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칼링컵 8강 홈 경기에서 2부리그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1-2 충격패를 당했습니다. 그동안 올드 트래포드에서 강한 면모를 발휘했으나 하부리그 팀에게 패할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백업 선수 위주로 스쿼드를 구성했음을 감안해도 맨유 답지 못한 결과를 거둔 것은 분명합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사과하며 팀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진=크리스탈 팰리스전 1-2 패배를 발표한 맨유 홈페이지 (C) manutd.com]
박지성은 연장전을 포함해서 120분 풀타임 출전하며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풀백을 넘나드는 종횡무진 경기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하파엘 다 실바가 후반 18분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박지성이 오른쪽 풀백으로 이동한 것이 맨유 중원이 허약해지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1분 뒤 크리스탈 팰리스의 윌프레드 자하가 맨유 진영 가운데에 자리잡았던 대런 암브로스에게 대각선 패스를 연결했을 때 깁슨-포그바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근처에서 차단하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이 암브로스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애초부터 간격이 벌어진 상황이었죠. 깁슨-포그바의 집중력 부족이 아쉬웠습니다.
필드골 장면까지 없었습니다. 페데리코 마케다가 후반 24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넣었을 뿐입니다. 슈팅 19-11(유효 슈팅 6-6, 개)로 앞섰으나 필드골이 없었던 것은 골 결정력이 부족했음을 뜻합니다. 경기 초반부터 크리스탈 팰리스의 견고한 압박을 받으면서 공격 전개 속도가 떨어진 것이 패스 미스를 거듭하는 공격력 저하로 이어졌고, 상대 수비진을 완전히 위협하지 못한 상태에서 슈팅을 날리는 비효율적인 경기 흐름이 연출됐습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팀을 압도하는 공격력이 미흡했던 것 처럼, 맨유는 강력한 수비를 자랑하는 상대팀에게 취약한 면모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맨유는 칼링컵 충격패 속에서 한 가지 명분을 얻었습니다. 오는 8일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6차전 FC 바젤(스위스) 원정을 위한 일종의 예방 주사를 맞았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약한팀이라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지난 10월말 맨체스터 시티전 1-6 참패 이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경기 내용에서는 시즌 초반보다 공격력, 중원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웨인 루니, 루이스 나니, 애슐리 영, 필 존스, 안데르손 같은 주요 선수들이 기복이 심한 면모를 떨치지 못한 요인까지 겹쳤죠. 이대로의 경기 흐름이라면 바젤 원정에서 위험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맨유는 바젤 원정에서 패하면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 탈락합니다. 지난 9월 홈 경기에서는 3-3 무승부를 허용할 정도로 수비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4일 애스턴 빌라 원정에 이은 스위스 원정 경기를 치르면서 주력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불가피 합니다. 특히 바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격진이 포어 체킹을 펼치거나 미드필더진에서 압박의 세기를 높이면서 맨유의 중원 불안을 공략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주말에 맨유 원정 1-1 무승부를 거둔 뉴캐슬이 압박 축구를 통해서 일말의 성과를 얻었고, 이번에는 크리스탈 팰리스가 재미를 봤습니다. 바젤도 맨유의 약점을 간파했겠죠.
그런 맨유는 바젤전에 가용할 최적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찾아야 합니다. 안데르손-클레버리가 부상 당했고, 루니를 중앙 미드필더로 내리기에는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고립되는 문제점이 따르면서 중원에 가용할 여력이 한정적입니다. 캐릭-긱스-플래처-박지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최근 경기에서 물 오른 호흡을 과시했던 조합이 없었습니다. 시즌 초반 클레버리-안데르손 조합 이외에는 손발이 맞는 중원 조합이 없었죠. 지난 시즌 후반에는 캐릭-긱스 조합이 공격력에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결승 FC 바르셀로나전에서 수비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긱스의 폼은 그때보다 떨어진 상황입니다.
맨유의 중앙 문제가 골치 아픈 이유는 윙어들의 활약이 저조합니다. 나니-발렌시아-애슐리 영의 기복이 심합니다. 그나마 박지성이 꾸준함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팀의 중원 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죠. 공격진에서는 루니가 최근 6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지면서 맨유의 화력이 약해졌습니다. 바젤 원정에서 승리하려면 기본적으로 골이 필요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역꾸역 승점을 챙겼던 경기력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어중간한 경기 운영에서 벗어나 호랑이가 먹잇감을 포착하여 덤벼드는 강인한 면모가 바젤 원정에서 필요합니다.
만약 맨유가 32강에서 탈락하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데 지장이 따를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얼마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1월 이적시장 선수 영입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경기력이 거듭 난조에 빠지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유럽 제패 및 프리미어리그 선두 맨체스터 시티를 따라잡으려면 지금의 스쿼드로는 역부족입니다. 32강에 진출하면 새로운 선수(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에 뛰지 않았던 선수)를 영입해서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 합류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바젤 원정은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된 맨유는 과거의 교훈을 떠올려야 합니다. 2007/08시즌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지만 칼링컵 32강에서 코벤트리 시티(당시 2부리그)에게 홈에서 패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칼링컵 첫 경기부터 패배의 쓴맛을 봤습니다. 그 아쉬움이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을 거듭하는 자극제가 됐습니다. 바젤 원정을 앞둔 맨유는 강팀의 전형적인 색깔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