기량을 100% 충분히 발휘했다면 호날두가 웸블리를 밟았을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아쉬움 속에서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를 유지하며 최선을 다했던 호날두는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