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에 이어 유로파리그에서도 프리미어리그 디펜딩 챔피언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그것도 16강 2경기에서 모두 졌습니다.
맨유는 16일 오전 3시(이하 한국시간) 스페인 빌바오 산 마메스에서 진행된 2011/12시즌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 아틀레틱 빌바오(이하 빌바오)전에서 1-2로 패했습니다. 전반 23분 페르난도 요렌테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며 후반 21분에는 오스카 데 마르코스에게 두번째 골을 허용했습니다. 후반 35분에는 웨인 루니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더 이상의 득점은 없었습니다. 1차전 2-3 패배에 이어 2차전마저 덜미를 잡히면서 1~2차전 통합 스코어 3-5로 졌습니다. 박지성은 2차전에서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사진=아틀레틱 빌바오전 1-2 패배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답답한 전반전 보냈던 맨유, 요렌테에게 선제골 허용
스페인 원정에 출격한 맨유는 4-4-2를 활용했던 프리미어리그와 달리 4-3-3으로 나섰습니다. 데 헤아가 골키퍼, 에브라-퍼디난드-에반스-하파엘이 수비수, 캐릭이 수비형 미드필더, 박지성-클레버리가 공격형 미드필더, 긱스-루니-애슐리 영이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면서 골 생산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겠다는 의도죠. 하지만 빌바오 포어체킹에 의해 빌드업이 원활하지 못했고, 허리에서는 상대 선수들의 끈질긴 압박을 받으면서 팀의 공격 전개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긱스, 애슐리 영의 자리 이동이 있었지만 두 선수를 마크하는 빌바오 수비수들의 움직임이 적극적입니다. 맨유가 경기 초반 흐름에서 밀렸습니다.
맨유는 전반 23분 요렌테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습니다. 요렌테는 맨유 문전으로 쇄도할 때 후방에서 찔러준 롱볼을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처리했습니다. 직접 마크했던 퍼디난드도 어쩔 줄 몰랐던 골 장면입니다. 2차전에서 다득점이 필요했던 맨유는 뜻하지 않은 선제골을 내주면서 골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26분에는 애슐리 영의 왼쪽 크로스에 이은 긱스의 헤딩 슈팅이 빌바오 선수에게 차단당하면서 동점골이 무산됐습니다. 한동안 맨유에게 공격 기회가 많이 찾아왔지만 빌바오 선수들이 대거 수비에 가담하면서 골을 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맨유는 빌바오 압박 축구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빌바오 진영에서 점유율이 많았을 뿐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기에는 패스 타이밍이 느립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빠른 볼 처리가 필요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터치가 많아지면서 빌바오 선수들의 견제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대팀 선수들이 1-0 이후 수비에 치중하면서 맨유에게 빠른 패스 속도가 요구되었지만 선수들이 뜻대로 활동하지 못했죠. 특히 애슐리 영은 좌우 측면을 부지런히 누볐지만 부정확한 패스가 여럿 있었습니다. 왼쪽 측면으로 이동할 때는 에브라와 공존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죠. 박지성이 왼쪽 윙어로 출전했으면 더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전반전만을 놓고 보면,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은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중앙에서 동료 선수에게 볼을 받을때의 움직임이 제약되는 느낌이었죠. 이투라스페가 구심점이 된 빌바오 미드필더들의 조직적인 견제를 받으면서 상대 진영 빈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박지성 볼 터치가 결코 적은편은 아니지만 중원에서 뛰는 선수라면 다른 선수보다 볼에 관여하는 움직임이 많아야 합니다. 전반전만큼은 박지성 중앙 배치가 실패작이었죠. 노장 스콜스는 논외하고, 안데르손 부상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애슐리 영이 선발 제외되고 박지성이 왼쪽 윙어로 나왔다면 더 좋았던 경기였습니다.
데 마르코스에게 실점 허용, 루니의 빛바랜 중거리포
맨유는 후반전이 되자 박지성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리고 클레버리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리는 변화를 택했습니다. 클레버리에게 팀 공격 기준점을 맡기면서 대량 득점을 노리겠다는 심산이죠. 후반 4분에는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서 상대팀 선수의 돌파를 차단했고 한동안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취하면서 포백을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맨유 포백의 빌바오 공격 옵션들의 포어체킹을 견디지 못하면서 라인 컨트롤이 불안했습니다. 후반 초반에는 빌바오 선수들에게 두번씩이나 문전 안에서 슈팅을 허용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였죠. 화력 강화가 필요했던 후반전이지만 오히려 수비 불안에 빠지면서 이렇다할 반전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흔히 맨유의 문제점으로 스콜스 대체자가 자주 거론됩니다. 하지만 빌바오전 만큼은 스콜스 후계자 못지않게 플래처 결장 공백이 컸습니다. 플래처는 수비 공헌이 많으며, 1차패스 연결에 적극적이면서, 좁은 공간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성향입니다. 빌바오처럼 공격 전개가 빠른 팀에 통할 수 있는 미드필더죠. 그런데 플래처는 지난해 12월 중반부터 궤양성 대장염으로 뛰지 못했습니다. 맨유의 2009년, 2011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전 패인중에 하나는 플래처 공백을 메우지 못했습니다. 상대 허리 압박이 느슨해졌죠. 빌바오전에서도 그런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맨유 미드필더들의 전체적인 압박의 짜임새가 떨어지죠.
2차전 원정에서 지지부진했던 맨유는 후반 21분 데 마르코스에게 두번째 골을 허용했습니다. 스몰링의 불안한 클리어링이 데 마르코스의 왼발 슈팅에 이은 골이 됐죠. 통합 스코어 2-5로 뒤지면서 16강 탈락이 굳어졌습니다. 17분 포그바-스몰링(out 퍼디난드-캐릭) 22분 웰백(out 긱스) 교체 투입을 단행했지만, 전반 초반부터 빌바오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4골 역전극을 펼치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후반 35분에는 루니가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골을 터뜨리며 맨유가 1-2로 추격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빌바오의 수비 전환이 빨라지면서 맨유 공격 옵션들이 연계 플레이에 의해서 상대 수비를 뚫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루니 추격골은 선수 개인의 역량이 컸죠.
그러나 맨유는 더 이상 골을 넣지 못하고 16강에서 탈락했습니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 강팀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두 대회에서는 비디치 장기 부상에 이은 수비 불안을 이겨내지 못했던,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떨어지면서 공격 전개가 매끄럽지 못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시티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지만 유럽 대항전에서 고개를 숙인 것이 찜찜합니다.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형 선수를 영입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수비쪽에서는 퍼디난드의 대체자를 키우거나 에반스-스몰링의 폼이 올라와야하며, 중원에서는 그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클레버리가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할 경우 유능한 미드필더를 데려와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맨유는 남은 잔여 시즌에서 프리미어리그 통산 20번째 우승 도전에 전념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