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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챔피언결정전 무료 입장, 안타까운 현실

 

지난 28일 오전 울산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눈에 띄는 팝업창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오는 30일 저녁 6시 10분에 진행되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 무료 입장을 실시하겠다는 문구가 떴습니다. 수많은 울산팬들이 경기장을 찾기를 유도했죠. 홈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2005년 이후 6년 만에 K리그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습니다. 관중석이 많이 비어있는 모습은 챔피언결정전 위상에 걸맞지 않죠. 울산팬 입장에서는 돈을 쓰지 않고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행운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평일 저녁 6시 10분 경기는 많은 관중들이 운집하기에는 매우 이른 시간입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평일 오후와 저녁에 학원에 가거나 또는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경기장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평일 저녁 스포츠 경기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이 찾느냐에 따라 흥행 여부가 가려집니다. 직장인 퇴근 시간이 대략 6시인데, 10분 안에 경기장에 도착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챔피언결정전을 보기 위해서 관중석 이곳 저곳을 찾는 시간까지 소비됩니다. 자가용 운전자들은 주차까지 해야 합니다. 더욱이 울산은 지하철이 없죠. 다수의 울산 직장인 팬들은(특히 울산에 거주하는 분들) 경기 관전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프로 스포츠 결승전에서 무료 입장을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그런데 울산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의하면 저녁 6시 10분 경기 시간은 프로축구연맹이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느 모 공중파 TV 중계 때문에 경기 시간이 당겨졌습니다. 인기 스포츠의 척도는 TV 중계 입니다. 중계가 활발할수록 대중들이 특정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많아지죠. 프로야구와 K리그의 대표적인 차이를 꼽으라면 TV 중계 입니다. 프로야구는 웬만한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지만 K리그는 후반전 중계 및 녹화 중계가 빈번합니다. 어떤 경기는 TV 중계조차 없죠.

평일 저녁 6시 10분 경기는 프로축구연맹이 방송사 입장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해석으로 풀이됩니다. 프로축구연맹이 스스로 6시 10분 경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울산 구단과 더불어 관중 문제를 고민했겠죠. 제가 TV를 많이 보지 않지만, 저녁 6~7시 TV 프로그램 시청률이 황금시간대에 비해서 취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7~9시에 챔피언결정전을 중계하면 기존에 중계되었던 드라마 취소를 감수해야 합니다. 한국인들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현실을 놓고 볼 때 방송사가 챔피언결정전 생중계를 편성하는 것은 힘든 결단일지 모릅니다.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K리그 챔피언결정전은 K리그가 손해를 보게 됐죠.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시청자들의 입김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11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롯데vsSK)이 연장 10회까지 이어지면서 어느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됐습니다. 경기가 길게 진행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이 지연되면서 결국 취소됐죠. 평소에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봤던 시청자들의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취소 예고가 없었기 때문에 논란이 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 출연자였던 김선아가 미투데이를 통해서 큰절로 사과하는 장면을 올렸죠.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었지만 당시 논란이 어땠는지를 반증합니다. 공중파 입장에서 스포츠 생중계를 편성하기에는 다른 프로그램의 결방을 감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챔피언결정전 1차전은 평소보다 시간이 당겨졌습니다. 기존에는 저녁 7시 또는 7시 30분 경기를 진행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은 6시 10분에 편성됐습니다. K리그 위상을 위해서는 챔피언결정전이 공중파에 중계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소 불리한 시간에 일정이 확정되고 말았죠. 프로축구연맹 입장에서는 공중파 중계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K리그를 접하려면 스포츠 케이블 채널보다는 공중파가 더 유리하죠. 공중파 시청률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중파에서 챔피언결정전이 전파되기에는 K리그의 희생이 불가피 했습니다.

울산 구단도 6시 10분 경기에 대해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프로 구단이라면 관중 숫자에 민감할 수 밖에 없죠. 어쩔 수 없이 무료 입장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울산의 무료 입장은 재정적으로 손해입니다. 관중 입장권을 통해서 수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억에 의하면, K리그 빅 매치가 무료 입장이 실시된 사례는 지난 몇년 동안 전무했던 것 같습니다. 2003년 11월에는 성남이 K리그 우승을 조기 확정지으면서(당시 풀리그 운영) 시즌 막바지에 무료 입장을 실시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 날 성남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당시 상대팀은 '최하위' 부천이었을 겁니다. 빅 매치가 아니었죠.

K리그 경기 시간은 관중의 편의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약 관중이 중요하지 않다면 축구팬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경기장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축구팬보다는 입장료를 지불한 축구팬이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현장을 찾는 축구팬들이 선호하는 시간대에 K리그 경기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방송 편성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경기장을 찾는 관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K리그 현실은 그렇지 않죠. 챔피언결정전 1차전 저녁 6시 10분 경기가 무료 입장이라고 할지라도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퇴근 시간은 6시 입니다. 이미 울산이 무료 입장을 홍보하면서 경기 시간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울산의 잘못을 따지자는 글을 쓴 것도 아닙니다.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K리그의 현실이 안타깝고 야속할 뿐이죠.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