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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박지성, 명품 조연은 아무나 하나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데이비드 베컴, 티에리 앙리가 주축이 된 미국 프로축구(MLS) 올스타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8일 오전 10시(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저지 레드불 아레나에서 진행된 MLS올스타전에서 전반 45분 박스 왼쪽에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박지성 골에 힘입은 맨유는 전반 19분 안데르손, 후반 6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후반 23분 대니 웰백의 골로 4-0 승리를 거뒀습니다. 미국 프리시즌에서 4전 4승을 올렸습니다.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특히 MLS올스타전은 박지성의 프리시즌 첫 선발 출전 경기였습니다. 이전 세 경기(뉴 잉글랜드-시애틀-시카고)에서는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했지만 이번 경기는 미국 프로축구에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던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치렀던 프리시즌 경기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죠. 박지성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강팀에 강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31일에는 FC 바르셀로나와의 리턴 매치가 펼쳐질 예정이기 때문에 프리시즌 초반부터 무리하게 출전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몸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박지성은 MLS올스타전에서 4-4-2의 오른쪽 윙어로 출전하여 60분을 뛰었습니다. 공격과 수비에 고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오른쪽을 지탱했죠. 안데르손이 선제골을 넣기 이전까지는 맨유 역습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전반 8분 앙리가 소유한 볼을 빼앗은 뒤 패스를 시도하며 팀의 공격 기회를 창출했으며, 전방에 있는 동료 선수에게 빠른 타이밍의 스루패스를 연결하며 상대 수비 배후 공간을 단번에 허물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횡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는 동료 선수와 달리 종패스에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맨유의 공격이 다채롭게 전개됐죠.

그런 박지성은 안데르손 선제골 이후 팀 전술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로 변경했습니다. 맨유가 1-0으로 앞선 뒤 캐릭-안데르손-루니가 버텼던 중앙 공격에 초점을 맞추면서 볼을 돌리는 패턴으로 변화했습니다. 박지성이 관여하는 역습 비중이 줄었죠. 하지만 박지성은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잔패스에 관여했습니다. 캐릭-안데르손에게 공격 전개가 쏠리면서 상대 선수들의 견제를 받을때 근처에서 풀어주는 역할이었죠. 전반 45분에는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골을 터뜨리는 넓은 활동 반경을 나타냈습니다.

박지성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 및 커팅은 이날 경기의 백미이자 맨유 승리의 결정적 원인 이었습니다. 팀의 수비를 위해 오른쪽 측면 뒷 공간까지 내려오면서 볼을 잡는 MLS올스타 선수를 따라 붙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전반 24분에는 앙리에게 팔꿈치를 가격 당하는 순간에도 볼을 빼앗으려는 집념을 나타냈죠. 그 이전이었던 전반 21분에는 앙리가 왼쪽 측면에서 필 존스와 볼을 다툴 때 영리한 수비 장면이 있었습니다. 존스의 왼쪽 대각선 뒷 공간에 자리를 잡으며 앙리의 돌파 반경을 좁혔죠. 그러면서 존스의 수비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스피드에 일가견이 있는 앙리라도 박스쪽으로 치고 들어갈 공간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맨유가 공격권을 가져오게 됐죠.

수비에 열성적이었던 박지성은 전반 10분 MLS올스타 진영 중앙에서 상대 빌드업을 직접 차단하며 역습을 이끌어 냈습니다. 전반 40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보비 컨베이가 소유한 볼을 빼앗아 상대 반칙을 유도했던 장면도 있었죠. 볼을 차단한 이후에 지체하지 않고 공격을 시도하면서 컨베이가 반칙으로 끊었습니다. 그리고 앙리 봉쇄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앙리는 3-4-3의 왼쪽 윙포워드로 뛰면서 공격 관여가 많았지만 맨유 수비를 스스로 뚫어내면서 결정적인 골 기회를 노리는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존스를 넘지 못했던 이유가 크지만, 그런 존스의 수비력을 앞선에서 도와줬던 선수가 박지성 입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맹활약은 왼쪽 윙어로 뛰었던 애슐리 영과 대조적입니다. 애슐리 영은 시카고전과 달리 이날 경기에서 부진했죠. 팀의 연계 플레이를 쫓아가지 못해 주변에서 겉도는 느낌 이었습니다. 에브라의 공격 가담이 많아진 것과 밀접합니다. 프리킥이 제법 날카로웠던 점을 제외하면 딱히 인상 깊은 활약이 없었습니다. MLS올스타전 한 경기만으로 박지성-애슐리 영의 입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만, 역시 박지성이 측면에 있을때가 든든함을 이번 경기가 말해줬죠. 미드필더진의 공수 균형에 민감한 맨유의 4-4-2에서는 박지성의 다재다능한 활약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박지성의 프리시즌 맹활약이 꾸준하게 전개 되고 있습니다. 지난 3번의 프리시즌에서는 대표팀 차출 및 부상 여파로 프리시즌을 소화하지 못하거나 후반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른 동료 선수들에 비해 몸이 덜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2008/09시즌 개막 이후 한 달 동안 출전하지 못했고, 2009/10-2010/11시즌 초반에 부진했죠. 그런데 프리시즌에서 지속적으로 충분한 활약을 펼쳤던 지금은 다릅니다. 예년과 차원이 다른 긍정적인 페이스라면 올 시즌 대활약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올해 초 대표팀 은퇴는 자신의 꿈인 '맨유 롱런'의 발판을 열어주는 계기가 됐죠. 어쩌면 지난 시즌 활약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제기합니다.

물론 프리시즌은 엄연히 프리시즌일 뿐입니다. 엄연히 공식 경기가 아니며, 뉴 잉글랜드-시애틀-시카고는 맨유를 실력으로 제압할 레벨과 거리가 멀었죠. MLS올스타는 베컴-앙리가 포진했지만 조직력이 급조됐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프리시즌에서 퍼거슨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합니다. 애슐리 영이 가세하면서 맨유 측면 경쟁에 가속이 붙었고, 폴 스콜스의 은퇴로 팀 내 중앙 미드필더 경쟁 구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올 시즌 많은 선발 출전을 보장받으려면 프리시즌 맹활약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MLS올스타전을 비롯한 최근 프리시즌 4경기에서 더욱 열의를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습에 골 장면까지 더해지면서 경기 활약상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박지성은 대표팀 차출에 따른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던 때를 제외하면 항상 꾸준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평균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을 받아왔죠. 거의 매 경기마다 개인 평점 1~2위를 기록하지 않지만, 루니-에르난데스 같은 스타를 빛내주는 살림꾼 면모에 충실하여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얻으며 중요 경기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맨유는 아무나 들어가는 팀이 아닌 세계적인 빅 클럽으로서 모두가 스타로 떠오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박지성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공격 포인트가 부쩍 늘어나면서 다른 조연들과 차원이 다른 '명품 조연' 클래스에 도달했습니다. MLS 올스타전에서도 그런 면모를 발휘했죠. 명품 조연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실력으로 말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