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첼시의 질식 수비, 바르셀로나 제압의 힘

 

첼시-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 칼럼에 앞서서, 최근 K리그에서 논란이 된 부산 아이파크의 '질식 수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겠습니다. 일부에서는 부산이 수비 축구를 한다는 이유로 폄하합니다. 전북의 '닥공', 성남의 '신공' 같은 공격 축구를 펼치는 팀들이 여론의 인기를 얻는 상황에서 부산의 수비 중심 플레이는 재미가 반감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수비 축구보다는 공격 축구를 선호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사진=FC 바르셀로나전 1-0 승리를 발표한 첼시 공식 홈페이지 (C) chelseafc.com]

하지만 모든 팀들이 공격 축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선수 특성과 감독의 성향, 상대팀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대응법을 고루 종합해서 팀의 기본 작전이 수립되는 것이죠. 부산은 다른 기업 구단들에 비해서 스쿼드가 밀립니다. 안익수 감독은 팀을 실용적으로 키웠고 현재까지 나름의 성과를 봤습니다. 지난해 컵대회 준우승, 정규리그 6강 플레이오프 진출(5위)은 지난 몇년간 부산의 성적 중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수비 축구를 이유로 비아냥을 받고 있지만 부산은 부산만의 축구를 하면 됩니다. 부산에게 어울리는 옷은 질식 수비니까요.

첼시, '질식 수비'로 바르셀로나전 무실점 승리

첼시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바르사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47분 드록바 결승골로 1차전을 이겼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첼시 선수들이 바르사 포어체킹에 막히면서 비효율적인 역습이 되풀이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고 끝까지 역습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전반 막판에 경기 흐름을 결정짓게 됐습니다. 램퍼드 롱패스-하미레스 드리블 돌파에 이은 오른쪽 횡패스가 드록바 왼발 슈팅으로 이어지면서 바르사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드록바가 첼시 승리의 쐐기를 박은 것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첼시 승리의 수훈갑은 '질식 수비'였다고 봅니다. 그동안 바르사를 상대했던 팀들과의 수비 축구와는 급이 달랐습니다. 무실점으로 승리했기 때문이죠. 수비 축구 혹은 질식 수비의 1차적 목표는 무실점입니다. 아무리 메시를 잘 막아도 한 번 놓치면 골을 내주기 쉽습니다. 실점 허용은 팀 득점력이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패배 위기로 직결되죠. 첼시 수비가 몇몇 장면에서 바르사 공격 옵션을 놓치는 실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골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파브레가스-산체스-메시로 구성된 바르사 스리톱을 질식시킨 첼시의 강력한 수비 응집력이 돋보였습니다.

이번 경기는 인터 밀란과 바르사가 맞붙었던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터 밀란이 홈에서 바르사를 3-1로 제압했습니다. 선 수비-후 역습의 힘으로 바르사를 무너뜨렸죠. 2차전 원정에서는 0-1로 졌지만 통합 스코어에서 이겼습니다. 바르사 화력의 세기를 떨어뜨리는 수비 축구가 성공했던 대표적 사례입니다. 메시와 즐라탄(AC밀란)은 1~2차전에서 동반 부진했죠.

지금의 첼시는 그때의 인터 밀란과 달리 무실점으로 승리했습니다. 인터 밀란에 비해서 득점력이 부족했지만 골을 내준 것은 아닙니다. 첼시의 무실점 승리가 값진 또 하나는 올 시즌 바르사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대결했던 팀들이 모두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그나마 AC밀란이 바르사와의 8강 1차전 홈 경기에서 0-0으로 비겼지만 2차전 원정에서 1-3으로 졌습니다. 허나 1차전 무실점에 긍정적인 의미를 두기에는 승리를 달성하지 못했던 단점이 있습니다. 수비 축구는 무실점도 중요하지만 이기는 것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첼시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홈 구장이라서 공격 중심의 플레이를 펼치기보다는 실리를 택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꼽히는 바르사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합니다. 첼시가 그들의 기세를 꺾으려면 질식 수비만큼 최상의 선택은 없었습니다. 점유율 28-72(%), 슈팅 5-24(유효 슈팅 1-6, 개) 열세는 뻔히 예상됐던 일이죠. 유효슈팅 1개가 바로 드록바 결승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2골이 더 필요했다고 보지만 모든 선수들이 수비에 많은 치중을 두었고, 최근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느라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보다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런 첼시의 질식 수비는 중앙에서 효과를 봤습니다. 램퍼드-미켈-메이렐레스가 중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바르사 선수들을 압박했습니다. 여기에 팀 전체가 협력 수비를 강화하면서 파브레가스-산체스-메시가 첼시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죠. 드록바는 바르사 후방 옵션들을 끌고 다니는 움직임이 돋보였습니다. 일부에서는 드록바가 경기 도중 몇 차례 넘어진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바르사 수비에게 부담을 안겨줬습니다. 골키퍼 체흐의 결정적인 선방도 돋보였습니다. 애슐리 콜-이바노비치로 짜인 측면 수비는 무결점 수비를 자랑했습니다. 애슐리 콜은 왼쪽에서 메시를 잘 막아내면서 알베스까지 농락했고, 이바노비치는 오른쪽에서 파브레가스에게 많은 볼 터치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바르사전 승리를 이끈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의 역량도 한 몫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의 색깔은 실용적입니다. 지난 시즌 웨스트 브로미치 감독 재임 시절에는 팀이 선 수비-후 역습을 펼쳤습니다. 올 시즌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8강 1~2차전 벤피카전 승리 과정 또한 수비에 중심을 두는 흐름이었죠. 이번 바르사전에서도 수비 축구를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습니다. 만약 빌라스-보아스 전 감독이 지금까지 첼시 지휘봉을 잡았다면 바르사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빌라스-보아스 전 감독은 측면 중심의 공격 축구를 선호하는 인물입니다. 항상 일관된 작전을 펼친 것이 첼시에서 독이 되고 말았죠. 바르사전 같았으면 전진 수비가 엄청난 위험을 초래했을 겁니다. 아스널전 3-5 패배를 봐도 말입니다.

혹시 누군가는 첼시가 수비 축구를 했다는 이유로 경기력을 과소평가할지 모릅니다. 부산의 질식 축구를 안좋게 보는 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첼시는 팀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습니다. 본래 공격력에 약점이 있는 팀이니까요. 마타는 이전보다 폼이 떨어졌고, 하미레스는 여전히 공격력에서 호불호가 뚜렷하며, 팀에서 꾸준히 잘하는 최전방 공격수가 없습니다. 드록바가 이날 경기에서는 잘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경기력이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첼시는 바르사전에서 수비에 비중을 두어야했고 이것이 결국 최상의 선택이 됐습니다. 앞으로 6일 뒤 2차전 원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1차전 만큼은 승리 자격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