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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아끼고 있을 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지난 15일 웨스트 브로미치전에서 승리했지만 '산소탱크' 박지성은 결장했습니다. 커뮤니티 실드 맨체스터 시티전에 이은 2경기 연속 출전 불발 입니다. 국내 여론에서 박지성 입지를 놓고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입니다. 국내에서 맨유-박지성 인기가 여전히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얼마전 맨유와 3번째 계약 연장을 맺은 선수에게 '위기론'과 비슷한 늬앙스의 부정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진부합니다. 박지성은 이미 맨유에서 성공했던 한국 축구의 영웅입니다.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박지성의 결장 원인은 애슐리 영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맨유가 1600만 파운드(약 287억원)에 영입한 선수로서 올 시즌 많은 경기에 출전할 것입니다. 1600만 파운드에 데려온 선수를 시즌 초반부터 벤치에 앉히는 것은 팀으로서 손해입니다. 라이언 긱스가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하면서 왼쪽에 스페셜 리스트가 필요했었고 그 적임자가 애슐리 영 이었죠. 애슐리 영이 미국 투어 MLS(미국 프로축구) 올스타전, FC 바르셀로나전, 맨체스터 시티전 선발 출전 속에서도 부진했지만 맨유로서는 그래도 키워야 합니다. 중앙에서는 클레버리-안데르손 조합이 떠오르면서 박지성이 벤치를 지킬 수 밖에 없었죠.

특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난 18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애슐리 영이 왼쪽 측면에 잘맞는다. 중앙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애슐리 영을 앞으로 왼쪽 윙어로 기용하면서 박지성과의 경쟁을 이어가겠다는 의도입니다. 박지성이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반갑지 않을 퍼거슨 감독의 발언입니다. 하지만 모든 맨유 선수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며, 비디치-퍼디난드-캐릭 같은 세계 최정상급 레벨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커뮤니티 실드에서 질책성 교체를 당하고 유망주(에반스-스몰링-클레버리)가 대체했던 팀이 맨유입니다. 그동안 점진적인 리빌딩을 단행했던 맨유로서는 경쟁이 필수입니다.

박지성과 애슐리 영의 경쟁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 시즌까지의 활약을 놓고 보면 박지성에게 많은 출전 기회가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지금까지 박지성을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무릎 부상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30대에 접어든 나이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거칠기로 손꼽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거의 매 경기 출전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아무리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박지성이지만 축구 선수로서 오랫동안 뛰려면 잦은 경기 출전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지성보다 4세 어리고, 유망주 레벨에서 프리미어리그 톱클래스 레벨로 거듭났던 애슐리 영이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았죠. 38세 긱스, 이미 다른 팀으로 떠났던 베베르탕(베베-오베르탕)이 박지성 경쟁자가 되기에는 각각 체력-실력이 부족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아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동안 박지성에게 종종 휴식을 부여하며 체력을 안배했지만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9~10개월 장기 레이스를 내다보는 시점에서는 포지션 한 자리에 두 명의 선수가 경쟁하면서 체력 소모를 줄이는 것이 빅 클럽 입장에서 정상적입니다. 선수 부상에 따른 복안까지 마련해야죠. 아마도 퍼거슨 감독은 애슐리 영이 맨유 선수들과 호흡이 맞을때까지 출전 시간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애슐리 영의 적응을 도와줄 때죠. 반면 박지성은 오래전에 충분히 검증된 선수입니다. 어떤 역할이든 성실히 자기 몫을 해냈죠. 산소탱크가 더 이상 부상으로 신음하지 않으려면, 특히 시즌 후반 맹활약을 위해서는 퍼거슨 감독이 여유있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겉으로는 맨유가 순항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미국 투어 5전 전승, 커뮤니티 실드 우승,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이었던 웨스트 브로미치전에서 승리했죠. 하지만 웨스트 브로미치전에서 전술적인 결함을 드러냈습니다. 애슐리 영-클레버리-안데르손-나니로 짜인 미드필더 조합이 공격쪽에 균형을 맞추는 경기를 펼치면서 상대팀의 빠른 역습에 흔들리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맨유와 경기를 앞둔 팀들은 '맨유 미드필더 뒷 공간이 불안하다'는 약점을 간파했을 겁니다. 특히 애슐리 영-나니 콤비는 수비력이 취약한 약점이 있습니다. 공격에 많은 비중을 쏟지만 수비 가담이 늦으면서 풀백의 활동량 부담을 키웠죠. 그런데 에브라-하파엘은 부상으로 빠졌습니다.

물론 에브라는 부상에서 곧 돌아옵니다. 하지만 예년과 같은 폼을 발휘할지 의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과부하가 염려됩니다. 만약 유로 2012에서 명예회복을 꿈꾸는 프랑스 대표팀에 지속적으로 차출되면 체력 소모가 더 클겁니다. 파비우 성장을 기대해야겠지만 올 시즌 활약이 좋지 않으면 맨유의 왼쪽 수비가 허물어집니다. 에반스가 또 왼쪽 풀백으로 기용되는 상황을 보게 될지 모르죠. 애슐리 영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여 풀백과 협력하는 플레이를 늘려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격의 비중이 줄어들죠. 특히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띄우는 선수이기 때문에 공격 작업이 한 박자 늦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맨유의 잠재적인 불안 요소 입니다.

맨유의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박지성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에브라와의 호흡이 잘 맞았고, 에브라 또는 파비우 폼이 좋지 않을때는 기본적인 활동량이 받춰주기 때문에 수비 불안을 해소하면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애슐리 영-나니보다 공을 잘 따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올 시즌에도 '공격적인 강팀'과의 경기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쓸 것으로 예상되며 박지성 같은 수비력이 뛰어난 윙어가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을 것입니다. 나니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선발 제외된 것도 박지성-발렌시아 만큼의 수비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슐리 영이 수비력에 눈을 뜨게되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맨유 입성 첫 시즌부터 수비력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지는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만약 박지성이 지금의 애슐리 영처럼 미국 투어부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분명 어느 시점에서는 지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박싱 데이라는 살인적인 일정이 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말이죠. 부상 방지를 위해서는 퍼거슨 감독이 시즌 초반에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축구팬 입장에서는 박지성이 많은 경기에 출전하기를 바랄 겁니다. 물론 결장이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더 이상 부상으로 시련받지 않으려면 이제는 그의 맨유 입지를 너그럽게 봐야 할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특정 경기 결장에 일희일비 할 때가 아닙니다. 맨유가 경기를 치를수록 박지성 비중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맨유가 힘에 부치는 시점일 때 가장 힘이 되어줄 선수는 박지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지난 시즌에 증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