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임대 제도가 없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잭 윌셔(아스널, 볼턴 임대) 다니엘 스터리지(첼시, 볼턴 임대) 대니 웰백(맨유, 선덜랜드 임대) 톰 클레버리(맨유, 위건 임대) 같은 잉글랜드 축구의 영건들이 지금처럼 빅 클럽에서 자리를 잡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4명의 선수에게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임대 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클럽에 임대되면서 1부리그 실전 경험을 쌓았고, 본래의 기량을 회복하고 업그레이드했던 자신감이 원 소속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K리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진=오늘날의 잭 윌셔가 존재했던 이유는 볼턴 임대 였습니다. K리그에도 윌셔와 같은 사례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rsenal.com)]
K리그에 임대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K리그는 임대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는 지난 몇년 동안 꾸준히 제기 됐습니다. 소속팀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에게는 임대가 반가울지 모르겠지만, 소속팀 입장에서는 특정 선수를 일정기간 동안 활용하는 다른 팀에 전력 강화가 찜찜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최근에는 트레이드가 활성화 되었지만 이것은 선수와의 작별을 의미합니다. 수원의 경우, 2009시즌 종료 후 박현범을 제주로 트레이드 했습니다. 2011년 여름에 다시 박현범을 수혈했지만 양준아를 제주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양준아+현금 트레이드였다는 이야기도 있음)
다른 이야기를 꺼내자면, 2012년에는 R리그(2군리그)가 사실상 폐지 됩니다. 구단들이 그동안 2군을 운영하면서 많은 인건비를 투자했습니다. 2군 선수들 모두가 K리그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구단 입장에서 재정적 부담을 짊어져야 합니다. 내년에는 K리그가 44경기 편성되면서 다수의 팀들이 로테이션 시스템을 선택할 예정입니다.(FA컵, ACL, 연령별 대표팀 차출 포함하면 스케줄 포화 상태) 영건을 1군에서 키울 수 밖에 없죠. 2군을 운영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R리그 폐지를 반대하는 축구인들이 존재하지만, K리그가 R리그를 운영하지 않는 것은 44경기 편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R리그 폐지는 내셔널리그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K리그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선수들을 보강하면서 스쿼드 퀄리티가 높아집니다. 2013년에 승강제가 적용되면 K리그 승격 의지가 있는 몇몇 내셔널리그 팀들이 K리그의 2부리그로 편성 될 것입니다. 여론에서 꾸준히 비판을 받았던 K리그 드래프트는 폐지하거나 축소 운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K리그의 2부리그도 신인 선수를 영입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K리그 드래프트 운영은 변화가 불가피 합니다. 몇년 전 처럼 자유계약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학생 축구의 재능있는 선수들의 일본 J리그, J2리그 진출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드래프트와 연관 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팀에 입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K리그 3대 변화(승강제 적용, R리그 폐지, 드래프트 존폐 여부)는 도-시민 구단과 재정이 부족한 기업 구단에게 타격이 될 것입니다. R리그를 운영하지 않으면 재정적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오히려 상위권 팀들이 더블 스쿼드를 운영하면서 즉시 전력감 보강이 필요합니다. 도-시민 구단과 몇몇 기업구단들이 재정이 풍부한 기업구단에게 기량이 뛰어난 축구 인재를 내줘야 할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랬지만 앞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재정이 어려운 팀은 전력 약화 및 2부리그 강등을 걱정해야 합니다. 드래프트가 폐지되거나 축소되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가 마땅치 않죠. 그래서 K리그는 임대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임대 제도는 재정이 풍부하고 성적까지 좋은 팀들과 그렇지 않은 팀들이 서로의 갭을 줄이는 정답입니다. 선수층이 두꺼운 팀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는 선수가 존재할 것이며 실전 감각 저하가 우려됩니다. R리그 존속이 어려워지면서 기량 향상이 쉽지 않게 됐습니다. 또는 R리그가 존재해도 2군 경기 감각에 익숙해질지 모릅니다. 1군과 2군의 경기력 퀄리티는 엄연히 다르죠. 이러한 문제점을 임대로 개선해야 합니다. 재정이 어려운 팀들은 임대 선수를 일정 기간 보유하면서 전력을 강화하는 이점이 작용하죠. 특히 강등권에 있는 팀들은 임대 영입을 노릴지 모릅니다.
이청용이 소속된 볼턴이 좋은 예 입니다. 2009/10시즌 후반기에 윌셔를 아스널에서 임대했고, 2010/11시즌 후반기에는 스터리지를 첼시에서 임대를 했습니다. 윌셔-스터리지는 빅 클럽에서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볼턴에서 실전 감각을 키우면서 기량이 부쩍 향상 됐습니다. 그 여파는 빅 클럽 주전 선수로 자리잡는 원동력이 됐죠. 볼턴 같은 재정이 부족한 팀은 빅 클럽 임대 선수를 영입하면서 공격력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앞으로는 K리그에서 볼턴과 비슷한 임대 효과를 기대하는 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FC서울은 올 시즌 김현성, 이광진, 경재윤(이상 대구) 이현승(전남) 정승용(경남) 최현빈(대전)을 임대 보냈습니다. 1군 경기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팀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또는 이적료를 얻거나) 특히 김현성은 올 시즌 대구에서 29경기 7골 2도움 기록하며 서울 공격의 미래를 짊어질 적임자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9월 9일 서울전에서는 2골을 넣으며 대구의 2-1 승리를 이끌었죠. 대구 임대 과정에서 원 소속팀 경기에 뛰지 못하는 조항이 없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서울이 앞으로 참고해야겠지만) 서울 입장에서는 당시 패배가 뼈아프지만, 앞으로 K리그에서는 서울과 같은 임대를 활발히 보내는 팀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