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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엘 클라시코 더비, 축구는 전쟁이다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은 다수의 국내 축구팬에게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엘 클라시코 더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시각으로 지난 31일 오전 5시 스페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진행된 스페인 국왕컵 4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맞대결은 2013년 첫번째 엘 클라시코 더비로 주목을 받았다. 경기가 벌어질 즈음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는 엘 클라시코 더비와 관련된 키워드가 여럿 떴다. 많은 사람이 평일 새벽이었음에도 엘 클라시코 더비를 봤다는 증거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는 1-1로 비겼다.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후반 5분에 선제골을 넣으면서 FC 바르셀로나가 앞섰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19세 센터백 라파엘 바란이 후반 36분에 동점골을 터뜨리며 패배 위기에 놓인 팀을 구했다. 특히 바란은 전반 23분 사비 에르난데스의 슈팅을 직접 걷어내 팀의 실점을 막았고, 후반 34분에는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 돌파를 차단하는 재치를 과시했다. 이날의 맹활약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세계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린 것도 소득이다. 

양팀은 90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했다. 허리 쪽에서 쉴새없는 볼 다툼이 펼쳐지면서 예측 불허의 경기가 이어졌다. 점유율에서 FC바르셀로나가 우세였다면 레알 마드리드는 포어 체킹(전방 압박)의 세기를 높이면서 상대팀의 공격 템포를 늦추는데 주력했다. 전반 40분에는 사비 알론소와 다니엘 알베스가 신경전을 펼치면서 서로 감정이 충돌했다. 후반 21분 헤라르드 피케가 그라운드에 쓰러졌을 무렵에는 관중석에서 라이타가 날라왔다.

엘 클라시코 더비와 스페인 내전의 관계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비(Derby)'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더비는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클럽끼리의 맞대결을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가 맞붙는 맨체스터 더비, 셀틱과 레인저스가 대립하는 올드 펌 더비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엘 클라시코 더비는 일반적인 더비와 다른 개념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는 각각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연고로 한다. 같은 지역의 라이벌이 아니다. 엘 클라시코 더비는 '고전의 승부' '전통의 경기'라는 뜻으로 일컬어진다. 두 팀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오랫동안의 대립이 있었다.

스페인은 지역 감정이 심한 나라다. 카스티야, 카탈루냐, 바스크 같은 다양한 지역들이 하나의 스페인을 형성했으나 실제로는 서로의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특히 카스티야와 카탈루냐는 오래전부터 정치적인 대립각을 세웠던 관계였다. 카스티야에는 마드리드, 카탈루냐에는 바르셀로나가 속한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원수'가 되었던 결정적 계기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었다. 당시 스페인 군부 장군이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좌파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3년 동안 약 50만 명이 희생되는 교전 끝에 내전에서 승리해 프랑코는 정권을 장악했다.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하기 전까지 36년 동안 독재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감옥 신세를 졌다. 그 과정에서 카탈루냐, 바스크 같은 다른 지방들을 탄압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금지했고 자치권까지 박탈시켰다. 카탈루냐를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 프랑코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컸다.

FC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축구팀이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인아(손예진)가 무척 좋아하는 팀으로 나오기도 했다. 1899년 스위스인 한스 감퍼(훗날 호안 감페르라는 카탈루냐식 이름으로 개명)를 주축으로 창단됐다. 팀은 많은 사람의 금전적 지원을 통해 운영됐다.

FC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 이전부터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 레이, 카탈루냐 챔피언십에서 여러 차례 우승해 카탈루냐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를 프랑코가 좋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프랑코는 카탈루냐어와 카탈루냐기 사용 금지는 물론 축구팀 이름까지 스페인어로 표기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FC바르셀로나는 한때 CF바르셀로나(Club de Futbol Barcelona)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리그에 참가해야 했다.(카탈루냐어 팀 이름은 Futbol Club Barcelona)

FC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를 싫어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다. 스페인 내전 중에는 FC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호셉 수뇰이 살해 당했다. 단지 FC바르셀로나 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좌익 성향으로서 프랑코 군부의 숙청 대상으로 꼽힐 수밖에 없었다. 1943년 국왕컵 4강 2차전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FC바르셀로나는 1차전에서 3-0으로 이겼으나 2차전 직전에 군부 관계자에게 위협을 받으면서 1-11로 대패했다. 프랑코 체제의 탄압을 받은 FC바르셀로나로서는 레알 마드리드에 반감을 나타낼 만했다.

엘 클라시코 더비를 상징하는 그 이름, 루이스 피구

루이스 피구는 1995년 FC바르셀로나에 입단한 포르투갈 출신의 윙어다. 팀의 주축 멤버로서 1996/97시즌 UEFA컵(지금의 유로파리그) 우승, 1997/98시즌과 1998/99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기여했으며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2000년에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다.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였던 6000만 유로(약 885억 원)에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틀었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갈락티코('은하수'라는 뜻으로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운영하는 정책) 1기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였지만 FC 바르셀로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피구는 2000년 10월 FC바르셀로나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으로 나섰다. 그는 FC바르셀로나 팬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혀 거센 야유를 받았다. FC바르셀로나 팬들은 그에게 각종 오물을 쏟아 부었다. 피구가 다시 캄 노우에 등장했던 2002년 11월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돼지머리와 라이터 등 여러 오물이 피구 쪽으로 향했다. 주심이 한동안 경기를 중단시킬 정도로 FC바르셀로나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조국에서 벌어진 유로 2004 결승 그리스전에서는 그라운드에 난입한 관중(지미 점프)에게 FC바르셀로나 머플러로 봉변 당했다. 지미 점프는 FC바르셀로나 팬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물론 피구만 FC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것은 아니었다. 베른트 슈스터(1988년) 미카엘 라우드럽(1994년) 하비에르 사비올라(2007년)도 FC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고, 루이스 엔리케(1996년)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FC바르셀로나로 둥지를 틀었던 케이스다.(라우드럽은 현 스완지 시티 감독이며 기성용의 스승이다.) 하지만 피구는 FC바르셀로나의 주장이자 팀의 핵심 선수였기에 파장이 컸다. 그의 이적은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는 1902년부터 2013년까지 223번의 엘 클라시코 더비를 치렀다. 88승 48무 87패로 레알 마드리드가 우위다. 하지만 근래에는 FC 바르셀로나의 우세가 돋보였다. 트레블(리그-국왕컵-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2008/09시즌부터 지금까지 레알 마드리드와 19번 겨루면서 10승6무3패를 기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8/09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4시즌 동안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2회를 이루었던 반면에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1회에 만족했다.(주요 대회 우승 기준) 레알 마드리드가 FC바르셀로나를 추격하는 입장이 됐다.

영원한 라이벌... 전설은 계속된다

FC바르셀로나가 트레블을 달성한 2008/09시즌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악몽이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종료 후 메시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축구 스타로 주목받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를 영입했다. 호날두 이적료 8000만 파운드(약 1377억 원)는 역대 최고 이적료로 꼽힌다.

레알 마드리드는 2010년 여름 인터 밀란의 2009/10시즌 트레블을 이끈 조세 무리뉴 감독과 계약했다. FC바르셀로나를 제치고 유럽 챔피언에 등극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 만약 유럽을 제패하면 통산 10회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2010/11시즌, 2011/12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 진출에 만족했다. 특히 2010/11시즌에는 FC바르셀로나에 밀려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우승 트로피를 FC바르셀로나가 들어올렸다. 그나마 2010/11시즌 스페인 국왕컵, 2011/12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달성한 것이 위안이었다.

두 팀의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FC바르셀로나를 넘어 유럽 챔피언을 노리는 도전자라면, FC바르셀로나는 유럽 최고의 클럽(비록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했지만)의 아성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는 거의 매 시즌마다 1위를 다투었다.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유지한 스페인의 두 거인은 앞으로도 많은 전설을 남길 듯하다.

p.s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