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에게 '삿포로 참사'라는 뼈아픈 충격을 안겨줬던 자케로니 재팬의 중심에는 카가와 신지(22, 도르트문트) 혼다 케이스케(25, CSKA 모스크바)가 있었습니다. 카가와는 2골, 혼다는 1골을 넣으며 일본의 3-0 승리를 이끌었죠.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일본 축구의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는 선수들입니다. 미우라 가즈요시, 나카타 히데토시, 나카무라 슌스케의 뒤를 잇는 일본 축구의 두 버팀목으로 성장했죠. 혼다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전후해서 나카무라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했고 카가와는 자케로니 재팬 출범 이후 일본 대표팀 입지가 급상승했던 인물입니다.
카가와-혼다는 그동안 일본인 선수라는 이유로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일본 축구에 대해서 안좋은 눈빛을 보내는 한국 축구팬들이 적지 않았죠. 한국 축구팬들 마음 속에서는 '한국 축구>일본 축구'의 흐름이 계속 되기를, 박지성이라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영웅이 일본에서 등장하지 않기를 원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카가와-혼다를 먼저 깎아내리고 선수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축구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가와-혼다는 지금보다는 미래가 더 무서운 일본 선수들입니다.
[사진=한국에게 0-3 패배의 충격을 안겨줬던 카가와 신지-혼다 케이스케 (C) 일본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jfa.or.jp)]
카가와-혼다, 두 유럽파가 성장하고 있다
카가와는 도르트문트의 에이스 입니다. 괴체, 그로스크로이츠, 바리오스 같은 수준급 공격 옵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습니다. 같은 포메이션을 쓰는 일본에서는 혼다에게 밀려 왼쪽 윙어로 출전하고 있지만 도르트문트에서는 본래 포지션에서 활약중이죠. 소속팀 입지가 확고하다는 뜻입니다. 지난 1월 아시안컵 이후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2010/11시즌 26경기 10골 2도움을 기록하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득점력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지난 6일 함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는 자신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는 아쉬움 속에서도 상대 수비 빈 공간을 끊임없이 파고들며 도르트문트의 3-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런 카가와도 최근에는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같은 빅 클럽 이적설로 주목을 끌었죠. 도르트문트에 진출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즉시 빅 클럽으로 떠날 일은 없을 겁니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설은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죠.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기에는 '갈락티코' 멤버들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4-4-2를 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카가와에게 어울리는 포지션이 없습니다. 영건을 선호하는 아스널이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요. 카가와가 도르트문트에서 맹활약을 펼쳤기에 빅 클럽 이적설로 주목을 끌었던 겁니다.
특히 올 시즌은 자신의 명성을 유럽 무대에서 화려하게 떨칠 절호의 기회 입니다. 도르트문트가 분데스리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본선에 진출했죠. 사힌의 레알 마드리드 공백을 귄도간으로 대체했고, 귄도간은 함부르크전에서 정확한 패싱력과 너른 시야로 경기를 조율하며 카가와와 함께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함부르크전 경기력을 놓고 보면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떨칠 잠재력이 충만합니다. 사힌 이탈 공백이 예상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도르트문트의 챔피언스리그 선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카가와가 챔피언스리그에서 도르트문트의 오름세를 주도하고, 분데스리가에서 여전히 강한 인상을 심어주면 유럽 빅 클럽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값이 올라가죠. 어디까지나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도르트문트에서 훌륭한 지도자와 좋은 선수들과 한 팀에서 뛰고 있는 것이 강점입니다. 챔피언스리그 맹활약에 힘입어 탄탄하게 성장하면 개인 파괴력이 지금보다 부쩍 좋아질 겁니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일본과 A매치를 치르면서 유럽 경험이 풍부해진 카가와와 상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죠. "한국 수비가 약하다"는 카가와의 발언은 일리 있는 자신감 이었습니다.
사실, 혼다는 저평가가 불가피 했던 인물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하겠다", "수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돌출적인 발언과 화려한 입국 패션은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적설의 아이콘'으로 유명하죠.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항상 유럽 빅 클럽 이적설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최근에는 주춤했지만 남아공 월드컵 종료 이후에는 10개 넘는 유럽 클럽들의 이적설에 직면했죠. 자신의 실력에 비해 빅 클럽 이적설이 잦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CSKA 모스크바에 잔류하면서 빅 클럽 이적설은 거품이었던 것이 입증됐죠. 국내에서 안티팬들이 많았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최근 일본전에서 혼다에게 쩔쩔메는 수비력을 일관했습니다. 2010년 5월 일본 원정에서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정우가 혼다 봉쇄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2-0 승리를 공헌했지만 그 이후 일본전 3경기가 문제였습니다. 2010년 10월 일본전에서는 조용형이 경기 전체적 흐름에서는 혼다를 잘 막았습니다. 하지만 후반 막판 혼다의 마크를 놓치자마자 실점 위기 상황을 연출했던 아쉬움이 있었죠. 2011년 1월, 8월 일본전에서는 누구도 혼다의 공격력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혼다의 소속팀은 여전히 CSKA 모스크바 였지만 특히 한국전에 강한 인상을 남겼죠. 지난 1월 아시안컵에서는 일본의 우승을 이끈 공로에 힘입어 대회 MVP(최우수 선수)에 선정 됐습니다. 개인 커리어 만큼은 확실하게 성장했습니다.
혼다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을 살려줄 최적의 포지션이 없습니다. 공격수보다는 미드필더로서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경기 완급 조절과 지구력이 부족해서 팀의 몇몇 연계 플레이에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자신을 거칠게 따라붙는 홀딩맨이 있거나 끈질긴 협력 수비를 받으면 힘을 못쓰는 타입이죠. 하지만 상대팀 선수와의 1:1 상황에서는 눈에 불을 킨것 처럼 빠른 순간 스피드로 공간을 침투합니다. 공간이 열리기만 하면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받으며 원투패스를 노리거나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며 팀의 골 기회를 연출합니다.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위치선정이 특출난 미드필더 입니다. 한국 같은 수비가 불안한 팀은 혼다에게 무너지기 쉽죠. 김정우에게 봉쇄당했을 때는 한국의 전임 감독 체제가 완성된 시기였지만요.
그런 혼다는 거칠기로 손꼽히는 러시아 리그 감각에 익숙합니다. 듬직한 체구를 자랑하는 러시아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볼을 지켜내는 노하우가 있죠. 언제 러시아 리그를 떠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1년 8개월 동안 CSKA 모스크바에서 뛰면서 상대의 거친 수비에 면역되었을지 모릅니다. 아시안컵때는 전반전에 활동 범위를 좁히면서 오버 페이스를 줄이다가 후반전에 활발하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괴롭혔던 경기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죠. 앞으로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유럽 경험이 계속 쌓이면 지금의 클래스를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는 25세 입니다. 앞으로 몇년 동안 한국 축구와 상대할 주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