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레바논전 1-2 패배는 '레바논 쇼크', '레바논 참사'라는 표현이 아주 어울립니다. 중동 원정의 어려움, 열악한 잔디, 관중들의 레이저 공격을 감안해도 경기 내용에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무리 아시아의 강팀이라고 해서 아시아 약체들을 모두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8월 일본전 0-3 패배를 기점으로 대표팀이 정체를 거듭했습니다. 조광래호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보장받으려면 경기 내용이 긍정적으로 달라져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습니다.
레바논 쇼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앞날이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이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지역예선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레바논과 더불어 승점 10점 동률을 나타냈으며, 쿠웨이트는 승점 8점입니다. 한국이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3차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패하고 레바논이 UAE를 제압하면 한국은 조3위로 탈락합니다. 레바논(13점)-쿠웨이트(11점)-한국(10점) 순으로 집계되기 때문이죠. 그나마 쿠웨이트전은 홈 경기라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쿠웨이트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 의욕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아무리 한국이 안방에서 강했지만 쿠웨이트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국은 레바논 원정을 이겼어야 했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보장받으려면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 선수의 도리입니다. 단순한 평가전이었다면 레바논 원정은 여유있게 보내도 됩니다. 하지만 그 경기는 한국의 월드컵 운명이 걸려있는 경기입니다. 현지 사정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선수들이 중동 원정을 1~2번 치른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홈팀 텃세는 감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알사드 논란을 봐도 중동의 한국 축구 견제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 강호의 체면을 지키려면 그런 어려움을 감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레바논을 이겼어야 합니다.
만약 조광래호가 레바논을 제압했다면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을 것입니다.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전에서는 일부 선수에게 휴식을 제공하며 팀을 여유롭게 운영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레바논전에서 패하면서 쿠웨이트전에서는 최정예 멤버 활용이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아무리 한국이 쿠웨이트전에서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경기 내용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국내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질지 모릅니다. 지난 UAE전에서도 마찬가지였죠. 한국 축구는 세계를 지향하는 팀이지, 월드컵 최종예선 및 본선 진출에 만족할 클래스는 아닙니다.
한국이 쿠웨이트를 이긴다고 칩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기력으로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승승장구 할지 의문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선호하는 패스 축구는 긍정적으로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패스 축구가 기존의 한국 축구 색깔과 콘셉트가 달랐지만, 조광래 감독이 팀 전술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불안 요소가 터졌습니다. 소속팀에서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유럽파를 선발로 중용한 것, 일부 선수의 포지션 전환 실패, 상대 진영에서의 패스 정확도 부족, 포백 조합의 미완성, 주전과 비주전의 기량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 등등 다발적인 문제점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팀이든 시행착오가 있지만 조광래호는 오히려 불안 요소가 늘어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조광래호는 출범한지 1년 4개월 됐습니다. 대표팀이 클럽팀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패스 축구라는 새로운 전술이 정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경기 내용에서는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여운을 내비쳐야 합니다. 아무리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해도 팀이 추구하는 철학이 확고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패스 축구는 완성 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패스를 주고 받는 선수와의 움직임부터 여전히 어색합니다. 특히 11월 A매치 두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했던 공격 옵션들의 몸 놀림이 전체적으로 무거웠습니다. 소속팀 경기에서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여파가 조광래호에서 나타났습니다. 서정진의 경우는 기복이 심했죠. 문제는 경기 감각이 떨어지는 선수들 위주로 공격 옵션을 꾸리는 현실입니다.
레바논전에서는 박주영-기성용 공백이 아쉬웠을지 모릅니다. 더 넓게는 박지성-이영표 같은 대표팀 은퇴 선수들이나 이청용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내실이 튼튼해지려면 특정 선수 공백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축 선수의 공백을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는 팀이 더 강합니다. 그런데 조광래호는 소속팀에서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계속 중용하면서 경기 감각이 좋은 선수를 활용할 폭이 줄었습니다. 대표팀 경쟁 체제에서는 누구도 예외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레바논전은 2011년 마지막 A매치 였습니다. 2011년은 한국 대표팀에게 매우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고, 박지성-이영표 대표팀 은퇴 공백을 해결하지 못했고, 일본에게 0-3으로 패했고, 그 이후에도 경기 내용에서 믿음감을 심어주지 못했고, 끝내 레바논 쇼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2011년에 안좋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내년부터는 달라져야 합니다. 조광래호가 겪고 있는 시련은 2011년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하며 팀의 수장인 조광래 감독이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레바논전 종료 후 일부 선수들의 공백, 심판 판정, 현지 경기장 잔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팀의 패배로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기력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귀국 인터뷰에서 전술적인 아쉬움을 표현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이 왜 조광래 감독에게 등을 돌렸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다행히 쿠웨이트전은 내년 2월 29일에 열립니다. 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돌아 볼 시간이 넉넉하죠. 한국 대표팀의 현실에 맞는 변화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