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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동국-박주영-이충성, 그리고 손흥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동양인 공격수가 성공할 수 없는 곳일까?

재일교포 4세 이충성(일본명 리 타다나리)이 사우스햄프턴을 떠나 일본 J리그 도쿄FC로 임대됐다. 사우스햄프턴과 도쿄FC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충성 임대를 발표한 것. 이충성은 지난해 1월 챔피언십(잉글랜드 2부리그) 소속이었던 사우스햄프턴에 입단했다. 팀은 챔피언십 2위를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으나 이충성은 1년 동안 12경기에만 그라운드를 밟았다. 특히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충성의 프리미어리그 실패는 동양인 공격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됐다. 한국에서는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현 전북) 박주영(원 소속 아스널, 셀타 비고 임대) 중국에서는 덩팡저우(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 후난 빌로우스) 일본에서는 니시자와 아키노리(전 볼턴, 은퇴) 이충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실패의 쓴맛을 봤다. 한국의 지동원(원 소속 선덜랜드, 아우크스부르크 임대)은 20대 초반인 만큼 아직 프리미어리그에서 실패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마틴 오닐 감독 체제에서는 결장이 빈번했다.

동양인 공격수가 잉글랜드에서 통하지 않았던 주 원인은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중앙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는 중앙이 터프하다. 육중한 체격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중앙에서 거친 몸싸움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팀 선수에게 빈 공간을 내주지 않으려 한다. 도르트문트의 분데스리가 2연패 주역이었던 일본의 공격형 미드필더 카가와 신지가 올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탈압박으로 몸싸움 부족을 이겨낼 필요가 있었으나 분데스리가 시절에 비해 의욕이 조금 떨어진듯한 인상이다.

체격 조건이 발달된 공격수만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리버풀의 간판 공격수였던 마이클 오언(스토크 시티)의 신장은 173cm다. 올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최전방을 담당한 '아르헨티나 듀오' 세르히오 아궤로, 카를로스 테베스의 신장은 170cm대 초반이다. 이들은 상대 수비수 마크를 따돌리는 기교와 순발력을 자랑하면서 적극적인 몸싸움을 펼친다. 동료에게 볼을 받으려는 움직임과 위치선정까지 빼어났다. 신장만 작았을 뿐 공격수로서 다양한 장점을 겸비했다.

반면 동양인 공격수들은 달랐다. 철저한 후보 선수였다. 그나마 이동국과 지동원은 교체 투입 기회가 꽤 많았다. 그러나 이동국은 미들즈브러에 필요한 공격수라는 임펙트를 심어주지 못했고 지동원은 몸싸움이 부족한 약점을 드러냈다. 물론 지동원은 감독 교체가 없었다면 올 시즌 선덜랜드에서 일정한 출전 기회를 얻었을지 모를 일이다. 근래 한국과 일본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활발했으나 동양인 공격수의 성공 사례는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사진=손흥민 (C) 효리사랑]

최근에는 함부르크의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빅 클럽들의 영입 공세를 받고 있다. 첼시, 아스널, 토트넘, 리버풀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붙박이 주전이 아니었던 지난 시즌 하반기에는 뉴캐슬 이적설로 주목을 끌었다. 올 시즌 종료 후 어느 팀으로 떠날지 그의 선택을 주목하는 눈길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함부르크와의 계약 기간을 연장할 경우 다음 시즌에도 임테크 아레나에 남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적할 수도 있다.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기대하는 시선에서는 그의 경기를 편하게 TV로 시청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지금의 프리미어리그 중계처럼 때에 따라 재방송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손흥민의 잉글랜드 진출은 정답은 아니다. 어느 팀에서 뛰든 20대 초반의 영건으로서 풍부한 실전 감각을 기르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 대표팀 에이스로 도약할 명분을 얻으려면,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빛내려면 소속팀에서 나날이 성장해야만 한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두각을 떨치지 못했음에도 '대표팀이 손흥민에게 맞춰야 한다'는 여론의 반응이 힘을 얻는 것도 그의 소속팀 맹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리미어리그가 분데스리가보다 더 좋은 리그인 것은 사실이다. UEFA 국가 랭킹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중이다.(1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러나 분데스리가는 프리미어리그와 더불어 유럽 3대 리그에 속한다. 꾸준한 유럽 대항전 선전과 수준급 선수의 거듭된 영입이 이루어질 경우 프리미어리그를 넘어 유럽 최고의 리그로 성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건실한 재정을 자랑하는 것도 장점. 분데스리가의 탄력적인 성장을 놓고 볼 때 손흥민의 함부르크 잔류 또는 다른 분데스리가 클럽 이적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빅 클럽에서 성공할 경우 동양인 선수를 바라보는 세계 축구계의 인식이 지금보다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동양인 선수에 대한 가치가 향상되면서 특히 한국과 일본 선수를 영입하려는 유럽 클럽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손흥민이 잉글랜드에서 화려한 나날을 보낼 경우 한국 축구의 국제적인 인지도는 향상될 것이다. 특히 빅 클럽이라면 함부르크에 비해 UEFA 챔피언스리그를 누빌 기회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의 향후 진로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