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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동국 대표팀 발탁, 조광래 감독의 승부수

 

저는 '사자왕' 이동국(32, 전북)의 대표팀 발탁을 원치 않았습니다. 과연 이동국의 체력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허락할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올 시즌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두드러진 골 감각을 과시했지만 그 기세가 2014년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과거에 각급 대표팀에서 혹사를 당했던 경험,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전북에서의 폼이 떨어졌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소속팀과 대표팀을 병행하기에는 무거운 짐을 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던 이동국이 대표팀에 추가 발탁됐습니다. 10월 A매치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김보경이 코뼈 부상을 당하자 조광래 감독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27일 세레소 오사카전 4골 때문에 발탁된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K리그에서 가공할 득점력을 발휘하며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발탁 여부를 고민했었죠. 올 시즌 K리그 26경기 14골 14도움(득점 3위, 도움 1위), AFC 챔피언스리그 7경기 9골(득점 1위)의 활약이라면 대표팀 승선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다만, 조광래호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는 팀으로서 과연 이동국 체력이 2014년까지 버텨줄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20대 선수였으면 대표팀에서 꾸준히 뛰었을지 모르죠.

그런 조광래 감독은 지난해 7월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하면서 "이동국은 나의 축구 철학과 맞지 않다"며 그를 발탁하지 않았습니다. 이동국 움직임이 자신의 공격 전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지동원, 손흥민, 유병수, 김신욱, 박기동, 석현준 같은 영건 공격수들을 대표팀에 중용하며 세대교체를 시도했고 아시안컵이 끝난 뒤에는 박주영을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제로톱이나 스위칭을 통한 정확하고 빠른 연계 플레이를 원하는 조광래 감독 공격 전술에서는 움직임이 활발한 영건들이 어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동원이 대표팀 주전 원톱으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은 8월 일본전 0-3 패배를 기점으로 침체에 빠졌습니다. 지난달 쿠웨이트 원정에서는 1-1로 비긴데다 경기 내용에서 상대팀에게 끌려다니는 아쉬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일부 여론에서는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의 경기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조광래 감독이 깨달았습니다. 박주영이 지난달 A매치 2경기에서 4골 기록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죠. 형식적 관점에서 이동국은 김보경 부상을 대체하는 성격이지만 두 선수의 포지션은 다릅니다. 조광래 감독이 애초부터 이동국 대표팀 합류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난 여름부터 언론을 통해 이동국 발탁 검토를 언급했듯 말입니다.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은 조광래 감독이 꺼내든 '승부수' 입니다. 최근에 대표팀 발탁과 관련해서 여론으로부터 "유럽파, 해외파를 선호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동국을 뽑으면서 유럽파 및 해외파들이(특히 공격 옵션) 긴장하게 됐습니다. 대표팀이 지금 시점에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조광래호는 좌초할 가능성이 다분했습니다. 8월-9월 A매치의 무거운 분위기는 10월 A매치에서 해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는 이동국 대표팀 승선을 반대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선택은 충분히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이라는 K리그 공격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죠.

현실적으로 이동국의 골 감각은 박주영, 지동원보다 앞섭니다. 박주영이 대표팀 공격수 No.1인 것은 사실입니다. 지동원이 아시안컵에서 보여줬던 득점력도 무시 못하죠. 하지만 세 선수의 현재 폼을 놓고 보면 이동국 우세 입니다. 박주영은 지난 8월 일본전 부진의 원인이었던 실전 감각 저하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며 아스널에서 단 1경기 뛰었습니다. 지동원은 전남 시절에도 그랬듯 득점력이 출중한 골잡이는 아닙니다. 아직은 소속팀에서 선발 출전 경험이 없는 백업 선수 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도 경기에 뛰지 못하면 감각을 살리기 힘듭니다. 세 선수는 소속팀이 다를 뿐, 실전 감각과 득점력에서는 이동국이 가장 무르익었습니다.

잠시 주제에서 벗어나면, 일각에서는 이동국을 국내용으로 비하합니다. 누군가는 K리그 수준까지 깎아내립니다. 잘못된 선수 비방에 불과할 뿐입니다. 만약 이동국이 국내에서만 통하는 선수였다면 과연 세레소 오사카전 4골,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가 단지 운이었을까요? 아시안컵 득점왕(2000년) 경력이 있는 선수의 재능을 국내용으로 묶어두는건 상식적으로 어긋난 겁니다. 한때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본프레레호-아드보카트호 에이스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었고 지금의 전북에서 '완성형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기만성형 공격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그 힘이 "이동국을 대표팀에 뽑지 않겠다"는 조광래 감독의 생각을 바꾸게 했죠.

조광래 감독의 이동국 발탁은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효과를 얻게 됩니다. 이제는 박주영-지동원이 긴장해야 합니다. 두 선수가 풀타임을 뛸 수 있을 정도의 실전 감각을 지녔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무리 대표팀에서 잘해도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 소용 없습니다. 소속팀에서 안되면 결국에는 대표팀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조광래호가 겪고 있는 문제점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그래도 박주영, 지동원이 이동국보다 잘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축구 선수의 실력은 소속팀 이름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조광래 감독의 이동국 활용 여부 입니다. 전임 감독 시절로 거슬러가면, 당시의 대표팀 체제에서는 이동국의 재능이 최대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전북과 대표팀의 전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전북이 이동국 중심의 공격력이라면 대표팀은 이동국이 조연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 이었습니다. 당시 전북의 2선 미드필더였던 에닝요-루이스-최태욱은 크로스와 드리블 돌파, 직선적인 패스로 이동국의 골 감각을 뒷받침하는 전술을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대표팀은 박지성-기성용-이청용 같은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볼 배급을 움직이는 스타일 이었죠. 물론 이동국의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 슈팅이 아쉬웠지만 그것은 선수의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 전술적 개념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조광래 감독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과연 이동국이 2014년까지 대표팀과 소속팀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동하며 지금과 같은 폼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라고 봅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을 발탁한 것은 지금의 침체를 벗어나겠다는 국면전환 성격이 짙으며, 개인적 생각을 덧붙이면 이동국을 슈퍼 조커로 염두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역할) 이동국의 전술적 활용 여부는 더 지켜볼 일이지만, 대표팀에서 에닝요-루이스 같은 역할을 해줄 선수가 있는지 머뭇거리게 됩니다. 조광래호는 아직 박지성 후계자가 등장하지 못했고, 세밀한 볼 배급을 자랑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존재감이 묻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동국은 나의 축구 철학에 맞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대표팀 발탁을 하지 않았던 조광래 감독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동국을 영원히 대표팀에 뽑지 않겠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이동국이 2009년보다 더 강해졌기 때문에(예를 들면 도움 1위) 조광래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죠. 이동국 본인에게 월드컵이라면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그의 월드컵 사연은 국민들이 알고 있겠지만, 이제는 조광래 감독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는 사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