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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잉글랜드의 스페인전 승리가 시사하는 것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이 13일 새벽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4분 프랭크 램퍼드가 결승골을 넣으며 잉글랜드를 웃게 했습니다. 제임스 밀너가 왼쪽 측면에서 프리킥을 날렸을 때 대런 벤트의 헤딩 슈팅이 스페인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근처에 있던 램퍼드가 노마크 상황에서 머리로 가볍게 볼을 밀어냈습니다. 경기 장소가 웸블리였음을 감안해도 잉글랜드가 세계 랭킹 1위 스페인을 제압한 것이 놀랍습니다.

[사진=잉글랜드의 스페인전 승리를 이끈 토트넘 미드필더 스콧 파커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잉글랜드, 루니 없지만 실속 넘쳤다

잉글랜드가 평가전에서 스페인을 물리쳤지만 '유로 2012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는 명제는 아직까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축구 종주국 및 선수 명성에 비하면 대표팀 경기력은 지금까지 기대 이하의 연속 이었습니다. 유로 2012 본선에서는 루니가 3경기 뛸 수 없기 때문에 본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잉글랜드는 루니 없이 스페인을 꺾었습니다. 굳이 루니 공격에 의지할 필요가 없음을 웸블리에서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실속을 깨우쳤습니다.

그런 잉글랜드는 홈에서 수비 중심의 축구를 했습니다. 슈팅 3-21(유효 슈팅 2-2, 개) 점유율 29-71(%)의 일방적인 열세를 나타냈지만 단 1골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밀너-램퍼드-파커-존스-월컷 같은 미드필더들이 협력 수비에 초점을 맞추면서 스페인 공격 옵션들이 문전 안으로 침투할 공간을 내주지 않는데 주력했습니다. 수비수와의 간격을 줄이면서 존 디펜스 구축이 탄력을 받았고, 밀너-월컷 같은 윙어들이 자주 수비 지역으로 내려왔습니다. 때로는 5백을 쓰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비수와 동일 선상을 유지하려는 미드필더도 있었습니다. 스페인을 제압하려면 밀집 수비가 불가피했고, 두 개의 유효 슈팅을 내줄 정도로 타이트한 수비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파커는 경기 내내 스페인 선수를 따라붙거나 공격을 차단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다른 미드필더들의 수비적인 공헌을 무시할 수 없지만 파커는 단연 으뜸이었죠. 수비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를 기본적으로 보유하면서 스페인 공격을 차단할 명분을 얻었습니다. 파커와 함께 중원에서 뛰었던 존스는 지난달 맨유의 리버풀 원정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전환에 실패했지만, 스페인전에서는 파커와 호흡을 맞추면서 팀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부상에서 곧 복귀할 윌셔, 맨시티의 프리미어리그 1위 질주를 이끈 배리까지 포함하면 잉글랜드의 중원 옵션이 다양합니다. 지금까지 램퍼드-제라드 공존 딜레마에 빠졌지만 이제는 파커 맹활약을 계기로 잉글랜드의 체질이 개선됐습니다.

어쩌면 잉글랜드는 유로 2012 본선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지향할지 모릅니다. 루니 공백은 그때 두고봐야 겠지만, 파커-존스-램퍼드-윌셔-배리 같은 수비력이 뛰어나거나 후방 이동이 많은 중앙 미드필더가 즐비하면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포백의 퀄리티는 강하며,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골키퍼 문제까지 해결 됐습니다.(하트 급성장) 카펠로 감독은 수비에 중점을 두는 지도자로서 잉글랜드의 끈질긴 축구 색깔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유로 2012 본선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는 만큼 잉글랜드의 우승을 원하겠죠. 스페인전 승리는 잉글랜드 대표팀에게 자신감을 키워졌습니다.

잉글랜드가 우승하려면 원톱 능력이 뛰어난 공격수를 보유해야 합니다. 벤트-스터리지는 이타적인 능력이 부족하고, 웰백은 경기 운영이 여물지 못한데다 포지셔닝이 지능적이지 않으며, 디포는 기복이 심하며, 캐롤은 공중볼과 슈팅에 일가견 있지만 전형적인 롱볼 축구에 어울리는 타입에 속합니다. 스페인전처럼 스리 볼란치를 활용할 경우에는 루니 공백을 해결할 공격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선수 개인이 클럽팀에서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뚜렷한 성과를 거두어야 잉글랜드 대표팀의 실속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반면 스페인은 유럽&세계 챔피언입니다. 매 경기마다 이길 수 없겠지만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 아르헨티나전(2010년 9월 7일, 1-4) 포르투갈전(11월 17일, 0-4) 이탈리아전(2011년 8월 10일, 1-2) 잉글랜드전(11월 13일, 0-1)에서 패한 것이 찜찜합니다. 패배를 안겨줬던 팀들의 클래스가 제법 강하죠.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어느 선수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잉글랜드전 패배를 계기로 강팀 경기 패배 숫자가 늘었습니다. 스페인과 상대하는 팀들의 저항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은 유로 2012에서 분발하지 않으면 2연패가 힘들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공격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토레스-비야 원톱 경쟁이 치열했지만 최근에는 두 선수의 폼이 안좋습니다. 비야는 잉글랜드전에서 슈팅 7개를 날렸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FC 바르셀로나의 최근 8경기에서 1골에 그쳤고, 지난 시즌 막판에도 골 생산이 저조하면서 자신의 특출난 골 결정력이 주춤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의 조연에 충실했지만 오히려 본인만의 파괴력이 떨어졌죠. '첼시의 토레스'는 여전히 기복이 심합니다. 지난 시즌보다 몸이 가벼워졌지만 리버풀 시절의 면모를 되찾은 단계까지는 아닙니다. 실바-이니에스타 같은 또 다른 공격 자원들은 골 생산보다는 연계 플레이와 침투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비야-토레스 골이 보장되지 않으면 스페인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더욱 어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