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레알 마드리드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면 조세 무리뉴 감독의 경질은 시간 문제였다.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프리메라리가 2연패 실패(거의 확정적)만을 놓고 볼 때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오는 5월 치러질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에서 우승을 달성해도 레알 마드리드의 10번째 유럽 제패를 이끌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론을 잠재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은 무리뉴 감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기였다고 볼 수 있다.
무리뉴 감독은 16강 2차전에서 자신이 '스페셜 원'임을 재입증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이스 나니가 퇴장 당한지 3분 뒤 알바로 아르벨로아를 빼고 루카 모드리치를 교체 투입한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모드리치는 후반 22분에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뜨렸고 2분 뒤에는 팀 역전골 과정에 관여했다. 그 2골로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8강에 진출했으며, 최근 FC 바르셀로나전 2연승과 맞물려 무리뉴 감독의 경질론은 수면 아래로 내려 앉았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의 잔류론은 힘을 얻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가 올 시즌 종료 후 다른 팀으로 떠날 것이라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첼시,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이 무리뉴 감독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첼시는 라파엘 베니테즈 임시 감독이 다음 시즌 사령탑을 맡지 않기로 선언하면서 새로운 감독을 영입해야 하며 2000년대 중반에 팀을 지휘했던 무리뉴 감독이 물망에 떠올랐다. 무리뉴 감독은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의 불화로 팀을 떠났으나 최근에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무리뉴 감독은 지금까지 자신의 감독 커리어에서 4년 이상 팀을 지휘한 경우가 없었다. 첼시 사령탑 시절에는 4시즌 동안 팀에 몸담았으나 2007/08시즌 초반에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실제 재임 기간은 3년 3개월이었다. 2000/01시즌 벤피카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가장 많은 기간 감독으로 활동했다. 13년 동안 6팀을 지휘했으며 특정 팀에서 장기 집권하는 경우가 없었다. 올 시즌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내는 세 번째 시즌이며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놓고 볼 때 잔류를 확신하기 어렵다.
무리뉴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에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고 팀을 떠날 수 있는 인물이다. 무언가의 업적으로 팀에 오랫동안 남겠다는 의식보다는 항상 새로운 팀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03/04시즌 포르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뒤 첼시로 둥지를 틀었으며, 2009/10시즌 인터 밀란의 트레블을 이끈지 얼마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겼던 전례가 있다. 유럽 4개 리그(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우승을 달성한 첫번째 감독이 되었던 것도 본인이 스스로 동기 부여를 찾으며 성취한 결과물이었다.
누군가는 무리뉴 감독이 지난해 5월 레알 마드리드와 재계약을 맺으면서 계약 기간인 2016년까지 팀을 지휘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은 2008년 여름 인터 밀란과 3년 계약을 맺었으나 실제로는 2년 동안 팀을 맡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인터 밀란이 위약금 문제를 합의하면서 무리뉴 감독의 거취가 바뀐 것. 그동안 여러 팀들을 옮겼던 무리뉴 감독의 거취는 종 잡을 수 없다.
특히 무리뉴 감독과 작별한 팀은 잦은 감독 교체와 성적 부진이라는 어수선한 나날을 보냈다. 첼시와 인터 밀란이 대표적인 예. 물론 첼시는 무리뉴 체제 이후에도 여러차례 우승을 달성했으나 2000년대 중반의 압도적인 포스를 점점 잃어갔다. 지난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었으나 프리미어리그 6위 추락의 아쉬움을 남겼다. 급기야 올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며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빅4 수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많은 첼시팬들이 무리뉴 감독을 그리워하며 그가 스탬포드 브릿지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첼시와 인터 밀란이 겪었던 어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리뉴 감독이 계약 기간인 2016년까지 팀에 남아있기를 속으로 바랄지 모를 일이다. 그의 능력을 놓고 볼 때 레알 마드리드의 오랜 영광을 이끌 적임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소속팀에 남을지는 확실치 않다. 만약 잔류하지 않으면 올 시즌 종료 후 첼시,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 같은 빅 클럽으로 떠날 것으로 보인다. 세 클럽 모두 무리뉴 감독의 위약금을 감당할 수 있는 유럽의 대표적인 부자 클럽들이다.
무리뉴 감독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이별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무리뉴 감독 같은 매 시즌마다 의미있는 업적을 거두는 지도자는 흔치 않다. 레알 마드리드에게 무리뉴 감독과의 작별은 경기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따른다. 베니테즈 감독의 인터 밀란 시절 사례처럼 후임 감독이 무리뉴 체제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과연 무리뉴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에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