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지난 1월 이적시장에서는 세 명의 빅 사이닝이 성사 됐습니다. 페르난도 토레스가 리버풀에서 첼시로 이적하면서 5000만 파운드(약 876억원) 앤디 캐롤이 뉴캐슬에서 리버풀로 둥지를 틀면서 3500만 파운드(약 613억원) 에딘 제코가 볼프스부르크를 떠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로 무대를 옮기면서 2700만 파운드(약 473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토레스-캐롤의 행선지가 이적시장 막판에 바뀌면서 프리미어리그 판도가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지난 시즌 후반기 활약은 저조했습니다. 토레스는 18경기 1골 2도움, 캐롤은 9경기 2골, 제코는 15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캐롤은 허벅지를 다친 상태에서 리버풀에 이적하여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토레스-제코는 충분한 출전 기회를 보장 받고도 골 부족에 시달린 끝에 먹튀로 전락했습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관전 포인트 중에 하나가 토레스-제코의 부활 여부 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캐롤이 부상 후유증에서 벗어나 리버풀의 영웅으로 떠오를지 주목됩니다.
[사진=앤디 캐롤 (C)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liverpoolfc.tv)]
'제토라인 해체' 리버풀, 캐롤의 시대 올까?
캐롤의 이적료 3500만 파운드는 지나치게 높습니다. 같은 기간에 고액 이적료를 기록한 제코보다 더 높은 수치 입니다. 제코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는 아니었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경력이 있습니다. 그동안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꾸준한 영입 관심을 받으면서 몸값이 치솟았고 맨시티가 거액 배팅을 했죠. 반면 캐롤은 2010/11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22세 신예 였습니다. 뉴캐슬에서 프리미어리그 19경기 11골로 득점 3위를 기록한 뒤 이적시장 마감과 함께 리버풀로 떠났습니다. 유럽 축구에서도 캐롤과 같은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퍼디난드는 캐롤의 리버풀 이적이 성사된 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캐롤의 엄청난 잠재력을 인정하지만 다비드 비야(FC 바르셀로나)보다 이적료가 높은 것은 문제 있다. 잉글랜드 이적시장이 완전히 미쳤다"고 캐롤의 3500만 파운드 이적료를 비판했습니다. 또한 3500만 파운드는 프리미어리그 역대 이적료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토레스가 5000만 파운드로 1위를 기록했고 캐롤과 아궤로(맨시티)가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죠. 뉴캐슬의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 이후 많은 경기를 뛰지 않았던 캐롤의 이적료는 많은 사람들이 꼬집을 수 밖에 없었죠.
그렇다고 캐롤이 원해서 3500만 파운드를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리버풀이 토레스가 떠난 자리를 캐롤로 채우기 위해서 뉴캐슬에 3500만 파운드를 지불한 겁니다. 22세 공격수를 데려오는데 많은 출혈이 불가피했지만 첼시로 부터 토레스 이적 댓가로 5000만 파운드를 받았기 때문에 캐롤 영입에 큰 어려움이 없었죠. 캐롤 이적이 성사되기 전에는 수아레스(2200만 파운드, 약 385억원)를 아약스에서 수혈하면서 공격수를 보강했지만 프리미어리그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공격수쪽에서 또 하나의 빅 사이닝이 필요했죠.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우승을 이루지 못했던 리버풀이라면 수아레스 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관건은 캐롤이 3500만 파운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느냐 여부 입니다. 2011/12시즌 활약상에 따라 리버풀의 영웅이 될지 아니면 토레스-제코에 이은 먹튀로 전락할지 두 갈림길에 서있게 됐습니다. 다만 리버풀에서의 주전 경쟁은 밝을 겁니다. 191cm 장신으로서 포스트 플레이에 강하고 특출난 골 결정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타겟맨으로서 유용합니다. 수아레스-카위트도 원톱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지만 캐롤 만큼 힘으로 상대와 맞서 싸울 적임자는 없습니다. 수아레스는 원톱일 때 왼쪽 윙어, 투톱일 때 쉐도우를 맡아 캐롤과 공존할 수 있고 카위트의 본래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입니다.
빅4 재진입을 벼르는 리버풀은 캐롤의 머리를 겨냥하는 공중볼을 즐겨 구사할지 모릅니다. 2선에서 수아레스-메이렐레스-제라드-카위트 같은 문전 침투에 강한 옵션들이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캐롤이 최전방에서 공중볼을 떨구면 누군가 근처 공간에서 빠르게 접근하여 슈팅을 노릴 수 있죠. 롱볼 축구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지만 만약 공격이 안풀리면 캐롤의 머리를 노리는 것이 유용합니다.
또는 2선에서 최전방으로 킬러 패스를 공급하면서 캐롤의 골 기회를 도울 수 있습니다. 캐롤은 선 굵은 축구에 어울리지만 장신 공격수 답지 않게 슈팅 감각, 동료 선수에게 패스 받을때의 능동적인 움직임이 발달 된 선수입니다. 리버풀은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헨더슨, 아담, 다우닝 같은 수준급 미드필더들을 영입하면서 제라드 부상 복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베니테즈 체제에서 허리를 지탱했던 알론소-마스체라노 라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드필더진에 가용할 선수들이 부쩍 많아진 것은 캐롤의 득점력에 기대를 걸겠다는 뜻이죠. 캐롤은 뉴캐슬 시절보다 더 많은 공격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캐롤은 프리미어리그 간판 공격수로 뛰었던 경험이 짧습니다. 자칫 3500만 파운드 이적료 가치를 해내야 하는 부담을 겪을지 모를 일입니다. 노련한 공격수라면 걱정거리는 아니지만 캐롤은 22세 선수입니다. 본래 강심장이라면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뉴캐슬 시절과는 다른 느낌일 겁니다.
그럼에도 캐롤은 리버풀의 빅4 재진입 또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 달성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입니다. 베니테즈 체제에서 제토라인(제라드-토레스)가 공격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달글리시 체제에서는 누군가 공격의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토레스는 이미 첼시로 떠났고 제라드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부진과 부상에 의해 꾸준히 최상의 폼을 발휘하지 못했죠.(호지슨 체제에서는 폼이 올라왔지만) 올 시즌에는 제라드의 2008/09시즌 포스가 기대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캐롤의 시대'가 도래해야 리버풀의 앞날이 밝아집니다. 캐롤이 3500만 파운드 가치를 이루어내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