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도움 장면 이었습니다. 뒷쪽에 있는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밀어준 것이 골로 연결됐습니다. 출전 시간은 짧았지만 공격 포인트 기록에 대한 의미가 남다릅니다. 어쩌면 이 장면이 팀의 주전 공격수 도약 까지의 시간을 단축 시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지동원(20, 선덜랜드)이 27일 노리치 시티 전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첫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후반 41분에 페널티 박스 중앙에서 왼쪽 측면 뒷쪽에 있는 키어런 리차드슨에게 왼발 원터치 패스를 밀어준 것이 골로 연결됐습니다. 선덜랜드 미드필더들의 패스가 오른쪽에서 중앙쪽으로 틀었을때 뒷쪽으로 이동했던 움직임, 크레이그 가드너의 짧은 패스를 받아 리차드슨에게 원터치로 밀어준 패싱력, 리차드슨의 빈 공간을 봤던 시야가 도움의 원동력 이었습니다. 그리고 리차드슨은 강력한 왼발 슈팅을 날리며 상대 골문을 흔들었습니다.
[사진=지동원 (C) 선덜랜드 공식 홈페이지(safc.com)]
선덜랜드는 노리치 시티에게 1-2로 패했습니다. 그나마 지동원과 리차드슨이 후반 막판에 골을 합작하면서 영패를 모면했습니다. 이날 경기에 투톱으로 선발 출전했던 니클라스 벤트너-스테판 세세뇽이 부진했고 팀이 0-2로 밀리자 후반 23분에 지동원-코너 위컴이 교체 투입 됐습니다. 지동원은 왼쪽 윙어로서 연계 플레이에 주력하며 팀의 공격 분위기를 되찾는데 주력했습니다. 22분의 출전 시간 동안 17개의 패스를 기록했는데 도움 1개를 비롯한 14개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순도 높은 볼 배급을 펼쳤습니다. 횡패스들이 많았지만 경기 운영 능력에 있어서 다른 공격수들보다 나았습니다.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지동원을 선발 출전 시켰다면 경기 양상은 기존과 달랐을지 모릅니다. 지동원의 이타적인 공격력이 선덜랜드 공격력에 적잖은 힘이 되었기 때문이죠. 세세뇽-벤트너-위컴의 폼이 좋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세세뇽은 동료 선수 공격력을 위해 헌신하려는 모습이 부족했고, 상대 수비를 넘어서겠다는 속도와 기교에서 뒤쳐진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벤트너는 세세뇽보다 더 많이 뛰었지만 종종 패스가 부정확했으며, 세세뇽과의 호흡이 잘 안맞았습니다. 위컴은 지동원과 동시에 교체 투입되었으나 조커로서 딱히 인상적인 공격 장면이 드물었습니다. 선덜랜드 공격수들의 부진이 이날 경기의 패배 원인 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세뇽-벤트너-위컴은 올 시즌 골이 없습니다. 선덜랜드가 리그 6경기에서 7골에 그쳤고 14위(1승2무3패)를 기록했던 원인이 공격수들의 골 부족 입니다. 지난 18일 스토크 시티전 4-0 대승을 거두었지만 공격수는 골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세 명의 공격수는 경기 내용까지 미흡했죠. 특히 세세뇽은 올 시즌 경기력을 미루어볼때 주전 공격수 레벨이 아닌 듯 싶습니다. 본래 공격수가 아님을 감안해도 이타적인 공격 본능이 발달되지 못했고, 자신만의 콘셉트를 못찾고 있습니다. 선덜랜드가 10위권 안으로 성적을 회복하고 공격력이 되살아나려면 세세뇽 대신에 지동원이 주전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아마도 브루스 감독은 시즌 전까지 지동원보다는 세세뇽 공격력을 더 높게 평가하지 않았나, 또는 지동원-위컴 같은 유망주 공격수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어쩔수 없이 세세뇽이 대안이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세세뇽은 리그 6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고 지동원은 5번의 교체 출전과 1번의 결장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칼링컵 2라운드 브리턴전에서도 후반 37분에 교체 투입했죠. 지금까지는 세세뇽이 붙박이 주전이었지만 공격수로서의 역량은 지동원이 결코 밀리지 않습니다. 굳이 지동원의 첼시전 골에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아도, 세세뇽이 브루스 감독의 믿음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선덜랜드는 지난 시즌 10위를 기록했고 시즌 후반에 중상위권까지 올라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몇몇 주전급 선수의 이탈 속에서도 지동원-위컴-브라운-오셰이-벤트너(임대) 등 10명 안팎의 선수들을 영입하는 변화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즌 초반 14위를 기록중이며 한때 16위까지 추락했습니다. 공격력 난조 속에서도 스토크 시티전 4-0 승리로 버텨냈을 뿐입니다. 이제는 브루스 감독이 변화를 택할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팀의 교체 멤버로서 1골 1도움 기록하며 주전 공격수보다 더 효율적인 지동원을 주전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지동원의 주전 도약은 머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선덜랜드 공격력이 더 좋지 않으면 브루스 감독은 언젠가 세세뇽을 포기할 수 있으며 그 타이밍이 빠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브루스 감독이 지동원에게 선발 출전의 기회를 줄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선덜랜드가 지동원 같은 팀의 미래를 확실하게 키우고 싶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 90분을 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지동원이 거구의 프리미어리그 수비수들과 상대하기에는 몸싸움과 파워, 공중볼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2009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이청용도 피지컬이 약한 이유로 볼턴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성공했습니다.
지동원의 선덜랜드 성장 곡선은 이청용과 흡사합니다. 이청용도 2009/10시즌 초반에는 볼턴의 교체 멤버 였습니다. 당시까지 볼턴의 에이스가 될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습니다. 그러나 착실히 공격 포인트를 쌓으면서, 롱볼과 피지컬 중심의 동료 선수들과 차별화된 기술력과 근면한 활약으로 무장하며 팀 공격을 다채롭게 키웠습니다. 지동원은 선덜랜드의 후보 선수지만 팀의 공격력을 미루어보면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폼입니다. 이미 1골 1도움 기록하면서 공격 포인트에 대한 부담을 덜었습니다. 이제는 힘차게 전진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브루스 감독의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지동원의 지금까지 행보는 기대 이상으로 긍정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