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졸전입니다. 첼시가 잉글리시 FA컵 16강 버밍엄 시티(2부리그)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겼습니다. 후반 16분 다니엘 스터리지의 헤딩 동점골로 패배를 모면했지만 결과는 무승부였고 추후 재경기를 치르게 됐습니다. 프리미어리그 5위 추락 및 UEFA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재경기가 반갑지 않습니다. 특히 경기 내용이 안좋았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경기력이라면 시즌 후반기 전망이 암울합니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경질설이 줄기차게 제기 될 전망입니다.
[사진=버밍엄전 1-1 무승부를 발표한 첼시 공식 홈페이지 (C) chelseafc.com]
첼시 FA컵 무승부, 이유있는 졸전
첼시는 버밍엄전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터닝 포인트로 삼았어야 했습니다. 각종 대회를 포함한 최근 13경기에서 4승7무2패로 부진했고 최근 4경기에서는 3무1패에 그쳤습니다. 이기는 본능을 잃었습니다. 2부리그 클럽과의 홈 경기에서 모처럼 승리를 만끽하며 주중 나폴리 원정을 대비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내림세가 버밍엄전 경기력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형적인 강팀이었다면 스터리지 동점골 이후 맹공을 펼치면서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여러차례 연출했을지 모릅니다. 첼시도 나름 공격적인 경기를 지향했지만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버밍엄전에서는 다시 4-3-3으로 회귀했습니다. 최근 마타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세운 4-2-3-1을 활용했지만 버밍엄전은 램퍼드가 선발 제외되면서(나폴리 원정을 겨냥한 휴식, 후반 37분 교체 출전) 본래의 포메이션으로 돌아갔죠. 메이렐레스-미켈-하미레스가 허리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버밍엄의 끈질긴 수비를 극복하기에는 미드필더들의 창의적인 패스가 부족했습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나름 연계 플레이에 충실했지만 상대 수비에게 뻔히 읽히는 패스가 잦았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공격 전개를 통해서 박스 안쪽을 비벼주는 경기 운영이 필요했지만 첼시의 미드필더 구성부터 날카로움이 떨어집니다.
첼시의 문제점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전체적인 무게 중심이 중앙쪽으로 쏠렸습니다. 마타-스터리지 같은 좌우 날개가 측면쪽에서 자주 활동하면서 버밍엄 수비 밸런스를 옆쪽으로 분산시켰다면 토레스에게 공간이 열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두 선수가 측면쪽으로 빠질때는 이미 버밍엄이 수비 전열을 가다듬은 상황이었죠. 두 선수가 옆쪽 침투를 늘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타의 경우는 최근 중앙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포지셔닝이 허술했고, 스터리지는 이전 경기와 비교하면 팀 플레이가 개선되었다는 느낌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드필더들이 토레스와 공존하지 못했습니다. 마타-스터리지가 애매한 역할을 취하는 바람에 미드필더들과 토레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메이렐레스-하미레스 중에 한 명이라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갈 필요가 있었죠. 버밍엄 역습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지만 팀의 공격이 어려울때는 누군가 과감히 앞쪽으로 접근하면서 공격을 전개했어야 합니다. 그런 어려움 때문인지 전반 30분 이후부터 4-2-3-1로 전환하여 스터리지-마타-하미레스로 짜인 2선 미드필더진을 구축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죠.
그리고 선수들이 너무 연계 플레이에 집착했습니다. 서로 볼을 주고 받는데 집중했지만 때로는 상대 수비를 흔드는 영리함이 요구됐습니다. 버밍엄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했던 시절에 질긴 수비를 보여줬던 팀이죠. 그런 팀과 상대했다면 공격의 담백함이 요구됐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마타-스터리지의 역할에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토레스가 공중볼을 따내고 주변 선수가 슈팅을 날렸던 상황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주 연출되었어야 합니다. 적어도 토레스가 제공권에서 상대 수비를 이겨냈으니까요.(그러나 버밍엄 수비를 상대로 볼 키핑이 취약했습니다.)
전반 20분에는 버밍엄 왼쪽 코너킥 과정에서 머피에게 선제골을 빼앗겼습니다. 첼시 선수들이 골문에 많이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머피를 마크하지 못하면서 실점의 빌미를 허용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실점을 허용하면서 이날 경기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여운을 안겨줬죠. 2분 뒤에는 마타가 페널티킥 실축했습니다. 골을 넣지 못하면서 맥이 빠진 경기력을 거듭했죠. 실점은 어쩔수 없었지만 마타의 실축은 첼시 선수들의 사기가 꺾이는 상황으로 전개됐습니다. 전반전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하프타임이 끝난 뒤에는 토레스를 빼고 드록바를 교체 투입했습니다. 토레스는 이 날도 골이 없었습니다. 후반 12분에는 칼루가 미켈을 대신해서 투입하면서 첼시의 공격적인 경기 운영이 두드러졌습니다. 하미레스-메이렐레스 더블 볼란치 조합이 형성되어 중앙 압박을 강화하면서 공격 기회가 늘었습니다. 루이스가 미드필더 지역으로 올라와서 버밍엄 선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으려는 장면도 있었죠. 버밍엄과의 허리 싸움에서 이기면서 일방적인 공격 전개를 거듭했습니다. 후반 16분에는 스터리지가 골문에서 이바노비치의 오른쪽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 동점골을 뽑았습니다. 이 골이 없었다면 첼시는 홈에서 2부리그 클럽에게 패했을 겁니다.
하지만 첼시는 더 이상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버밍엄 중앙 미드필더들이 사실상 수비수 역할을 소화하자 첼시가 드록바를 활용한 공격이 무뎌졌습니다. 마타도 이렇다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죠. 그동안 많은 경기를 뛰었던 과부하가 후반전 체력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의 패스가 빈번했지만 앞쪽으로 패스를 내주기에는 버밍엄 수비 참여 인원이 많았습니다. 후반 37분에는 마타를 빼고 램퍼드를 내세웠지만 버밍엄의 막강한 수비 앞에서 효과가 없었습니다. 공격 기회가 많았을 뿐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FA컵 토너먼트 경기였던 만큼 중요한 고비처에서 한 방을 터뜨렸어야 합니다. 실제로는 없었죠. 첼시의 승리 본능이 무뎌졌다는 뜻입니다.
버밍엄전을 보면서 느낀건, '굳이 메이렐레스가 필요했나?'라는 생각입니다. 메이렐레스는 부지런한 움직임을 자랑하지만 램퍼드와 비교하면 패스의 날카로움이 부족합니다. 하미레스와의 콘셉트가 겹치는 선수죠. 램퍼드와 유사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아닙니다. 첼시는 지난해 여름 램퍼드 대체자를 영입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램퍼드가 빠지면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을 풀어줄 적임자의 존재감이 부족합니다. 더욱이 램퍼드는 토레스와의 호흡이 안맞죠.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에시엔에게 기대를 걸어봐야겠지만 실전 감각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미드필더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면 힘든 시즌 후반기를 보낼지 모릅니다. 버밍엄전 졸전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