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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스널 굴욕패, 강팀의 향기는 어디로?

 

아스널의 블랙번 원정 3-4 패배는 한마디로 '굴욕패' 입니다. 전혀 뜻밖의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우선, 아스널 승리를 예상했던 이유부터 언급합니다. 지난달 29일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원정 2-8 참패에 자극받아 여름 이적시장 막판에 5명을 보강했습니다. 그 이후 2경기에서 1승1무를 기록했고, 이번 상대였던 블랙번은 지난 시즌 샘 앨러다이스(현 웨스트햄) 감독을 경질한 이후부터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올 시즌 강등 후보로 내몰렸습니다. 또한 블랙번은 아스널전 이전까지 올 시즌 성적이 1무3패 였습니다. 아스널의 승점 3점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던 상대 였습니다.

[사진=블랙번전 3-4 패배를 공식 발표한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C) arsenal.com]

전반전까지는 아스널이 2-1로 앞섰습니다. 점유율 64-36(%) 슈팅 9-5(유효 슈팅 6-1, 개)의 우세를 점하는 일방적인 공격을 펼쳤죠. 제르비뉴가 결정적 골 상황에서 로빈 판 페르시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던 것, 아예그베니 야쿠부 실점의 빌미가 됐던 안드레 산투스의 라인 컨트롤 실패가 아쉬웠지만 전반 45분 동안 패스 축구를 밀고 나갔던 경기 흐름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후반전이 문제였습니다. 송 빌롱이 자책골을 내주더니, 야쿠부에게 역전골을 허용했고, 아스널이 동점골을 넣어야 할 타이밍에 코시엘니가 자책골을 헌납했습니다. 마루앙 샤막이 경기 막판에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더 이상의 골은 없었습니다.

아스널의 블랙번전 후반전 경기력은 '실망'이라는 단어만 떠오를 뿐입니다. 전반전에 잘싸웠다가 후반들어 갑자기 무너졌습니다. 전반전에도 수비 실수가 있었지만 후반전에는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선수들이 전반전 2-1 리드에 너무 들떴던 이유 때문인지 후반전에는 상대팀의 추격 기세를 여지없이 허용했습니다. 송 빌롱-코시엘니가 자책골을 범했다고 할지라도 불운을 탓하기에는 두 선수의 수비 집중력이 약했습니다. 특히 송 빌롱은 전반전에 상대팀 공격을 무수하게 끊었던 활약상이 후반 5분 자책골에 의해 빛 바래고 말았습니다. 산투스, 페어 메르테자커 부진까지 겹친데다 송 빌롱의 더블 볼란치 짝꿍이었던 애런 램지의 수비력도 불안 했습니다.

기존 아스널의 문제점은 파브레가스-나스리 이적 공백 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랙번전이 끝나면서 수비 불안까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아스널은 올 시즌 5경기 14실점을 내줬으며 올 시즌 리그 최다 실점 1위를 기록했습니다. 첼시가 2004/05시즌에 기록했던 역대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38경기 15실점)과 거의 비슷한 실점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맨유전 8실점은 두말 할 필요 없죠. 이적 시장 막판에 메르테자커-산투스를 영입하여 수비력을 보강했지만 오히려 두 명은 블랙번전 패배의 주범 중 하나 였습니다. 블랙번전에서 3골을 넣었지만, 아무리 공격수가 골을 터뜨려도, 박주영이 난세의 영웅이 되어도 아스널이 승리하지 못하면 다 소용 했습니다. 수비가 약하면 경기에서 승리하기 힘들어집니다.

강팀들의 공통점은 수비가 튼튼합니다. '무적함대' 스페인은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과정에서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그 밑바탕은 강력한 수비 였습니다. 특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토너먼트 4경기에서 단 1골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공격 옵션들이 즐비한 FC 바르셀로나도 수비가 강한 것은 마찬가지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양강 체제를 형성한 맨유와 첼시도 오랫동안 강력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했습니다. 반면 아스널 수비는 점점 허약했습니다. 토마스 베르마엘렌 부상 공백을 탓하기에는 고질적으로 세트피스 수비가 약했던 것을 무시 못하죠. 송 빌롱의 블랙번전 자책골은 세트피스 수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아스널의 가장 큰 문제는 '아스널' 입니다. 언제부터 아스널이라는 이름은 강팀의 위용보다는 '항상 2% 부족했던'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항상 상위권을 지켰지만(시즌 중간에 4위권 밑으로 밀렸던 경험이 있었지만) 우승을 달성하기에는 무언가 2% 모자랐습니다. 이전 시즌에 2% 부족했고, 다음 시즌에도 2%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또 반복됐죠. 그 결과는 '6시즌 연속 무관' 이었습니다. 어느 팀이든 전력적인 장단점은 뚜렷하지만, 강팀은 필사적으로 약점을 극복하며 꾸준한 성과를 내지만 그렇지 않은 팀은 늘 경기력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의 아스널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아직은 시즌 초반 입니다. 38경기 중에 5경기 치렀을 뿐이죠. 하지만 아스널의 정상적인 페이스라면 맨유, 맨시티, 첼시와 끈질긴 우승 경쟁을 해야 합니다. 한때 맨유와 우승을 다투었던 레벨이라면 지금은 토트넘, 리버풀과 4위 자리를 다툴때가 아닙니다. 문제는 올 시즌 4위권 진입 조차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순간부터 빅4 탈락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제는 나스리가 떠났고, 시즌 초반 부진 및 맨유전 2-8 대패, 블랙번전 굴욕패까지 겹치는 위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적생 및 임대생 부진, '유리몸' 판 페르시의 부상까지 겹치면 아스널은 더 힘들지 모릅니다. 제르비뉴-샤막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차출까지 견뎌야 할 실정이죠.

아스널은 블랙번전에서 승리가 필요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이겼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았을 겁니다. 무기력한 경기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하지만 후반전 3실점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뉴캐슬과의 리그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침체가 계속되면서 선수들의 의욕이 염려됩니다. 앞으로 나타날지 모를 체력 문제를 극복할 돌파구가 자신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스널은 지난달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를 소화하면서 1주일에 2경기씩 소화했습니다. 9월에는 주중에 챔피언스리그-칼링컵을 병행하며 선수들의 체력 낭비가 커지게 됐습니다. 로테이션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지만 판 페르시처럼 꾸준한 경기 감각을 과시하는 선수들이 많지 않은 단점이 있습니다. 체력적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특히 블랙번전 패배는 아스널의 시즌 초반 침체가 '일시적이지 않은 문제'임을 말해줬습니다. 이제 아스널 선수들은 1주일에 2경기를 치르는 일정을 거듭하며 체력적으로 힘들어질 겁니다. 로테이션을 쓰더라도 선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는 단점에 직면했습니다. 더 이상 위기가 찾아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제는 체력 문제를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아스널에게는 강팀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팀이 좋아질 수는 없겠지만, 이대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