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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평점 1위' 박지성, 만능형 윙어의 결정판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종횡무진 활약이 인상 깊었던 경기였습니다. 강팀에 강한 면모는 여전히 변함 없었고, 공격 및 수비-측면 및 중앙을 마음껏 휘저으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고, 맨유가 첼시 진영에서 공격을 시도하거나 또는 첼시 선수가 볼을 소유하면 언제나 산소탱크가 움직이고 또 움직였습니다. 상대팀을 무너뜨린 킬러 패스까지 포함하면 '만능형 윙어'로 거듭나는 결정판이 됐습니다.

박지성은 9일 오전 0시 10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첼시전에서 맨유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경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하프라인에서 라이언 긱스가 후방에서 찔러준 볼을 받아 브리니슬라프 이바노비치를 등지고 전방에 있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쪽으로 킬러 패스를 연결했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다비드 루이스를 뚫고 박스 쇄도 후 오른발로 골을 터뜨렸습니다. 선제골 시점이 전반 39초 였습니다. 박지성은 에르난데스 골을 도우면서 시즌 5호 도움(7골)을 기록했습니다.

맨유는 에르난데스가 경기 시작 39초 만에 골을 넣은 뒤, 전반 23분 네마냐 비디치가 라이언 긱스의 왼쪽 크로스를 헤딩골로 작렬하며 2-0으로 앞섰습니다. 후반 23분 프랭크 램퍼드에게 만회골을 내줬지만 리드를 지킨 끝에 승리가 확정됐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리그 1위(22승10무4패, 승점 76)를 지키며 2위 첼시(21승7무8패, 승점 70)를 승점 6점 차이로 따돌렸습니다. 앞으로 리그 2경기(블랙번-블랙풀) 남은 상황에서 승점 1점만 획득해도 우승이 확정됩니다. 첼시전 승리로 리그 우승을 99.9% 굳혔습니다.

박지성은 첼시전에서 풀타임 출전하여 맨유의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맨체스터 지역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로 부터 "경기 시작부터 놀랄만한 활약을 펼치며 맨유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태클 동작 및 기민한 활약을 펼치는 완벽한 패키지였다"는 호평과 함께 팀 내에서 가장 높은 평점 9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평점 동률을 이루었지만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로 부터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 됐습니다. <골닷컴 영문판>에서는 발렌시아-루니와 함께 평점 8.5점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최우수 선수는 발렌시아) 현지 언론사 두 곳에 의해 평점 1위에 올랐습니다.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박지성-발렌시아, 첼시가 막을 수 없는 콤비

맨유는 첼시전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오셰이-비디치-퍼디난드-파비우가 수비수, 박지성-긱스-캐릭-발렌시아가 미드필더, 루니-에르난데스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에브라가 18인 엔트리에서 빠진 공백을 오셰이가 메웠습니다. 첼시는 맨유 원정에서 4-3-3을 활용했습니다. 체흐가 골키퍼, 애슐리 콜-테리-루이스-이바노비치가 수비수, 램퍼드-미켈-에시엔이 미드필더, 말루다-드록바-칼루가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전 맨유 킬러' 토레스가 끝내 선발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런 맨유는 첼시를 2-1로 승리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경기 초반 '박지성 도움-에르난데스 골'이 첼시를 무너뜨리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으면서 원정팀이었던 첼시 선수들의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맨유는 이번 경기 이전까지 리그 홈 성적 16승1무였던 반면에 첼시는 원정에서 7승5무5패로 고전했으며 특히 맨유를 제외한 빅6 원정에서 4전 1무3패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통계적 흐름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영향을 끼치면서, 맨유가 경기 초반에 선제골을 넣는 전략으로 첼시를 상대했습니다. 선수들의 활동 반경을 첼시 진영쪽으로 올리는 맹공격을 펼쳤다면 첼시는 그 흐름을 예상 못했을 것입니다. 맨유가 최근 첼시전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펼쳤기 때문이죠. 하지만 맨유는 그동안의 전술을 뒤집었습니다.

적어도 전반전은 맨유가 첼시에 두 수 앞선 경기를 펼쳤습니다. 모든 플레이가 의도한대로 풀리면서 2-0으로 앞섰죠. 11명의 선수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조직적인 단합이 잘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지성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빅 클럽 킬러'로서 그라운드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첼시 진영을 흔들었습니다. 골키퍼 판 데르 사르의 연이은 슈퍼 세이브까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첼시는 루이스가 두 번의 실점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고(안첼로티 감독이 즉시 화냈을 정도로), 드록바를 제외하면 분발하려고 노력하는 선수가 딱히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에르난데스에게 일찍 실점을 허용하면서 페이스가 다운된 면모가 역력했습니다.

첼시의 또 다른 맨유전 패인은 좌우 풀백 이었습니다. 애슐리 콜-이바노비치이 전반전에 소극적이고 존재감없는 오버래핑(지공일 때 제외) 및 미드필더가 중앙쪽으로 활동 반경이 쏠리면서 말루다-칼루의 활동량 요구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가 부응하지 못하는(드록바 움직임이 많았던 이유) 포지션 불균형이 드러났습니다. 애슐리 콜-이바노비치의 공격력 저하는 박지성-발렌시아 수비력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미드필더는 미켈-에시엔 폼이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긱스-캐릭을 봉쇄해야 하는 버거움이 문제였죠. 그래서 램퍼드가 중앙쪽으로 커버 플레이를 펼치는 움직임이 많아졌지만 공격 조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했습니다. 램퍼드-에시엔으로 짜인 좌우 인사이드 미드필더들의 측면 뒷 공간이 불안했던 이유입니다.

화제를 맨유로 전환하면, 퍼거슨 감독은 첼시를 공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첼시 좌우 풀백의 공격력을 제어해야 맨유가 이길 수 있다는 공식 말입니다. 특히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는 박지성-발렌시아 윙어 콤비가 애슐리 콜-보싱와 뒷 공간을 파고들면서 그들을 전방 압박했던 기민함이 맨유 승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수비 가담을 펼치며 상대 풀백의 활동 반경을 앞쪽으로 끌어올리고, 역습 시에는 상대 풀백 뒷쪽을 파고들며 첼시 진영을 허물었습니다. 그 패턴이 이번 첼시전에 또 적용되면서 애슐리 콜-이바노비치를 울렸습니다. 박지성-발렌시아는 첼시가 막을 수 없는 콤비였습니다. 두 선수처럼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하면서 경기 집중력이 뛰어난 옵션이 첼시에는 없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이바노비치와의 매치업에서 이겼습니다. 전반전에는 팀이 수비를 펼칠 때 왼쪽 측면에서 이바노비치의 동선을 쫓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공이 없을때의 움직임에서 말입니다. 이바노비치의 특기인 얼리 크로스를 저지하겠다는 심산이었죠. 왼쪽 측면에 있지 않을때는 상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는데 집중했죠. 얼마만큼 부지런히 뛰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이바노비치는 박지성 수비에 고전한 끝에 17개의 패스 미스를 범했습니다.(30/47개, 애슐리 콜은 51/54개) 또한 박지성은 전반 22분 왼쪽 측면에서 이바노비치와 맞닥드릴 때, 동선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빨랫줄 같은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날렸습니다. 골키퍼 체흐 선방에 막혔던 슈팅 이었지만 이바노비치가 공격을 차단하려는 판단력이 늦었습니다. 박지성은 이바노비치가 폼이 안좋은 것을 읽으며 과감히 슈팅을 시도했던 겁니다.

박지성 킬러 패스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프라인을 넘으면서 볼을 몰고갔을 때, 일찌감치 루이스 뒷 공간을 파고들었던 에르난데스 쪽으로 킬러 패스를 띄웠습니다. 동료 선수의 움직임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판단력이 좋았습니다. 이 장면은 자신의 공격력 발전을 상징합니다. 그 이전에도 종패스에 강한 면모를 발휘했지만, 상대 수비 뒷 공간쪽으로 패스를 찔러주면서 동료 공격수에게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만들어주는 임펙트는 올 시즌에 부쩍 좋아졌습니다. 지난 몇 시즌 동안 견고하고 터프한 수비력을 발휘했던 첼시를 상대로 말입니다. 자신의 수식어로 부각되는 '빅 클럽 킬러'가 철저한 실력으로 이루어진, 공격력 진화를 위해 노력했던 결과였음을 킬러 패스로 말해줬습니다. 단순히 골 숫자만 늘었던 것은 아니었죠.

맨유의 첼시전 공격 전술은 박지성이 중심이 된 듯한 느낌 이었습니다. 박지성이 왼쪽을 기반으로 중앙 및 오른쪽 측면까지 패스 플레이에 관여하거나 상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던 장면이 많았죠. 볼 터치에서도 박지성이 맨유 선수 중에서 2위 였습니다.(78개, 1위는 긱스의 84개) 긱스가 중앙에서 경기를 조율했다면 박지성은 경기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죠. 여러 곳을 움직이면서 상대 수비 위치에 따라 킬러 패스, 원터치 패스, 횡패스 등을 골고루 섞거나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수비도 잘했지만(발렌시아와 더불어 태클 8개 성공, 양팀 최다 기록), 우리는 박지성이 첼시전에서 더 이상 수비적인 윙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장점이 풍부하면서 강팀에 강한 '만능형 윙어'는 아마도 유럽 축구에서 흔치 않을 겁니다.

어쩌면 지난 1일 아스널전 실수는 첼시전 맹활약을 위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당시 아스널전에서는 램지를 놓쳤던 것이 결승골 실점의 빌미가 됐죠. 국내 여론에서는 퍼거슨 감독 질책이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그 여부를 떠나(개인적으로 논란이 무의미하다고 보지만) 앞으로 더 좋은 경기를 펼치도록 매 순간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열의를 다하는 자세가 첼시전에서 명확하게 나타났죠.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박지성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전 선발 출전은 거의 확정적이라고 봅니다. 웸블리에서 맨유의 유럽 챔피언을 이끌 자질이 충분함을 첼시전에서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첼시전은 '만능형 윙어의 결정판'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