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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스널, 챔스 이겼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아스널의 올림피아코스전 2-1 승리는 1승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클럽 중에서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본선 2차전에서 승리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는 비겼고, 맨체스터 시티는 졌지만, 아스널만은 이겼습니다.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안드레 산투스 같은 이적생들의 데뷔골이 신선했습니다. 토마스 로시츠키의 활약상은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공백을 잊게했고, 엠마뉘엘 프림퐁은 이번에도 좋지 않았지만 이전 경기들에 비하면 최악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사진=올림피아코스전에서 자신의 아스널 데뷔골을 기록한 안드레 산투스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메인(uefa.com)]

우선, 아스널은 전반 초반에 승부수를 띄우는 분위기 였습니다. 주말에 북런던 라이벌 토트넘과 격돌하기 때문에 올림피아코스전에서 체력을 아껴야 했습니다. 전반전에 승리의 쐐기를 박으면서 후반전에 체력을 안배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래서 선수들 움직임이 경기 초반부터 활발했고, 바카리 사냐가 오버래핑 과정에서 볼에 관여하는 횟수가 많았으며, 팀 전체가 직선적인 패스를 시도하며 상대 진영을 몰아 붙였습니다. 전반 12분 점유율에서 60-40(%)로 앞서면서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전반 8분에는 송 빌롱이 하프라인에서 전방쪽으로 롱볼을 띄운 것이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왼발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전반 20분에는 산투스가 왼쪽 측면에서 동료 선수와의 2대1 패스에 이은 드리블 돌파로 문전쪽으로 질주하면서 슈팅을 날렸습니다. 볼이 상대 수비수를 맞았지만 재차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팀에게 두번째 골을 안겼습니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산투스의 데뷔골은 아스널이 경기 초반에 골을 넣으며 기선 제압에 성공하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여기까지 경기 흐름이라면 아스널이 시즌 초반 위기에서 벗어난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스널은 그 이후부터 불안했습니다. 2-0으로 앞선 이후부터 올림피아코스에게 경기 주도권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마루앙 샤막이 박스 안쪽에서 동료 선수와의 연계를 끌어주지 못하면서 팀 공격이 난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샤막은 2선쪽으로 내려가면서 볼 터치 횟수를 끌어올렸지만 움직임이 주기적이지 못했습니다. 로빈 판 페르시처럼 상대 수비 빈 공간을 찾아다니며 동료 선수에게 볼을 따낸 뒤 슈팅을 시도하는 면모가 샤막에게 필요했습니다. 안드리 아르샤빈은 후반전에 그나마 분전했지만 전반 중반 및 후반에는 딱히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샤막-아르샤빈의 부진은 아스널 공격이 난조에 빠지면서 올림피아코스에게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아스널의 수비가 불안했습니다. 전반 26분 올림피아코스의 만회골을 선사했던 다비드 푸스테르를 누구도 마크하지 않았습니다. 골문 근처에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몰려있었으나 누구도 아바가자의 왼쪽 크로스를 차단하지 못했고, 푸스테르를 따라붙는 선수도 없었습니다. 아스널 선수들의 수비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만회골 전후에도 박스쪽에서 상대 선수를 놓치거나 빈 공간을 쉽게 내주는 불안함이 있었죠. 1차적으로 아르테타-프림퐁 더블 볼란치 조합의 압박이 허약했고, 2차적으로 사냐가 앞쪽으로 나가는 동선이 올림피아코스에게 수비 뒷 공간을 내줬고, 3차적으로는 박스쪽에서 팀 전체가 상대 공격을 끊으려는 응집력이 취약했습니다.

아스널은 전반전 점유율에서 58-42(%)로 앞섰으나 슈팅에서는 4-9(유효 슈팅 2-5, 개)로 밀렸습니다. 전반전에 수비가 불안했다는 뜻입니다. 후반전까지 포함하면 점유율은 전반전과 동일했고, 슈팅에서는 13-16(유효 슈팅 5-5, 개)를 나타냈습니다. 만약 올림피아코스에서 특출난 골잡이가 있었다면 아스널은 지난 17일 블랙번전 3-4 역전패에 이은 또 하나의 졸전을 펼쳤을지 모릅니다. 올림피아코스는 후반전에도 경기 내용에서 우세를 나타냈지만, 박스 안에서 아스널 수비를 농락하며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연출해줄 공격수 존재감이 부족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3-3 무승부를 일궜던 FC 바젤의 알렉산더 프라이 같은 선수 말입니다.

그럼에도 페르 메르데자커는 아스널의 수비 불안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동료 선수가 상대 공격을 차단하지 못할때 직접 클리어링을 하거나 상대 공격 옵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스널이 전반 26분 이후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던 이유죠. 베르마엘렌-코시엘니-스킬라치-주루 같은 지난 시즌 센터백 4인방이 모두 부상으로 빠졌음을 감안하면 메르데자커의 숨은 활약은 이날 경기의 최우수 선수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설적으로는 메르데자커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아르테타-프림퐁 더블 볼란치 조합은 실패작입니다.

후반 25분에는 샤막을 빼고 판 페르시를 교체 투입했습니다. 정상적인 페이스였다면 샤막의 교체 대상자는 판 페르시가 아닌 박주영 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샤막이 주춤하면서 아스널이 추가골을 노리는데 어려움에 빠졌고, 올림피아코스에게 공격 기회가 많이 돌아갔습니다. 판 페르시의 출전은 아스널이 경기를 확실하게 끝내겠다는 의도였지만, 주말 토트넘전을 감안하면 판 페르시는 결장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만큼 샤막의 폼이 안좋았다는 뜻입니다. 박주영이 올림피아코스전에서 결장했지만 분명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경기 전체적 관점에서는 아스널이 승리에 도취되지 말아야 합니다. 올림피아코스의 임펙트가 약했기 때문이죠. 경기 내용, 팀 응집력에서는 올림피아코스에게 열세였습니다. 특히 팀의 최대 약점인 수비 불안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상대하는 토트넘은 아데바요르-판 데르 파르트-디포-베일 같은 득점력이 뛰어난 공격 옵션들을 보유했습니다. 아스널 수비가 이 선수들의 발을 묶을지, 마땅히 내세울 더블 볼란치가 없는 현실에서 루카 모드리치를 봉쇄할지 의문입니다. 더블 볼란치의 경우 송 빌롱은 센터백으로 전환했고 잭 윌셔는 부상자 입니다. 아스널이 토트넘전에서 전력적인 고비를 이겨낼지 주말이 빨리 다가오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