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가장 극적인 골을 꼽으라면 버저비터골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에 팀 승리를 이끄는 골을 터뜨리는 장면 말입니다. 약팀이 강팀을 제압하거나 라이벌전 승리라면 버저비터골을 쏘아올린 짜릿함이 커집니다. 축구에서 버저비터골은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무렵에 엄청난 체력을 소비합니다. 농구처럼 슛이 자주 성공하거나 야구처럼 끝내기 결승타가 빈번한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희소 가치가 크다는 뜻이죠.
2009년 9월 2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맨체스터 더비에서 나왔던 마이클 오언의 버저비터골을 기억하십니까. 후반 49분 맨시티가 크레이그 벨라미 동점골에 의해 3-3으로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언의 예상치 못했던 한 방이 터지면서 맨유가 4-3으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49분에 실점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골을 넣었습니다. 경기 종료가 임박했음에도 이대로 경기를 끝낼 수 없다는 승부근성이 발동한 셈이죠. 맨유 입장에서는 기적 이었습니다.
[사진=지동원 (C) 선덜랜드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safc.com)]
그리고 2012년 1월 2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에 벌어졌던 선덜랜드와 맨시티의 맞대결. 현지 시간으로는 1월 1일 저녁 입니다. 잉글랜드의 새해 첫 날 부터 '태극전사' 지동원이 버저비터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후반 48분 선덜랜드가 역습을 펼칠 때 왼쪽 측면에서 볼을 터치하면서 박스 부근까지 접근했고, 중앙에 있던 스테판 세세뇽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을 때 골문과 가까운 쪽에 접근하면서 맨시티 골키퍼 조 하트를 제치고 왼발로 골을 해결지었습니다. 선덜랜드의 1-0 승리를 이끈것과 동시에 리그 선두 맨시티에게 패배를 안겼습니다. 현지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 지동원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지동원의 버저비터골은 감격스러운 골 장면입니다. 맨시티전 이전까지 3경기 연속 결장하면서 마틴 오닐 감독 부임 이후 팀 내 입지가 축소됐습니다. 오닐 감독이 최전방 공격수를 빅&스몰로 구성하면서 잉글랜드 선수를 선호하는 것은 익히 알려졌죠. 지동원은 몸싸움이 부족하기 때문에 타겟맨에 세우기에는 니클라스 벤트너(경험)-코너 위컴(191cm, 잉글랜드 커넥션)보다 경쟁력에서 밀립니다. 쉐도우쪽에서는 세세뇽 기량이 최근에 물이 올랐죠. 그래서 지동원이 실전에서 출전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벤트너는 기복이 심했고 위컴은 19세 유망주였을 뿐입니다. 지동원은 적은 출전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강력한 임펙트가 필요했습니다.
4경기 만에 출전한 지동원은 후반 32분 교체 투입했습니다. 선덜랜드가 맨시티 파상 공세를 연이어 막아내면서 수비에 자신감이 붙었던 시점 이었습니다. 지동원이 오닐 감독에게 선택 받은 것은 선덜랜드 벤치가 경기를 승리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선덜랜드는 맨시티에게 슈팅 8-27(유효 슈팅 3-5, 개) 점유율 31-69(%)로 밀렸습니다.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맨시티 공격 템포를 늦추는데 주력했었죠. 특히 맨시티 공격수 에딘 제코는 슈팅 10개를 날렸음에도 단 1골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제코의 불운이 거듭될수록 선덜랜드가 경기 흐름에서 결코 밀리지 않게 됐죠. 그리고 지동원이 버저비터골을 넣으며 선덜랜드가 1:0으로 승리했습니다. 리그 선두팀을 이렇게 요리했습니다.
지동원은 맨시티전 골에 의해 팀 내 입지에서 경쟁력이 생기면서 주전으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선덜랜드가 고질적인 득점 부족(19경기 23골)에 시달렸음을 감안하면 벤트너-세세뇽(이상 3골) 위컴(1골) 같은 공격수들의 빈곤한 득점력이 아쉬움에 남습니다. 아무리 오닐 감독이 빅&스몰 조합을 원할지라도 공격수의 본분은 골 입니다. 지동원은 리그 13경기 중에서 1경기만 선발 출전했을 뿐 넉넉한 출전 시간을 확보했던 선수는 아닙니다. 오닐 감독에게 충분한 기회를 얻으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이란전 2골,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 펼쳤던 역량을 봐도 말입니다.
맨시티전 골은 잉글랜드 현지에서 자신의 인지도를 넓히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경기를 봤던 잉글랜드 축구팬들도 버저비터골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잉글랜드 현지에서 한국인 공격수의 경쟁력이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겠죠. 과거에는 이동국이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했고 지금의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2011년 프리미어리그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동국과 박주영은 현존하는 한국 최정상급 공격수지만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지동원은 시즌 초반 첼시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렸지만 그 이후에도 출전 시간 부족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맨시티전 골에 의해 한국인 공격수가 잉글랜드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지동원의 맨시티전 골은 연령별 대표팀에서 입지를 확보하는 또 다른 이득을 얻었습니다. 최강희호 출범을 앞둔 국가 대표팀에서는 이동국의 대표팀 승선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박주영의 와일드카드 합류가 유력합니다. 지동원이 두 대표팀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려면 소속팀에서 단련된 경기 감각이 중요합니다. 시즌 전반기까지 실전 경험 저하에 빠지자 10-11월 A매치에서 부진했습니다. 최근에는 선덜랜드에서 3경기 연속 결장했죠. 이제는 맨시티전에서 버저비터골을 넣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할 전망입니다. 현지 기준으로 잉글랜드 새해 첫 날부터 멋진 골 장면을 연출한 지동원의 2012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