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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평점 1위' 박지성에게 아쉬웠던 맨유 탈락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는 웸블리에서 잘싸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제 구실을 하기에는 팀의 전체적인 공격력이 미흡했습니다. 결승골 실점은 동료 선수의 실수에서 비롯됐습니다. 아무리 개인이 맹활약 펼치더라도 팀이 패하면 빛이 바라는 것이 축구라는 팀 스포츠의 숙명입니다.

박지성의 맨유가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맨유는 17일 오전 1시 15분(이하 한국시간) 웸블리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FA컵 준결승 맨시티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후반 7분 마이클 캐릭이 전진패스를 시도하다 야야 투레에게 볼을 빼앗긴 뒤, 투레는 네마냐 비디치를 제치고 문전으로 쇄도하여 오른발 슈팅으로 결승골을 작렬했습니다. 후반 26분에는 폴 스콜스의 퇴장으로 경기 흐름이 맨시티 승리로 기울어졌죠. 맨시티는 다음달 14일 웸블리에서 볼턴-스토크 시티(18일 오전 0시) 승자와 결승에서 격돌합니다.

한편 박지성은 경기 종료 후 맨체스터 지역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를 통해 "에너지 넘치는 한국인 선수는 맨시티가 경기를 지배할 때 그들이 볼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맨유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평점 8점을 기록했습니다. 8점은 맨유 선수들 중에서 가장 높은 평점입니다.

맨유, 예상보다 컸던 루니의 공백

맨유는 맨시티전에서 4-2-3-1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오셰이가 수비수, 스콜스-캐릭이 더블 볼란치, 나니-박지성-발렌시아가 2선 미드필더, 베르바토프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루니가 징계로 결장한 공백을 베르바토프가 메웠습니다. 상대팀 맨시티도 4-2-3-1로 맞섰습니다. 하트가 골키퍼, 사발레타-레스콧-콤파니-리차즈가 수비수, 배리-데 용이 더블 볼란치, 실바-투레-존슨이 2선 미드필더, 발로텔리가 공격수로 나섰습니다. 발로텔리는 테베스 부상 및 제코의 부진을 만회하는 원톱의 임무를 부여 받았죠.

경기 전체적 관점에서는 맨유가 맨시티보다 공격적 이었습니다. 맨유는 슈팅 12-10(유효 슈팅 6-2, 개) 점유율 56-44(%)의 우세를 점하며 라이벌보다 더 많은 골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반 33분까지는 슈팅 5-2(유효 슈팅 2-0, 개), 점유율 64-36(%)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죠. 언뜻보면 맨유가 경기를 지배한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맨시티는 선 수비-후 역습으로 맨유전에 나섰습니다. 맨유가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는 흐름을 이용하여 드리블 돌파 및 빠른 원터치 패스에 의한 기습을 노리는 움직임이 역력했습니다. 전반 중반까지 밀집 수비를 펼치면서 그 이후 공격에 활기를 띄웠죠.

맨유는 전반 중반까지 1골을 넣었어야 했습니다. 경기 흐름에서 앞선것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죠. 수비 지향적인 맨시티에게 1골을 먼저 빼앗기면 상대가 잠글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서 선제골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의 슈팅이 아쉬웠습니다. 전반 14분 박스 중앙 쇄도 과정에서 박지성에게 침투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슈팅을 날렸으나 맨시티 골키퍼 하트 선방에 막혔고, 1분 뒤에는 비슷한 지점에서 나니의 왼쪽 논스톱 패스를 오른발 슈팅으로 받아냈으나 볼이 공중으로 뜨고 말았습니다. 두 장면 중에 하나라도 골로 연결되었다면 맨유의 경기 운영이 순탄했을지 모릅니다.

[사진=맨시티전 0-1 패배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문제는 베르바토프의 부진 이었습니다. 박스쪽을 중심으로 골 기회를 기다리는 형태의 움직임을 취했지만 맨시티의 견고한 수비와 맞서기에는 좁은 공간에서의 볼 터치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맨시티 선수에게 볼을 빼앗기거나 2차 패스가 끊기는 단점이 나타났죠. 동료 미드필더들이 연결했던 골 기회를 스스로 날렸던 셈입니다. 루니-에르난데스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면모가 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맨유가 직면했던 루니의 공백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이러한 맨유의 공격력 저하는 지난해 4월 3일 첼시전이 오버랩됩니다. 나니-박지성-발렌시아가 4-2-3-1의 2선 미드필더, 베르바토프가 원톱을 맡았으나 끝내 팀은 1-2로 패했죠. 베르바토프가 동료 미드필더들이 제공했던 골 기회를 날리거나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들에게 고립되는 무기력한 활약을 펼쳤던 것이 맨유의 패인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맨시티전에서 같은 흐름이 연출됐죠. 베르바토프는 루니 같은 부지런한 움직임을 동반한 공격수가 4-4-2 쉐도우로 뛸 때, 상대팀이 수비력 불안에 직면할 때 어김없이 골을 터뜨리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형태가 아니라면 좀처럼 경기를 풀어가지 못합니다. 강팀 경기에 약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제 구실을 했습니다. 나니-베르바토프-발렌시아 같은 공격 성향의 옵션들이 최적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맨시티 미드필더들과 정면 경합 했습니다. 볼이 없을때의 움직임에서 말입니다. 상대 미드필더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움직여서 압박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했고, 맨시티 선수가 선점하려는 공간에 미리 위치하는 형태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중앙쪽을 중심으로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그 결과 맨유는 측면에서 빈 공간이 넓게 형성되면서 나니가 돌파를 시도하는 장면들이 많아졌습니다. 다만, 발렌시아가 오른쪽 측면에서 어중간한 활약을 펼쳤던 것은 나니-박지성과 균형이 맞지 않는 문제점으로 직결됐습니다.

박지성은 맨시티전에서 궂은 역할을 부여 받았습니다. 하지만 맨유가 맨시티 진영에서 원만하게 공격을 풀어가려면 누군가 상대 미드필더들과 맞서야 했습니다. 맨시티는 배리-데 용이 홀딩 역할을 하면서 실바-투레-존슨이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펼치는 체제로서 상대팀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를 두기가 위험했습니다. 공격적인 장점이 풍부한 미드필더가 맨유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으면 맨시티의 집중 견제 타겟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동료 선수들이 골을 노리는 공간 창출에 주력하면서 맨유가 맨시티보다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원톱이 베르바토프가 아닌 루니였다면 맨유가 퀄리티 높은 경기를 펼쳤을지 모릅니다.

그런 박지성의 맨시티전 활약상이 긍정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상대팀이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특히 전반전에는 맨시티 2선 미드필더들이 맨유 진영으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죠. 배리-데 용이 박지성에게 시달리면서 실바-투레-존슨의 수비 가담이 불가피 했습니다. 맨유의 공격이 끊어지면 2선에서 역습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으나, 박지성을 비롯한 맨유 미드필더들이 하프라인쪽을 중심으로 1차 저지선을 형성하면서 빌드업 속도가 늦어졌죠. 그런데 맨유는 후반 초반에 수비쪽에서 집중력 저하에 시달렸습니다. 팀 전체가 느슨한 활약을 펼치면서 끝내 캐릭이 패스 미스를 범했고 투레가 결승골을 넣으며 맨시티가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맨유는 후반 19분 발렌시아를 빼고 에르난데스를 교체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4-4-2로 전환하면서 박지성과 나니가 좌우 윙어를 맡았습니다. 박지성은 왼쪽 윙어로 뛰면서 볼 터치가 많아졌고, 전방쪽으로 볼을 내주는 형태의 움직임을 취하며 맨유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스콜스-캐릭이 중원을 지켰고 나니가 오른쪽에서 공격의 갈피를 못잡으면서 박지성에게 공격이 집중됐죠. 하지만 스콜스가 후반 26분 퇴장 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시달렸습니다. 경기 종료까지 맨시티의 포어 체킹에 시달리는 바람에 상대 진영에서 골 기회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격을 펼칠 수 있는 인원이 적었죠. 잘싸웠던 박지성에게 아쉬움에 남았던 맨유의 탈락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