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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구자철-지동원, 두 유럽파의 '결정적 차이'

 

이 글에서는 구자철과 지동원에 관한 자세한 언급보다는 특정 줄기를 잡고 여러가지 예를 들며 글을 풀어가려고 합니다.

한국인 선수가 유럽에서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축구 실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 나라의 음식과 날씨, 언어, 생활풍습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죠. 또 하나는 소속팀 감독의 구미를 당겨야 합니다. 아무리 볼을 잘 다루는 선수라도 감독과의 전술적 괴리감이 있으면 출전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맨유 공격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경우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달성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전에서 18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맨유의 선 수비-후 역습에 있어서 바르셀로나를 상대하기에는 순발력이 느리고 상대팀의 강한 압박에 견디지 못합니다. 개인 클래스는 뛰어나지만 팀의 전술적 역할에 있어서 바르셀로나의 허를 찌를 공격 옵션은 아니었다는 뜻이죠. 베르바토프 외에도 여러명의 선수를 예로 들 수 있겠지만요.

다시 한국인 선수 이야기로 돌아오면, 2000년대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였던 박지성-이영표가 유럽에서 성공했던 근본적 배경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에 의해 2003년초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했고, 새로운 소속팀에서 꾸준한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유럽 적응력을 키운끝에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이적 초반에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끊임없는 믿음을 받으며 자신감을 키운 끝에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히딩크 감독이 없었으면 과연 지금처럼 화려한 커리어를 달성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은 장기간 부상으로 뛰지 못하지만 이청용이 볼턴 에이스로 군림했던 것도 감독 의중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습니다. 게리 멕슨 전 감독으로부터 '롱볼 축구' 일색이었던 볼턴의 공격 색깔을 바꾸기 위해 영입된 선수니까요. 프리미어리그에서 차츰 출전 시간을 늘리면서 잉글랜드 적응력을 키웠고, 마침내 공격 포인트를 늘리면서 팀의 주축 멤버로 성장했습니다. 그 여파는 2010년 초 볼턴의 새로운 사령탑을 맡았던 오언 코일 감독의 신임을 받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볼턴이 올 시즌 끊임없는 강등 위기에 시달렸던 것은 이청용 부상이 결정타 였습니다. 그만큼 코일 감독 전술에서 이청용이 중요했다는 뜻이죠.

하지만 '감독 운'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에 빠졌던 선수도 있었습니다. 조원희의 2009년 초 위건 이적은 스티브 브루스 전 감독이 원했던 영입입니다. 그러나 1년 뒤 K리그로 돌아왔습니다. 2009년 4월 A매치 북한전 부상에 따른 팀 내 입지 약화도 있었지만, 위건에서 롱런하지 못했던 주 원인은 당시 위건의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 전술에 어울렸던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와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출전이 무산된 것은 감독 전술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얼마전 은퇴했던 송종국도 페예노르트 시절 감독 운이 없었죠. 2002년 여름 페예노르트 이적 당시에는 팀의 붙박이 주전 멤버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부상에 따른 경기력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고, 2004년 여름 뤼트 굴리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 내 입지가 좁아진 끝에 2005년 초 수원으로 이적했습니다.(그 당시 송종국 인터뷰에서는 굴리트 감독과의 불화를 부정) 그럼에도 굴리트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면 유럽에서 더 오래 뛰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자격이 있었던 이유는 한때 페예노르트의 주축 선수로 활약한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만약 굴리트 감독이 원했던 선수였다면 구단이 수원 이적을 반대했을지 모릅니다.(정확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한국 대표팀 공격을 책임졌던 구자철과 지동원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감독의 신임 이었습니다. 구자철은 볼프스부르크 시절 펠릭스 마가트 감독에 의해 실전에서 꾸준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포지션도 자신이 원하는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윙어 또는 중앙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반면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이후에는 요스 루후카이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며 팀의 주력 멤버로 성장했습니다. 때때로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될 때가 있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팀의 연계 플레이에 관여했습니다. 루후카이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지동원은 마틴 오닐 감독 부임 이후 선덜랜드에서의 경쟁력이 악화됐습니다. 브루스 전 감독 시절 교체 선수로서 틈틈이 출전 시간을 확보한 것과 반대되는 행보입니다. 단순한 유망주라는 이유로 출전 시간이 줄었기보다는 오닐 감독만의 전술적 성향이 확고했습니다. 빅&스몰 형태의 공격진 배치를 선호하니까요. 니클라스 벤트너(194cm)-스테판 세세뇽(172cm)이 주전이었지만, 187cm의 지동원은 벤트너에 비해서 몸싸움과 경험이 부족하며 세세뇽은 오닐 감독 부임 이후 선덜랜드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더욱이 오닐 감독은 잉글랜드 출신 선수를 선호하기로 유명합니다. 지동원은 한때 맨시티전에서 버저비터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지만 그것으로는 오닐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역부족 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동원은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감독 운이 유럽 무대 성공을 좌우하는 초월적 존재까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셀틱의 기성용은 2년 전 닐 레넌 감독 부임 이후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처지와 다릅니다. 끊임없는 실력 향상과 분발 의지로 레넌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동안 자신의 약점으로 거론되었던 수비력이 부쩍 좋아지면서 셀틱 이적 초반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영입 관심을 받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기성용의 전례라면 지동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