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소년가장'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내 축구팬들이 2~3년전 부터 AC밀란 공격수 알렉산더 파투(22)에게 소년가장의 별명을 붙여줬죠. 파투가 영건 답지 않게 AC밀란의 득점력을 짊어지면서 가장이라는 책임성이 짙은 이미지를 띄게 됐죠. 최근에는 손흥민(19, 함부르크)이 소년가장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소년가장으로 거듭나야 팀이 성적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죠. 이번 시즌 초반 함부르크의 전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미 강등권으로 추락했습니다.
손흥민은 20일 저녁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1/12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3라운드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 원정에서 87분 뛰었습니다. 하지만 함부르크는 0-5로 대패했습니다. 전반 13분 다니엘 판 부이텐, 전반 17분 프랭크 리베리, 전반 34분 아르연 로번, 후반 11분 마리오 고메즈, 후반 45분 이비차 올리치에게 골을 허용했습니다. 뮌헨의 골대 불운과 함부르크 골키퍼 야로슬라프 드로브니의 슈퍼 세이브 8개가 없었다면 더 많은 실점을 내줬을 것입니다. 함부르크는 17위(1무2패, 골득실 -7)를 기록하며 FC 쾰른과 함께 강등권으로 밀렸습니다.
함부르크, '수비가 강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격언을 깨닫길
함부르크는 뮌헨 원정에서 승점 1점을 목표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아무리 뮌헨의 시즌 초반 행보가 좋지 않아도 상대는 독일 최고의 명문 클럽입니다. 로베리(로번-리베리)가 동시 출격한 뮌헨이라면 매 경기마다 무시 못할 공격력을 자랑할 포스입니다. 그래서 함부르크는 수비 축구로 맞설 수 밖에 없었죠. 골보다는 무실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경기 초반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전반 13분 로번의 오른쪽 측면 프리킥이 판 부이텐의 헤딩 선제골로 이어지면서 함부르크의 전략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이른 시간에 골을 내주면서 의기소침한 수비력을 일관했습니다. 4분 뒤에는 리베리에게 추가골을 내주면서 스스로 자멸했죠.
뮌헨전에서는 슈팅 4-24(유효 슈팅 1-13)개, 점유율 35-65(%)로 밀리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 내내 뮌헨의 공세에 밀렸다는 뜻이죠. 24개의 슈팅을 허용한 것은 함부르크 수비가 불안했음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고메즈-리베리-로번-뮬러 같은 득점력이 출중한 공격 옵션들을 마크하는데 실패하면서 여러차례 슈팅을 내줬죠. 뮌헨 골키퍼 노이어는 심심한 90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함부르크의 공격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함부르크의 경기력이 안좋았다는 뜻이죠.
[사진=바이에른 뮌헨전 0-5 대패를 공식 발표한 함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메인 (C) hsv.de]
특히 수비가 불안했습니다. 아오고-브루마-만시엔-디에크마이어로 형성된 포백의 평균 연령은 22.25세 입니다. 첼시에서 자리잡지 못했던 브루마-만시엔의 평균 연령은 21.5세였죠. 이런 선수들이 고메즈-리베리-로번-뮬러 같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진과 상대하는 현실 이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아오고-디에크마이어가 로베리 봉쇄에 실패하면서 브루마-만시엔과의 라인 컨트롤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뮌헨의 공격 속도보다 늦어지면서 포백의 수비 부담이 가중됐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브루마-만시엔이 짊어지기에는 어려운 현실이었죠. 두 선수도 상대 공격수를 놓치거나 커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한 허술한 수비 운영을 일관하며 0-5 대패의 주범이 됐습니다.
포어 체킹까지 실패했습니다. 얀센-퇴레-손흥민-린콘 같은 함부르크의 공격 옵션들이 뮌헨 진영으로 올라가면서 상대 수비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으려 했지만 움직임이 무거웠습니다. 수비가 불안하면서 뮌헨 공격 옵션들이 함부르크 진영을 자유자재로 뛰어 다녔고, 베스터만-야롤린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슈바인슈타이거-티모슈크로 형성된 뮌헨 더블 볼란치의 균형잡힌 활약에 끌려 다녔습니다. 그래서 함부르크 공격 옵션들이 뒷 공간에 대한 부담이 많아진 끝에 전방에서 볼을 따내기 어려웠습니다. 수비가 취약했고, 베스터만-야롤린이 빌드업을 전개하지 못했으니 함부르크 공격 옵션끼리 역습을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죠. 모든게 수비 불안에서 불거진 문제입니다.
축구에서는 '수비가 강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아무리 공격이 출중한 팀이라도 수비가 약하면 경기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축구는 상대팀을 이겨야 하는 스포츠 입니다. 약팀이라면 수비 축구를 해서라도 승점 1점을 벌어야겠죠. 수비수들의 역량이 부족하면 실점을 허용하기 쉬우며,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이 많아지면서 공격수가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함부르크가 그런 팀입니다. 수비수들의 실력 부족은 도르트문트-헤르타 베를린전에서도 제기 되었던 문제입니다. 특히 만시엔은 히딩크 감독이 임시 지휘봉을 잡았던 첼시 시절에 센터백이 아닌 풀백으로 촉망받는 존재였습니다. 그 선수를 낯선 분데스리가에서 센터백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외닝 감독의 작전 실패 입니다.
어쩌면 손흥민 부진은 예견되었다는 생각입니다. 19세 공격수가 함부르크의 활발한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공격을 짊어져야 하는 환경이었죠. 함부르크가 경기 초반부터 수비축구를 했으니 어떤 공격수든 최전방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볼이 오지 않으면 답답할 수 밖에 없죠. 손흥민은 지난 헤르타 베를린전에서 시즌 1호골을 넣었지만 뮌헨전에서 바트슈투버-판 부이텐과 공간 싸움에서 이기기에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볼을 터치할 기회가 평소보다 부쩍 줄었죠. 종종 볼을 잡으며 동료 선수와 원투패스를 주고 받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뮌헨 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팀이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못했죠.
손흥민은 뮌헨전에서 퇴레와 함께 투톱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퇴레는 손흥민의 19세 동갑내기로서 첼시에서 함부르크로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퇴레는 공을 끄는 답답한 활약을 펼친 끝에 후반 23분 디에크마이어와 함께 질책성 교체 당했습니다. 손흥민의 패스를 받아야 할 지점으로 이동하지 못했고 동료 선수와의 호흡까지 매끄럽지 못했죠. 게레로-페트리치가 각각 햄스트링 부상, 감기로 결장했던 여파가 컸습니다. 특히 페트리치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헤르타 베를린전 처럼 손흥민이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역습을 전개하거나, 상대 수비 빈 공간이 생길때 드리블 돌파로 골을 노리는 패턴(시즌 1호골 장면)이 연출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퇴레는 게레로-페트리치 보다 레벨이 부족했습니다.
많은 축구팬들은 손흥민이 프리시즌에 뮌헨전에서 2골을 넣었던 활약상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프리시즌과 공식 경기는 엄연히 다릅니다. 프리시즌은 선수들이 실전 감각을 되찾으며 몸을 끌어올리는데 목적을 둡니다. 아무리 프리시즌 성적이 좋다고 해서 공식 경기에서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부르크는 프리시즌에 뮌헨을 2-1로 제압했지만 분데스리가 3라운드에서 0-5로 대패했습니다. 2010/11시즌 이었던 지난 3월 뮌헨전에서는 0-6 대패를 당했죠. 그 경기가 끝난 뒤 아민 페 전 감독이 경질 됐습니다. 지금의 외닝 감독도 유력한 경질 후보로 물망에 올랐죠. 수비가 불안한 것은 감독의 전술 역량에 문제가 있음을 뜻하는 증거입니다.
손흥민의 뮌헨전 소득이라면 함부르크의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게레로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졌지만 지난달 코파 아메리카에서 페루의 3위를 이끌면서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몸이 얼마만큼 회복될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주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기력입니다. 경기 활약 여부에 따라 팀 내 입지가 정해지기 때문이죠. 수비가 취약한 함부르크의 환경에서는 손흥민이 공격을 이끌어가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페트리치-게레로가 복귀하면 그나마 공격 작업이 수월하겠지만 수비 문제는 함부르크가 안고 가야 합니다. 함부르크의 다음 경기는 분데스리가 최하위 FC 쾰른전(27일 저녁 10시 30분)입니다. 만약 승점 3점을 획득하지 못하면 총체적 난국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