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이 원하는 과감한 공격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애슐리 영과의 경쟁을 감안하면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골을 넣기를 바라는 축구팬들의 바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전 감각 저하, 이날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 평소답지 않은 몇몇 동료 선수들의 무거운 몸놀림을 감안하면 평균 이상의 활약을 펼친 것은 분명합니다.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1일 저녁 노리치 시티(이하 노리치)전에서 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후반 42분 박스 오른쪽을 침투했을때 대니 웰백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상대 골키퍼가 자신의 앞쪽으로 접근할때 근처에서 쇄도했던 웰백에게 오른발 패스를 밀어준 것이 골로 연결되면서 맨유의 승리를 굳히게 했습니다. 앞서 후반 23분에는 안데르손이 결승골을 기록하며 맨유가 2-0으로 승리했습니다. 박지성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1도움을 기록했다'는 평가와 함께 평점 7점을 기록했습니다.
박지성이 애슐리 영보다 더 필요했던 경기
만약 애슐리 영이 선발 투입했다면 맨유 공격은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애슐리 영의 최근 폼을 보면 상대 협력 수비를 받을때 페이스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첼시와의 후반전에서 그런 문제점이 있었고, 주중 FC 바젤전에서는 경기 막판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지만 경기 내용상으로는 상대 수비의 견제를 받으면서 패스 미스가 끊어졌고 연계 플레이의 지속성이 떨어졌습니다. 노리치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수비 위주의 전술을 쓸 것이 분명했던 만큼, 퍼거슨 감독이 애슐리 영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박지성을 선발로 내세웠던 선택은 옳았습니다.
이날 맨유의 공격은 잘 안풀렸습니다. 상대팀에 비해 공격 기회가 많았음에도 전반 30분 점유율에서 49-51(%)로 밀릴 정도로 기선 제압에 실패했습니다. 상대 진영에서 짧은 패스 위주로 볼을 주고 받으면서 박스쪽 접근을 노렸지만 노리치 수비의 라인 컨트롤이 치밀했습니다. 노리치 수비가 박스쪽에 몰려있는 형태 였습니다. 중앙 미드필더까지 박스 안쪽으로 내려오면서 수비에 가담하거나, 풀백이 박스 안쪽으로 동선을 틀며 윙어가 그 밑으로 내려오는, 또는 풀백과 윙어가 측면에서 협력 수비 체제를 형성하는 밀집 수비 체제였습니다. 안데르손이 골을 넣기 전까지 맨유 공격 옵션 보다는 노리치 선수들의 활동량이 더 많았습니다.
[사진=노리치 시티전 2-0 승리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맨유의 문제점은 안데르손-플래처로 짜인 중원 이었습니다. 중원에서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킬러 패스가 꾸준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긱스의 선발 제외, 클레버리 부상 때문에 드물어진 느낌입니다. 특히 안데르손은 몇 차례 전진패스가 끊어지면서 팀 공격이 끊어지는 단점을 초래했죠. 이날 결승골의 주인공 이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기복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상대 중앙 미드필더와의 활동량에서 밀렸고, 에브라가 상대 수비에 둘러 쌓였을 때 원투패스 받으러 다가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나니가 전반전에 오른쪽에서 중앙쪽으로 꺾으면서 연계 플레이에 관여하는 것은, 그만큼 맨유 중원의 볼 배급이 안되었다는 뜻입니다.
안데르손이 제 구실을 못하면서 박지성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박지성쪽에 공간이 비었는데 동료 선수에게 패스가 공급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안데르손의 시야가 너르지 못했다는 뜻이죠. 박지성이 후반전에 볼 터치가 많았지만 전반전은 안데르손 부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노리치의 측면 수비를 끌어내거나 빈 공간을 창출하는 움직임을 나타냈습니다. 상대 수비 움직임을 앞쪽으로 유도하면서 에브라와 패스를 주고 받으며 상대 밀집 수비를 공략했습니다.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안된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의 폼이 평소답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지만, 노리치 수비를 공략하는 박지성의 이타적인 공격력은 맨유가 졸전하지 않았던 이유 였습니다.
맨유는 전반전을 0-0으로 마치자 후반전에 3-5-2로 전환했습니다. 좌우 미드필더로 뛰었던 나니-발렌시아의 활동 반경이 윙백 치고는 앞쪽으로 쏠렸던 만큼, 정확히는 3-2-3-2 개념의 포메이션이 더 맞겠습니다. 특히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은 퍼거슨 감독이 노리치 밀집 수비를 뚫겠다는 승부수 였습니다. 안데르손-플래처 더블 볼란치 조합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중앙 공격 전개의 숨통을 트이겠다는 뜻이죠. 하지만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3백(에브라-에반스-존스)과의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그 틈을 노리치가 역습으로 노리면서 맨유가 실점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런 맨유가 3백을 선택한 것은 FC 바르셀로나가 올 시즌 3-4-3을 채택한 것과 같은 맥락 입니다. 바르셀로나는 그동안 상대 밀집 수비에 시달렸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3백을 택했고 맨유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지만 맨유의 3백 변화는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노리치에게 몇 차례 실점 위기 상황을 맞이했었고(이 과정에서 존스의 클리어링이 돋보였던), 안데르손의 패스 미스가 여전했습니다. 공격 옵션끼리의 호흡이 안맞거나 동선이 겹쳤으며, 측면 크로스 타이밍은 빠르지만 정확성이 떨어졌습니다. 나니가 왼쪽 측면에서 기대만큼의 공격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죠. 그래서 맨유는 후반 중반에 나니, 에르난데스를 빼고 긱스, 웰백을 투입하며 다시 4-4-2로 회귀했습니다.
박지성은 주변 동료 선수에게 짧게 내주는 패스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공격 전개를 답답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아마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박지성 중심으로 경기를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맨유 선수들의 몸놀림이 전체적으로 안좋았습니다. 루니-에르난데스가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되면서 활동량 많은 상대 선수와 경합하기에는 다소 힘에 부쳤습니다. 그래서 박지성 앞쪽에서 패스를 받아줄 선수의 존재감이 아쉬웠습니다. 옆쪽 또는 뒷쪽으로 패스를 내주는 차선책을 택했죠. 박지성에게 과감한 공격력을 기대하면 맨유 공격 밸런스는 100% 깨집니다. 자신의 패스를 받아줄 공격수 폼이 안좋았고, 무리한 드리블 돌파는 수비 숫자가 많았던 노리치에게 먹잇감을 주는 꼴이죠.
그런 박지성을 후반전에 중앙쪽으로 기용했던 퍼거슨 감독의 작전은 적중했습니다. 박지성이 중앙에서 상대 수비를 앞쪽으로 끌어내는 움직임을 취하면서 노리치 수비 조직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루니-에르난데스가 평소의 폼이라면 상대 수비 빈 공간을 노리는 침투가 가능했을 겁니다. 그 아쉬움을 웰백이 후반 막판에 박지성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아 상대 수비진을 뚫고 골을 기록했습니다. 박지성 혼자서 밀집 수비를 공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의 움직임과 균형을 맞춰줄 맨유의 공격수가 필요했고, 그 적임자가 바로 웰백 이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웰백의 선발 출전했다면 맨유 공격이 잘 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박지성은 상대 밀집 수비에 강한 선수입니다. 기동력과 공간 창출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죠. 애슐리 영 처럼 기교로 승부수를 띄우는 타입은 이날 경기에서 부진했을 겁니다. 나니의 활약이 정교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어쩌면 안데르손보다는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폼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지금의 캐릭보다 더 잘할겁니다. 만약 애슐리 영이 선발 출전할때는 박지성-클레버리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맨유 중원의 불안함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만큼,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활용 빈도를 늘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지성의 폼은 지금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