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박주영의 아스널 이적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유럽 무대에서 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빅 클럽에서 활약할 기회가 한정적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와일드카드에 합류해도 최소 3위 이내 성적을 거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전 소속팀 AS모나코가 2부리그로 강등된 상황에서 모험적인 도전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이미 선수 본인은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열망하며 아스널을 차기 행선지로 택했죠.
[사진=박주영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arsenal.com)]
그러나 박주영의 최근 행보는 위태롭습니다. 주중 칼링컵과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성사되면서 꿈에 그리던 유럽 대항전을 경험했지만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시즌 중반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프리미어리그에 모습을 내밀지 못한 것은 팀 내 입지가 확고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아스널이 4-2-3-1을 고수하면서 '원톱' 로빈 판 페르시 득점력에 의존했지만 오히려 박주영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7일 올림피아코스전 1-3 패배를 봐도 판 페르시가 없는 아스널은 허약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박주영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지속적인 출전 기회를 얻으려면 아스널이 4-4-2로 전환해야 합니다. 굳이 박주영은 아니더라도 아스널이 판 페르시 의존증에서 벗어나려면 득점력이 뛰어난 또 하나의 공격 옵션이 필요합니다. 또는 판 페르시를 집중 견제하려는 상대 수비수를 자신쪽으로 유인하며 동료 공격수를 도와줄 선수의 존재감이 절실합니다. 아스널의 문제점은 지난 시즌까지 에이스로 활약했던 세스크 파브레가스(FC 바르셀로나)처럼 많은 골을 넣어줄 미들라이커가 없습니다. 제르비뉴-아르테타-월컷은 마무리가 떨어지는 선수들입니다. 박주영이 여전히 아스널에 필요하거나, 또는 아스널이 새로운 공격수를 영입할 이유를 각인시키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스널의 4-4-2 전환이 무리수일지 모릅니다. 송 빌롱-아르테타-프림퐁-코클린-로시츠키 같은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들이 4-4-2 체제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에는 활동 폭이 넓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활동 폭은 히트맵이 아니라, 경기 상황에 따라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고 볼 배급에 관여하며 압박까지 도맡는 능수능란한 활약을 뜻합니다. 볼이 없을 때의 움직임까지 많아야 합니다. 지금의 아스널 미드필더 폼을 놓고 보면 4-4-2가 벅찰지 모릅니다. 그나마 부상에서 돌아오는 윌셔에게 기대를 걸을 수 있겠지만요. 아스널이 4-2-3-1을 줄기차게 활용했던 이유입니다.
박주영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출전 시간을 늘리고 싶다면 슈퍼 조커로서 경쟁력이 갖춰져야 합니다. 슈퍼 조커는 한 번에 골을 해결지을 능력과 스피드를 겸비해야 존재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조커로서 경기 흐름을 뒤집기에는 스피드가 느립니다. 개인의 주력이 아닌 팀의 경기 템포를 읽는 타이밍을 말합니다. 아직까지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른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팀 플레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나마 주중 경기에서 '아르샤빈-베나윤과 호흡이 잘 맞는다'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줬지만 팀 플레이에 더욱 열의를 다해야 합니다. 조커 경험까지 적은 터라 프리미어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박주영은 제르비뉴-샤막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차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벵거 감독의 선택을 받은 선수입니다. 판 페르시가 유리몸 기질을 완전히 떨쳤다고 볼 수 없으며, 조만간 박싱데이를 앞둔 상황에서는 박주영의 프리미어리그 출전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름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아스널에 합류하면서 팀 적응이 늦어졌고, 모나코 강등에 의해 프리시즌에서 실전 감각을 쌓지 못했던 어려움, 그리고 지금까지 아스널에서 꾸준히 뛰지 못하면서 실전 감각 저하가 누적됐습니다. 팀 내 입지를 반전시킬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아스널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새로운 공격수를 영입할 것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가 등장했습니다. 아스널이 4-2-3-1을 고수하는 상황이라면 공격수보다는 득점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를 보강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아스널이 빅 네임 공격수를 영입하면 박주영 입지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스널이 빅 클럽이자 프리미어리그 빅4 잔류가 절실한 입장으로서 새로운 공격 옵션을 영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만약 아스널이 박주영을 활용할 의지가 약하면 임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주영은 경기에 자주 뛸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박주영은 아스널보다는 꾸준한 출전 기회가 보장되는 팀이 더 어울렸을지 모릅니다. 아스널은 너무 커다란 도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병역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빅 클럽에서 활약할 기회가 흔치 않지만, 축구 선수는 경기에 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지 오래입니다. 박주영은 아스널 도전을 택하면서 팀에서 생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제르비뉴-샤먁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