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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과연 지동원은 위컴에게 밀린걸까?

 

선덜랜드 지휘봉을 잡은 마틴 오닐 감독이 자신의 데뷔전에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1일 저녁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 블랙번과의 홈 경기에서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팀의 위기를 구했습니다. 전반 17분 시몬 부크세비치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39분 데이비드 본이 동점골, 후반 48분 세바스티안 라르손이 역전골을 넣으면서 오닐 감독에게 승리를 안겨줬습니다. 선덜랜드는 블랙번전 승리로 16위(3승5무7패)에 진입했지만 지동원 부진이 아쉬움에 남았습니다.

[사진=지동원 (C) 선덜랜드 공식 홈페이지(safc.com)]

이날 경기는 선덜랜드에게 일방적인 공격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슈팅 23-3(유효 슈팅 5-2, 개) 코너킥 9-0(개) 점유율 68-32(%)를 기록하며 홈에서 공세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유효 슈팅 숫자를 봐도 선덜랜드의 효과적인 경기 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상대팀보다 볼을 잡을 기회가 많았음에도 박스 안에서 세밀하지 못한 패스 플레이가 거듭되면서 공격이 끊겼습니다. 리차드슨-라르손이 좌우에서 띄웠던 크로스가 전체적으로 부정확했고, 전반 29분에는 위컴이 박스 왼쪽에서 낮은 자세로 슈팅을 날렸으나 몸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면서 골 기회가 무산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선덜랜드는 후반전에 3선의 무게 중심을 앞쪽으로 올리면서 미드필더와 수비수 사이에서 볼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반전에 비해 짧게 썰어주는 패스가 늘어나면서 블랙번의 1차 압박을 극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위컴이 블랙번 센터백 삼바-스콧 던 조합을 뚫지 못했고, 세세뇽이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흔드는 움직임이 줄었습니다. 블랙번이 후반 들어 수비 참여 인원을 늘리면서 위컴-세세뇽 투톱의 위력이 점점 줄었습니다. 콜백, 데이비드 본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전방으로 연결하는 킬러 패스가 뜸했던 것도 옥의 티 였습니다. 두 선수는 횡패스를 거듭하면서 블랙번에게 수비진을 가다듬는 타이밍을 벌어줬습니다.

블랙번은 후반전에 잠그기를 시도했습니다. 전반 21분 지베가 부상으로 교체 되었고, 후반 시작 직전에는 지베를 대신해서 투입되었던 올손마저 몸이 여의치 않으면서 벤치로 내려왔습니다. 후반 5분에는 살가도까지 교체하면서 이른 시간에 교체카드 3장을 모두 썼습니다. 후반전에 공격적인 승부수를 띄우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그라운드에 남아있는 선수들이 1-0 리드를 지키는데 주력하면서 수비에 치중했죠. 이 과정에서 선덜랜드 공격의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오닐 감독은 자신의 데뷔전에서 위컴(191cm)을 타겟맨, 세세뇽(172cm)을 쉐도우로 배치했습니다. 전형적인 '빅&스몰' 조합이었죠. 하지만 위컴이 박스 안에서 포스트플레이를 펼치기에는 블랙번 수비 저항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후반 31분에 지동원과 교체 됐죠. 18세 유망주 공격수가 성인 무대에서 원맨쇼 기질을 발휘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반면 세세뇽은 선덜랜드 선수 중에서 가장 잘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쇄도하거나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는 위협적인 공격 장면을 여러차례 연출하며 팀 공격의 활기를 띄웠습니다. 후반전에는 상대 수비 숫자가 늘어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팀내에서 믿음직 했습니다. 역설적으로는 선덜랜드 공격 옵션 중에서 세세뇽만 잘했을 뿐이죠.

그런데 오닐 감독이 위컴을 선발로 투입한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위컴은 지난달 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뒤 블랙번전에서 복귀전을 치렀습니다. 어쩌면 이날 경기 부진은 부상 후유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76분 출전한 것은 오닐 감독이 활용할 의지가 있음을 뜻합니다. 오닐 감독은 애스턴 빌라 감독 시절 잉글랜드 국적 선수들을 선호했습니다. 헤스키, 카레브 같은 장신 공격수들을 타겟맨에 배치하면서 아그본라허, 애슐리 영을 쉐도우로 활용하는(때로는 측면 미드필더로 전환하는) 빅&스몰 조합을 즐겨 활용했죠. 자신의 전술에 맞는 타겟맨으로서 지동원이 아닌 위컴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위컴은 블랙번전에서 오닐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죠.

위컴을 대신해서 투입했던 지동원은 조용한 공격을 펼쳤습니다. 후반 31분 교체 투입하면서 9개의 패스를 연결했지만(7개 성공) 블랙번의 두꺼운 수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오닐 감독이 선호하는 타겟맨으로 자리잡기에는 파워와 몸싸움이 부족합니다. 한국 대표팀에서는 원톱으로 활약한 경험이 결코 부족하지 않지만 전형적인 타겟맨은 아닙니다. 187cm의 신장이 오닐 감독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요. 쉐도우로 배치되기에는 세세뇽의 폼이 시즌 초반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브루스 전 감독 시절이었다면 세세뇽과의 공존이 가능했을 기세였지만, 오닐 감독은 잉글랜드 국적-빅&스몰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동원보다는 위컴이 더 유리합니다.

만약 지동원이 블랙번전에서 팀 승리에 기여하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면 위컴과의 주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지 모릅니다. 브루스 전 감독 시절에는 지동원이 위컴보다 더 잘했습니다. 하지만 블랙번전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죠. 앞으로 벤트너까지 부상에서 돌아오면 지동원이 타겟맨으로 자리잡기에는 벅찰지 모릅니다. 본래 타겟맨보다는 쉐도우가 더 적합한 선수지만 세세뇽이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팀 공격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세세뇽은 골이 부족한 선수입니다.(14경기 2골) 지동원이 선덜랜드의 주전으로 자리잡고 싶다면 득점력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합니다. 선덜랜드 공격수들의 피니시가 떨어지는 것이 지동원에게 기회이자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