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페인의 신흥 부자 클럽으로 떠올랐던 말라가는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2경기를 모두 이겼다. 최근 재정 악화로 일부 주축 선수들을 다른 팀에 넘겼지만 기존 선수들끼리 힘을 합치며 챔피언스리그에서 펄펄 날았다. 그동안 유럽 대항전과 인연이 깊지 않은 클럽이라는 점에서 챔피언스리그 경험 부족은 그들에게 문제되지 않았다.
반면 잉글랜드의 부자 클럽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여전히 승전보를 전하지 못했다. 1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2-3 역전패를 당했으며 2차전 도르트문트와의 홈 경기에서는 1-1로 비겼다. 도르트문트전에서는 마리오 발로텔리가 후반 45분 페널티킥 골을 넣으면서 간신히 승점 1점을 따냈다.
이날 경기력을 놓고 보면 지난 시즌에 이어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탈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말라가에 비하면 32강 대진운이 안좋지만 선수 명성을 놓고 보면 챔피언스리그에서 부진할 팀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챔피언스리그 경험 부족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말라가의 선전, 도르트문트전 경기력을 놓고 보면 옳은 지적은 아닌 듯 하다. 맨시티 문제점은 따로 있다.
맨시티의 도르트문트전 무승부, 그러나 경기 내용은 낙제
맨시티와 도르트문트의 결정적 차이는 활동량이었다. 양팀에서 선발로 출전했던 필드 플레이어 10명의 이동거리 차이가 컸다. 맨시티는 평균 9.308Km, 도르트문트는 평균 10.991km였다. 가르시아가 전반 33분 오른쪽 허벅지 부상으로 교체되었음을 감안해도 도르트문트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 11Km 이상 뛰었던 선수는 7명이 된다. 반면 맨시티는 누구도 11km 이상 그라운드를 누비지 못했다. 활동량을 보면 도르트문트가 맨시티보다 의욕적으로 경기에 참여했다. 맨시티 홈에서 벌어진 경기였으나 원정팀 도르트문트가 분위기를 주도했다.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움직임이 많았던 원인은 경기 초반부터 포어체킹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맨시티 미드필더들의 공격 전개를 어렵게 했다. 맨시티는 점유율에서 66-34(%)로 앞섰으나 도르트문트 수비에 의해 잦은 패스 미스를 범하면서 경기를 주도하지 못했다. 슈팅 숫자에서 12-20(유효 슈팅 10-12, 개)로 도르트문트에게 뒤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에서 안정적인 볼 관리를 못하면서 도르트문트에게 번번이 골 기회를 허용했다.
후반 16분 로이스에게 실점했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로드웰이 동료 선수에게 횡패스를 잘못 연결한 것이 로이스에게 빼앗겼고, 로이스는 로드웰을 포함한 맨시티 선수 3명을 뚫고 선제골을 넣었다. 맨시티 센터백 나스타시치의 볼 배급도 불안했다. 전반 30분 전방쪽으로 전진패스를 연결한 볼이 도르트문트 선수쪽으로 향하면서 상대팀에게 공격권을 내줬다. 후반 5분에는 왼쪽 측면에서 짧은 패스를 연결하려다 괴체의 포어체킹에 막히면서 볼을 빼앗겼고, 2분 뒤에는 후방에서 롱볼을 날렸으나 도르트문트 선수에게 차단 당했다. 센터백에게 요구되는 패싱력이 덜 가다듬어졌다.
맨시티는 도르트문트의 포어체킹에 휘말렸다. 수비라인에서 볼을 돌리고 도르트문트 공격 옵션들이 포어체킹을 했을 때, 야야 투레-가르시아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후방에서 패스를 받으려는 움직임이 경직됐다. 자기 자리에 머무르거나 패스 받으려는 움직임이 느렸다. 중원에서 패스 게임이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다. 때때로 도르트문트 미드필더 뒷 공간을 겨냥한 침투 패스도 시도했으나 대체적으로 부정확했다. 아궤로가 볼을 터치했을 때는 근처에서 패스를 받아줄 선수의 움직임이 뒤떨어졌다. 상대팀보다 활동량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그 기회를 살렸을 것이다.
후방에서 롱볼이 빈번했던 것도 도르트문트 포어체킹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전방에서 패스 지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중으로 볼을 띄우는데 급급했다. 유기적인 공격 전개가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다. 후반 45분 발로텔리가 페널티킥 동점골을 넣었을 뿐 필드 골은 없었다. 경기 내내 의도했던 공격이 풀리지 않았다.
특히 야야 투레의 부진이 맨시티에게 치명적이었다. 맨시티는 지난 2년 동안 야야 투레-실바 활약에 의해 팀 경기력이 좌우되는 경향이 강했다. 더욱이 두 선수의 도르트문트전 활동량은 팀 내 1~2위였다. 그나마 실바는 오른쪽 윙어로서 몇차례 정교한 패스를 연결했으나 야야 투레는 중원에서 괴체-귄도간 압박에 시달리면서 제 역할을 못했다. 하지만 야야 투레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그동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끝에 이번 경기에서 체력적인 어려움에 빠지면서 평소 만큼의 기량을 과시하지 못했다. 이는 도르트문트 플레이메이커 괴체의 맹활약으로 직결됐다.
맨시티는 1-1로 비겼지만 경기 내용에서 철저히 패했다. 골키퍼 하트의 거듭된 선방이 없었다면 자칫 대량 실점으로 무너졌을지 모를 일이다. 단순히 챔피언스리그 경험 부진을 탓하기에는 선수들이 경기를 주도하겠다는 의지와 벤치 작전에서 뚜렷한 콘셉트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도르트문트도 맨시티와 더불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에서 미끄러졌던 팀이다. 도르트문트 선수들도 챔피언스리그 경험이 많다고 볼 수 없다.
그런 맨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강했을 뿐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항상 부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만치니 감독은 인터 밀란 사령탑 시절부터 몇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나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맨시티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