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 이적시장이 끝나지 않았지만, 아스널의 전력 보강이 두드러지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르비뉴를 이적료 1050만 파운드(약 180억원)에 영입한 것을 제외한 빅 사이닝이 없었습니다. 2004/05시즌 FA컵 우승 이후 6시즌 연속 무관을 극복하기 위해, 파브레가스-나스리 이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격적인 선수 영입이 필요했지만 지금까지의 성과가 미미했습니다. 후안 마타(발렌시아) 영입 작업도 지지부진 합니다. 제르비뉴 이적료를 봐도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는 그들의 원칙은 여전합니다.
오히려 유망주 영입이 활발했습니다. 칼 젠킨슨-조엘 캠벨(이상 19세)을 각각 찰턴과 푼타레나스에서 영입했고, 18세 유망주 알렉스 체임벌린을 사우스햄턴에서 수혈했습니다.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 유망주였던 16세 동갑내기 존 토랄, 헥토르 벨레린까지 데려왔습니다. 일본인 19세 유망주 미야이치 료는 최근 워크 퍼밋을 획득하면서 페예노르트 임대를 마치고 올 시즌 아스널에서 뛸 예정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적 시장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뜻이죠.
[사진=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rsenal.com)]
더욱 암울한 것은 파브레가스, 나스리의 이적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스페인 언론들은 파브레가스의 바르사 이적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보도했으며 나스리는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이적이 유력시 되는 분위기 입니다. 아스널-바르사 구단이 파브레가스 이적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캄프 누로 떠날 선수였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지금까지 팀 전력을 지탱했던 파브레가스-나스리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과 작별하는 것은 아스널의 전력 손실이 맞죠.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빅4 탈락 가능성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스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더불어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강호로 떠올랐습니다. 맨유와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면서 지금까지 빅4에서 탈락한 적이 없었죠. 북런던 라이벌 토트넘이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던 2005/06시즌부터 빅4에서 밀릴 것이라는 일부의 예견된 반응이 있었고, 2009년 1월 이적시장에서 안드리 아르샤빈을 영입했던 전후에는 그 6위로 추락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스널은 지금까지 빅4를 지켰습니다. 때때로 리그 1위에 올랐던 적이 있었고(시즌 후반에 추락), 지난 시즌에는 4위를 기록하며 올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따냈죠.
하지만 아스널의 명성이라면 리그 우승을 노려야 하는 팀 입니다. 첼시가 '무리뉴 효과'를 얻기 전까지는 맨유와 우승을 다투었던, 2003/04시즌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승권이 아닌 빅4 잔류에 익숙해진 현실입니다. 특히 무패 우승 이후에는 시즌 중반에 1위를 달리다가 후반기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면서 3~4위로 시즌을 마치거나, 또는 중반까지 5~6위로 밀렸다가 막판에 분전해서 4위를 사수했던 양상이 전개됐습니다. '빅4 DNA'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어떻게든 4위는 지켰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아스널에 비하면 클래스가 약해졌죠.
올 시즌 빅4 잔류 가능성은 더욱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빅4에서 탈락했던 리버풀, 2009/10시즌 4위를 달성했으나 2010/11시즌 5위로 밀렸던 토트넘의 올 시즌 도약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미 리버풀은 대대적인 선수 보강을 단행했으며 지난 시즌 후반기에는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죠. 토트넘은 다른 강팀들에 비해 선수 영입이 활발하지 못했지만 가레스 베일-루카 모드리치를 지켜냈으며 엠마뉘엘 아데바요르를 맨시티에서 임대 영입할 것으로 보입니다.(아직 토트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모드리치 첼시 이적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첼시가 안드레 비야스-보아스 감독을 영입하면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리버풀-토트넘이 올 시즌 오름세를 달리면 예년보다 빅6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6팀이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4장을 얻으려는 양상이 뜨거워질 조짐이죠. 기존 빅4라면 아스널이 위험한 상황이죠. 만약 파브레가스-나스리가 떠나면 맨유-첼시-맨시티보다 스쿼드가 약해집니다. 지난 몇년 전에 비하면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스쿼드가 두꺼워졌지만 주력 선수들이 부족해지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팀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노장이 흔치 않죠. 전임 주장이었던 윌리엄 갈라스(토트넘)도 당시 노장이었지만 젊은 선수들과 융화하는데 실패했습니다. 24세 주장 파브레가스는 리더십 논란에 있죠. 너무 젊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아스널 빅4 잔류는 아직 비관하기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핵심 선수들이 떠나고 유망주들이 영입되는 현실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빅4는 어떻게든 지켰습니다. 아르센 벵거 감독에게는 빅4 탈락 위기에 굴하지 않는 면역력이 생겼죠. 파브레가스-나스리를 잃을 처지에 몰렸지만 역의 관점에서는 두 선수가 있었을때 리그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6시즌 연속 무관에 빠진 상황이라면 주요 선수를 정리하는 체질 개선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선수는 없지만 판 페르시-윌셔-송 빌롱 같은 선수들은 일취월장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올 시즌에는 또 다른 젊은 선수의 포텐 폭발과 더불어 주요 선수들의 분발을 기대할 수 있죠. 그러면서 팀 색깔이 변화하는 겁니다.
아스널이 올 시즌 어떤 전술을 활용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적시장에서 충분한 빅 사이닝이 없었지만, 벵거 감독이 오랫동안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는 철학을 고수했기 때문에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벵거 감독의 체질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관심사입니다. 맨유-첼시-맨시티에 비해 올 시즌 우승 후보권에서 멀어져있지만 그래도 강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1차적으로 빅4 탈락을 면하는 것이 아스널의 현 주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