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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유소년 축구, 수중전을 빛냈던 1번 수비수

 

지난 16일 토요일 오후 5시 였습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린 뒤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우산을 쓴 풍경을 봤습니다. '오늘은 비를 맞으면서 보겠구나'라고 푸념하듯 은평 구립 축구장으로 향했습니다. '현대자동차 2011 KFA 유소년 클럽리그'를 관전하기 위해서죠. 지난주 주말에는 다른 곳에서 유소년 축구를 볼 예정이었는데 경기 당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취소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가 그친 줄 알고 경기장으로 향했더니 다시 비가 내리더군요. 제가 집에서 출발했을때 비가 안내렸죠.

은평 구립 축구장은 지난달 말에도 유소년 축구를 보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신북FC가 삼광FC를 9:2로 제압하는 닥공(닥치고 공격)을 선보이며 제가 '신북셀로나'라는 별칭을 붙였죠. 하지만 신북FC는 이날 경기 일정이 없었습니다. 은평 구립 축구장에서 진행되는 유소년 클럽리그의 서울 북서리그가 총 7팀 출전하는데 라운드 당 1팀이 휴식을 취합니다. 그래서 이날은 신북FC가 없는 묘미를 즐겼습니다.


오후 5시에는 삼광FC와 조쌍제 축구교실의 경기가 진행됐습니다. 하늘에서 굵은 빗 줄기가 계속 쏟아지면서 잔디가 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축구 선수들은 비를 맞아가면서, 물에 젖은 잔디를 질주하며 경기에 임했습니다.


사진 한 장을 놓고 보면 얼마만큼 비가 내렸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하게 쏟아졌습니다. 사방이 뿌옇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빗속에서 주저할 것 없이 시야의 초점이 볼에 맞춰졌습니다. 감독의 작전 지시를 받으며 성실히 경기에 임했죠.


어쩌면 비가 내리는게 더 좋았을지 모릅니다. 여름철에는 인조잔디가 열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잔디가 열을 받으면서 선수들이 화상을 당할 우려가 크죠. 그리고 잔디가 건조하면 볼의 스피드가 떨어지며 깊은 태클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그런 염려가 없었죠.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서 잔디에 물이 고였던 나머지 긴 스루패스가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패스 하다가 볼이 물바닥으로 향하면서 저절로 멈추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죠. 전형적인 수중전의 특색입니다. 관중 입장에서는 예측 불허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잔디에 고여있는 물은 금방 빠졌습니다. 그라운드 바깥쪽에 배수시설이 있었기 때문이죠.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이야기를 저의 학창 시절로 돌리면, 맨땅 그라운드는 비가 그치면 학생들이 체육 수업 시간때 물을 퍼내고 주변에 있는 모래로 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또래들 사이에서는 노동을 한다고 하죠.) 체육 수업이 불가능했죠. 학교 입장에서도 수업 손실이라는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잔디 축구장이 들어서면서 학생들은 이러한 걱정거리가 없게 됐습니다. 물론 이 곳은 은평 구립 축구장이지만요.


[동영상] 삼광FC와 조쌍제 축구교실의 경기 장면 입니다. 빗속에서 진행되는 경기의 일부분 입니다. 삼광FC가 노란색, 조쌍제 축구교실이 자주색 유니폼입니다.


경기 도중에 비가 그치면서 선수들의 경기 몰입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볼의 패스 줄기가 길게 뻗기 시작하면서 공격 템포가 빨라졌죠. 선수들의 볼 다툼까지 치열하게 전개됐습니다.


아직 잔디에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지만 어린이 선수들은 열심히 뜁니다.


수중전의 흔적입니다. 비는 그쳤지만 잔디에 물이 많이 남았죠.


코너킥을 준비하는 조쌍제 축구 교실의 어린이 선수. 볼이 바깥에 나갈 때 재빨리 주워왔습니다. 어떻게든 골을 넣기 위해 시간을 단축했던 마음에서 승리욕이 느껴졌습니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의가 좋았습니다.


은평 구립 축구장 근처 아파트 사이에는 하얀색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장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죠.


조쌍제 축구교실의 한 어린이가 삼광FC 수비진을 개인기로 직접 뚫고 골을 성공시킵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중앙으로 나타나서 오른발 좌우 옆쪽을 볼에 터치하면서 쇄도하여 수비진을 초토화시켰죠. 공격 센스가 뛰어난 어린이 였습니다.


골을 내준 뒤에 실망했던 골키퍼. 하지만 1분도 되지 않아 환호를 했으니.


삼광FC가 하프라인에서 중거리 슈팅을 날렸던 것이 곧바로 골이 되었습니다. 이전 실점을 맞받아치는 골이었죠. 골키퍼를 비롯한 모든 동료 선수들이 서로 모여서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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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구립 축구장에서는 현대자동차 2011 KFA 유소년 클럽리그 걸게 및 막대풍선이 등장했습니다. 학부모님 및 벤치에 있는 선수들은 막대풍선을 들며 경기를 지켜봤죠.


후반전에는 잔디에 있는 물이 거의 빠졌습니다. 조금전까지 물이 가득찼던 모습과 상반됩니다.


은평 구립 축구장은 성인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규격입니다. 어린이 선수들이 경기를 뛰기에는 한 면을 모두 활용하기에는 신체적으로 발달되지 못했고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그래서 세로로 2등분하여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왼쪽에서는 유소년 클럽리그, 오른쪽에서는 경기를 대기하는 팀들이 훈련하는 형태로 운영됐습니다.


훈련에 임하는 윤화평 축구교실(왼쪽) 리틀 FC서울(오른쪽)의 모습입니다. 관중 입장에서는 경기를 보면서 훈련도 지켜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죠.


후반전에는 조쌍제 축구교실이 연속골을 넣으면서 승리를 굳혔습니다.


조쌍제 축구교실 학부모님들이 선수들에게 음료수를 나누어주며 격려합니다. 경기에서 승리했던 어린이 선수들에게 보람찬 순간일 것입니다.


다음 경기는 리틀 FC서울과 윤화평 축구교실의 대결입니다. 리틀 FC서울은 K리그 FC서울이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 클럽입니다. 이날은 서울의 예전 원정 유니폼인 하얀색+파란색 세로 줄무늬 상의를 입으며 경기에 나섰네요. 윤화평 축구교실 유니폼의 주색은 주황색 이었습니다. 윤화평 축구교실 유니폼은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의 홈 유니폼을 연상케 했는데, 마치 서울이 제주 원정으로 떠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리틀 FC서울이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갑니다. 기분 좋은 출발을 하네요.


리틀 FC서울 골키퍼를 맡는 안홍균 어린이는 지난 6월 27일 용산구전에 이어 윤화평 축구교실 전에서도 민첩한 몸놀림으로 실점성 슈팅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른 골키퍼와 달리 다이빙하는 타이밍이 빠르며 판단력도 발달된 것 같습니다. 골키퍼로서의 재능이 풍부한 듯 싶어요.


경기를 마친 조쌍제 축구교실 어린이 선수들이 책가방을 메고 축구장을 떠납니다. 유소년 클럽리그에서는 선수로 뛰고 있지만 본업(?)이 초등학생임을 느끼게 되네요.


저는 경기 내용보다는 윤화평 축구교실에서 체격이 커다란 두 명의 선수에게 시선이 쏠렸습니다. 한 명은 등번호가 1번이었던 수비수, 또 한 명은 18번이었던 공격수 였습니다. 유소년 축구는 체격이 클수록 몸싸움에서 유리하며 특히 중앙에 세워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도 1번 수비수와 18번 공격수가 윤화평 축구교실에서 일당백 역할을 했죠. 18번 공격수는 동점골까지 넣었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지켜보면서 1번 수비수의 육중한 활약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이유는 1번 수비수의 마크맨이었던 리틀 FC서울 공격수의 체격이 매우 작았기 때문입니다. 리틀 FC서울 공격수의 키가 1번 수비수의 어깨에 닿을 듯 말듯한 크기였죠. 리오넬 메시와 리오 퍼디난드가 서로 몸싸움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두 선수가 경합을 펼치는 장면이 재미있었어요. 물론 1번 수비수가 리틀 FC서울 공격수보다 학년이 더 높겠죠.


성인 축구에서는 골키퍼에게 등번호 1번이 돌아가는 것이 매우 일반적입니다. 등번호를 정하면 포지션의 첫 시작인 골키퍼에게 1번이 주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죠. 국제축구연맹(FIFA)은 등번호 1번은 골키퍼가 다는 것을 월드컵에서 원칙으로 하고 있죠. 하지만 유소년 클럽리그는 FIFA가 주관하는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라기 보다는 자국의 유소년 축구 대회) 등번호 제약이 없습니다. 1번 수비수를 보며 성인 축구에서 볼 수 없는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유소년 클럽리그를 흥미롭게 합니다.


옆쪽 그라운드에서는 아직 경기장을 떠나지 않은 조쌍제 축구교실 어린이 선수들이 또래들과 함께 막대풍선으로 장난을 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스타워즈 놀이를 하는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빵터졌습니다.


[동영상] 리틀 FC서울과 윤화평 축구교실의 전반전 풍경입니다.


하프타임에는 그라운드에 하얀색 테이프를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은평 구립 축구장 그라운드는 유소년 클럽리그에서 세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하얀색 테이프를 임시 선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전반전에 골문을 가리키는 선이 흐트러지면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은평 구립 축구장 풍경입니다. 작은 규모의 경기장이지만 선수들이 훈련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하여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오르막에 위치하면서 통풍이 잘 됩니다. 지난 6월말에 이곳에서 경기를 봤을때는 긴팔 남방을 입어도 더위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이 좋아할 축구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후반전을 앞두고 하늘에 먹구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비가 또 내릴 모양입니다.


비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왼손으로 우산,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들며 경기를 봤습니다. 카메라가 DSLR이 아닌 디카라서 편했죠. 사용한지 매우 오래되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수중전일때는 오히려 DSLR보다 더 좋았습니다.


윤화평 축구교실의 1번 수비수가 동료 선수들에게 수비 위치를 가리키는 모습. 전형적인 수비수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더군요.


1번 수비수는 대부분의 골킥을 전담했습니다. 육중한 체격에서 뿜어지는 발의 파워가 강했기 때문인지 볼이 멀리 향했습니다. 역시 유소년 축구에서는 체격 좋은 선수들이 유리합니다.


[동영상] 1번 수비수가 리틀 FC서울 공격때 상대팀 패스를 차단하는 모습. 이런 장면이 여러차례 나타나면서 '아디급' 수비를 과시했습니다. FC서울의 아디가 특히 올 시즌들어 커팅 장면이 부쩍 잦아졌죠. 하지만 1번 수비수의 분전 속에서도 리틀 FC서울이 두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동영상] 1번 수비수가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장면입니다.


두번째 경기는 리틀 FC서울이 윤화평 축구교실을 3:1로 제압했습니다. 리틀 FC서울은 후반 중반까지 스코어 1:1을 유지하면서 소강 상태를 나타냈습니다. 후반부에는 좌우 윙어가 바깥쪽으로 볼을 터치하고 상대 수비의 활동 반경을 틀면서 연계 플레이를 강화했던 작전이 성공하면서 2골을 넣었습니다. 지난달 27일 용산구전에서도 느꼈지만 선수들의 공격 센스가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기 MVP를 꼽으라면 1번 수비수를 꼽고 싶네요. 만약 축구 선수가 꿈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수비수로 무럭무럭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한국 축구가 홍명보 이후 수비수 인재가 부족한 영향이 없지 않죠. 그럼에도 저는 유소년 클럽리그를 통해서 좋은 수비수를 봤네요. 체격 조건이 크고 수비 센스 및 리딩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경기 막판에는 공격 진영에서 직접 프리킥을 시도했는데 세기가 제법 강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한 관중이 '애들이 저 볼을 맞으면 정말 아프겠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경기에서 승리한 리틀 FC서울 선수들. 제가 은평 구립 축구장에 두 번 갔는데 리틀 FC서울이 모두 다 이겼습니다. 다음에도 방문하면 리틀 FC서울이 이길까요? 하지만 여름 방학 관계로 당분간은 경기가 열리지 않습니다.


세번째 경기는 용산구(곤색)-은평FC(하얀색)의 매치업 이었습니다. 은평FC의 경기는 이날 처음 봤습니다. 은평FC는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지도자분이 어린 선수들을 독려하며 자신감을 불어넣는 모습이 열정적 이었습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가기 힘겨워할 때 그 분이 목소리로 도와주셨죠.

 


[동영상] 용산구의 첫번째 골 장면입니다.
 


[동영상] 용산구-은평 FC의 경기 풍경입니다.


세번째 경기에서도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스탠드에 있지 않은 관중들은 우산을 쓰면서 경기를 바라봤습니다. 아직까지 야간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서 경기장 분위기가 어두웠습니다.


드디어 조명에 불빛이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어린이 선수들은 조명불 때문인지 경기에 열의를 다하며 그라운드를 질주했습니다. 1:1로 맞선 상황이라서 경기 분위기가 팽팽했죠.


예전 같으면 야간에 유소년 축구를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조명 시설이 미비했거나 또는 조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죠. 인조잔디 축구장이 보급되면서 우리나라의 축구 인프라가 발전했음을 실감합니다. 그러면서 유소년 클럽리그가 등장할 수 있었죠. 한국 축구의 내실이 더욱 튼튼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영상] 은평 FC가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했습니다. 선수들의 기분이 짜릿했을 것입니다. 특히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아마도 지금까지 최고의 기분을 만끽하지 않을까 싶네요. 주말저녁에 유소년 클럽리그를 관전하기 위해 서울 신림동에서 구파발역까지 이동했던 저로서 보람찬 순간이었죠. 경기 종료 후 식당에서 냉면으로 저녁을 떼웠는데 평소보다 맛있었습니다. 축구장에서 멋진 장면에 감탄하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게 축구팬의 운명인가 봅니다. 또한 네이버 축구 블로거 알깐 슛돌이님을 은평 구립 축구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동안 유소년 클럽리그를 통해서 알깐 슛돌이님, 루이님 같은 좋은 축구 블로거분들을 만나뵙게 되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