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 원정 1-1 무승부는 차선의 결과였다. 역대 스페인과 레알 원정에 약했던 전적을 놓고 볼 때 패배를 모면한 것 자체가 의미있다. 하지만 경기 내내 짜임새 넘치는 공격을 전개했다면 레알을 제압했을지 모를 일이다. 선발로 나섰던 일본인 미드필더 카가와 신지가 64분 동안 2선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면서 맨유 공격이 잘 풀리지 않았다.
카가와의 레알 원정 선발 투입은 팀 전력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기대치가 있었다. 맨유에게 레알은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과 우승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 특정 선수의 빅 매치 경험을 축적하는 목적보다는 레알과의 '축구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선발 라인업이 우선 되어야 할 경기였다. 퍼거슨 감독이 카가와를 선발로 내세운 것은 그가 로빈 판 페르시, 대니 웰백과 더불어 레알의 수비 라인을 무너뜨릴 적격자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레알 수비에 막히고 말았다.
무엇보다 레알 선수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빼어난 탈압박을 과시했던 판 페르시와 달랐다. 부지런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수비에 많은 공헌을 했던 웨인 루니, 위협적인 전방 침투를 자랑했던 웰백에 비해 2선에서 제 구실을 못했다. 어떤 관점에서는 레알이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아니라는 이유로 카가와 맹활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가 몸싸움 열세로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레알은 무리뉴 체제에서 압박 축구로 단련된 팀이다. 라이벌이자 '공격의 제왕' FC 바르셀로나 파상공세를 막아낸 경험이 다른 빅 클럽들보다 풍부할 정도로 압박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다. 실제로 레알은 맨유의 역습을 막아내기 위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취했다. 카가와는 전반 초반에 위협적인 침투를 펼쳤을 뿐 레알의 압박을 받은 이후부터 좀처럼 경기 흐름을 주도하지 못했다. 전반전에 팀 내 활동량 2위(5.85Km)를 기록했으나 볼에 관여하는 움직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팀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카가와는 이번 레알 원정을 비롯하여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팀의 강한 압박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도르트문트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시절과 달랐다. 분데스리가는 대부분의 팀들이 공격적인 축구를 펼치는 경향이 강하나 수비 공간이 벌어지기 쉬운 단점이 있다. 카가와는 도르트문트에서 활발한 움직임과 빠른 순발력, 골 결정력과 재치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농락하거나 위협적인 공격 기회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분데스리가 스타일에 어울리는 유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앙 압박이 강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분데스리가 시절 몸싸움이 약한 단점을 노출했던 그의 프리미어리그 부진은 예견된 시나리오였을지 모른다. 참고로 2010년 10월 A매치 한국 원정에서는 왼쪽 윙어로 나섰으나 최효진의 밀착 수비에 막혀 부진했다. 상대팀의 강한 수비에 고전하는 취약점을 여전히 개선하지 못했음을 레알 원정에서 드러냈다. 최근에는 왼쪽 윙어로 모습을 내밀고 있다. 측면은 중앙보다 침투 공간을 확보하기 쉬운 이점이 있다. 하지만 측면보다는 중앙 공격에 최적화된 선수로서 지금의 부진을 빠른 시일내에 극복할지는 미지수다.
카가와는 퍼거슨 감독 플랜에 있는 선수임에 분명하다. 맨유가 올 시즌 4-4-2에서 4-2-3-1 혹은 4-4-1-1 포메이션으로 전환한 것은 카가와의 플레이메이커 기질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런 카가와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최적화된 유형으로서 다득점에 능한 강점이 있다. 도르트문트에서 두 시즌 동안 49경기에서 21골 9도움 기록하며 미들라이커로 두각을 떨쳤다. 맨유로 이적한 올 시즌 초반에도 2골 넣었다. 하지만 부상 복귀 후에는 아직 골이 없다.
아직 카가와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때 맨유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루이스 나니는 이타적인 DNA를 축적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맨유 주전 골키퍼 자격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다비드 데 헤아는 레알 원정에서 기막힌 선방을 과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카가와의 실질적인 포지션 경쟁자는 루니다. 주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루니와 포지션이 겹친다. 맨유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카가와 이적료가 1400만 파운드(약 235억 원)다. 금액에 걸맞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단순한 유망주로 인식하기에는 이적료 액수가 만만치 않다. '경기력 관점에서' 맨유의 카가와 영입은 지금까지 실패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