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4위를 기록중인 첼시는 사우스햄프턴 원정 1-2 패배로 5위 아스널과의 승점 차이가 2점으로 좁혀졌다. 사우스햄프턴전은 4위권 생존을 위해 절대로 패하지 말았어야 할 경기였으나 끝내 승점을 얻지 못했다. 이날 패배는 빅4 탈락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즌 막판 분전하면 빅4를 사수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가 아닌 유로파리그 진출 티켓을 얻어야 한다.
첼시의 사우스햄프턴전 패배 원인 중에 하나는 최정예 스쿼드를 가동하지 못했다. 필드 플레이어 10명 중에 5명이 로테이션 혹은 벤치 멤버였다. 특히 마르코 마린은 그동안 첼시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마린을 비롯한 5명의 선수는 사우스햄프턴전에서 부진했다. 상대팀 선수들의 저돌적인 움직임을 이겨내지 못한 것. 한편으로는 후안 마타, 에당 아자르에 대한 의존도가 평소에 높았음을 뜻한다. 첼시는 두 선수가 함께 공존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공격력이 다르다. 이날 마타는 18인 엔트리에 없었으며 아자르는 후반 16분에 교체 투입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베스트 11에 가까운 스쿼드를 내세우기 어렵다. 유로파리그와 FA컵을 병행중이며 두 대회 모두 우승을 꿈꾸고 있다. 그 중에 FA컵은 비중이 낮은 대회이나 8강 상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며, 마타의 사우스햄프턴전 결장은 FA컵 우승에 대한 의지가 충만하다는 것을 뜻한다. 유로파리그는 이미 8강까지 올라온 상황. 어느 대회라도 포기할 수 없다. 이미 주력 선수들이 과부하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시즌 막판에 3개 대회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어렵다.
첼시는 최근 프리미어리그 10경기에서 5승2무3패(승점 17)를 기록했다. 3위 토트넘(5승3무2패, 승점 18) 5위 아스널(6승1무3패, 승점 19)보다 승점이 근소하게 부족했다. 남은 8경기에서 분발하면 북런던 두 팀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지난 10경기에서 경기력 편차가 컸다. 아스널을 이긴 경험이 있었으나 12위 사우스햄프턴, 15위 뉴캐슬에게 덜미를 잡히며 승점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우스햄프턴은 불과 얼마전까지 강등 위기에 빠졌으며 뉴캐슬은 강등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첼시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선덜랜드, 풀럼, 스완지 시티, 애스턴 빌라, 에버턴 같은 전력이 강하지 않은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고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의 첼시라면 전력이 약한 팀들을 상대로 많은 승점을 얻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때 만큼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유로파리그, FA컵 경기가 늘어날 수록 선수들의 체력 부담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우스햄프턴전에서는 팀의 약점이었던 중원 문제가 도지고 말았다. 프랭크 램파드가 공격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존 오비 미켈의 수비 부담이 가중된 것. 그러나 미켈은 살림꾼보다는 패스 마스터에 가까운 타입이다. 자신의 포지션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램파드마저 이도 저도 아닌 플레이를 펼쳤다. 첼시는 두 선수의 부조화로 중원에서 연계 플레이가 원활하지 못했다. 여기에 좌우 풀백들의 공격력 난조까지 겹치면서 수비수들의 롱볼 빈도가 늘어나게 됐다.
하미레스 또는 다비드 루이스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할 때는 이러한 문제점이 쉽게 노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부진에 빠질 경우 함께 호흡을 맞추는 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가 부진에 빠지면서 팀의 공수 밸런스가 붕괴 될 우려가 있다. 향후 첼시의 중원은 상대팀 공격 옵션들의 포어 체킹에 고전할 여지가 있다. 더블 볼란테의 영향력에 따라 첼시의 앞날 운명이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페르난도 토레스 부진도 여전하다. 토레스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마지막으로 골 넣은 경기는 지난해 12월 24일 애스턴 빌라전이며 그 이후 프리미어리그 12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다. 올해 각종 대회를 포함한 19경기에서 3골에 만족했으며 그 중에 2골은 FA컵, 1골은 유로파리그에서 기록했다. 뎀바 바는 첼시 이적 후 15경기에서 4골 기록했으며 뉴캐슬 시절 만큼의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두 선수가 시즌 막판에 많은 골을 넣어야 첼시의 빅4 수성이 힘을 얻을 것이다.
첼시가 빅4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토트넘 또는 아스널(혹은 두 팀 모두)이 시즌 막판에 고전해야 한다. 허나 두 팀도 4위권 경쟁에서 밀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강했는지 지난 주말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따냈다. 토트넘은 '베일 효과'로 공격수 약점을 커버했고 아스널은 지루-제르비뉴가 각성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첼시의 빅4 탈락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4위권 이내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겠지만 경기력 향상을 위한 변화 없이는 힘들다. 첼시 선수 중에서 누군가 미쳐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