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27, 셀타 비고)은 지난달 30일 그라나다전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진출 이후 첫 선발 출전했다. 비록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팀은 1-2로 패했지만 인상 깊은 경기력을 펼친 끝에 풀타임을 소화했다. 상대 수비와 공중볼을 다투는 모습, 뒷쪽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이타적인 면모, 끊임없는 공간 침투로 팀 공격에 힘을 실어줬으며 후반전에는 몇 차례 슈팅 기회가 찾아왔다. 특히 공중볼을 떨구는 장면은 마치 AS모나코 시절을 보는 듯 했다.
이날 경기에서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돋보였다. 박스 안쪽과 바깥쪽, 왼쪽과 오른쪽을 활발히 오가며 상대 수비를 교란했다. 전형적인 타겟맨이라면 특정 공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박주영은 활동 반경이 넓었다. 때로는 타겟맨 임무를 맡으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이아고 아스파스, 미하엘 크론-델리, 아우구스토 페르난데스 같은 동료 공격 옵션들의 상대 진영 접근이 버겁지 않았던 이유다. 패스 성공률 64%가 아쉬웠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박주영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박주영은 아직 셀타 비고에 합류한지 얼마 안됐다. 프랑스-잉글랜드와 다른 환경과 언어 속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최상의 호흡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움직임을 통해서 팀 플레이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의 경기 감각을 유지하면서 패스 성공률을 높이면 '만능형 공격수'로 다시 거듭날 것이다.
본래 박주영의 최대 장점은 타겟맨과 쉐도우 장점을 골고루 겸비한 만능적인 기질이었다. 유럽 진출 이전까지 기교, 스피드, 골 결정력에서 특출난 재능을 발휘했다면 모나코 시절에는 공중볼, 몸싸움, 파워가 향상됐다. 네네(파리 생제르맹)와 호흡을 맞췄던 2009/10시즌에는 만능형 공격수로 완성되면서 최상의 경기력을 과시했다.
모나코에서는 개인의 강점보다 파워풀한 스타일에 더 익숙했다. 후방에서 길게 연결된 롱볼이나 측면에서 공급되는 크로스를 상대 수비와 공중볼을 다투면서 헤딩으로 떨구는 장면이 많았다. 프랑스리그의 특징은 터프한 수비수들이 즐비하다. 박주영은 그런 선수들의 견제를 이겨내고 공중볼을 따내거나 몸싸움에서 우세를 나타내면서 유럽 리그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패스 퀄리티가 낮다보니 최전방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네네가 팀을 떠났던 2011/12시즌에는 주변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마저 쉽지 않았다. 끝내 팀은 강등됐다.
박주영은 당시 모나코 전술 특성상 최전방에서 볼을 기다리는 시간이 늘었다. 팀의 느린 템포에 익숙해진 것. 지난 시즌에 몸담았던 아스널에서 벵거 감독의 눈도장을 받지 못한 것이 이 때문이다. 아스널은 빠른 템포의 공격력을 유지하는 팀 컬러가 뚜렷하다. 벵거 감독 판단에 의해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할 기회가 넉넉하게 주어지지 못했던 특성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벵거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현 소속팀 셀타 비고는 모나코 공격력과 차이점이 있다. 셀타 비고는 스페인 클럽 답게 미드필더를 거치는 패스가 활발하며 롱볼에 익숙한 모나코와 차원이 다르다. 물론 셀타 비고도 박주영을 활용한 공중볼 공격을 펼쳤지만 기본적인 패스 퀄리티가 모나코와 대조적이다. 크론-델리의 크로스에 이르기까지 공격 패턴이 다양하다. 꾸준히 골을 터뜨릴 공격수의 존재감이 묻어나면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경기력을 과시할 것이다. 그 역할을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이 해야 한다.
박주영은 셀타 비고에서 유럽 진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낼 기회를 잡았다. 모나코에서 다양한 장점을 갖춘 공격수로 진화했지만 팀의 전술적 특성상 자신의 기교를 마음껏 펼치기 어려웠다. 동료의 공격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스널에서는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반면 셀타 비고는 모나코와 달리 패스 게임이 되면서 공중볼까지 활용한다. 박주영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쉬운 환경이다. 만약 박주영이 프리메라리가에 적응하면 자신의 기교를 마음껏 펼칠 것으로, 아스파스와의 콤비 플레이에 의해 골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라나다전 풀타임 출전은 파코 에레라 감독에게 기량을 인정 받았다는 뜻이다. 앞으로 맞붙을 세비아-레알 마드리드-데포르티보 라 코루냐-FC 바르셀로나 같은 어려운 팀들을 상대로 비중있는 임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셀타 비고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지역 라이벌 관계다.) 4경기에서 강렬한 임펙트를 과시하면 붙박이 주전을 굳힐 것으로 보인다. 아스널에서 결장이 빈번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꾸준히 선발 출전하는 것 만큼 최상의 동기부여는 없다. '박주영 2호골' 소식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