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해도 우승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팀들을 앞설 수 있는 균형잡힌 스쿼드와 감독의 전략이 일치하는 것 부터 중요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즉시 전력이 향상될 수 있는 선수 영입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첼시는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부임한 이후부터 선수 영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았습니다. 지난 몇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부자 구단으로 성장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함께 리그 우승을 양분할 수 있는 전력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꿈이었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에는 맨유와의 8강 1~2차전에서 모두 패했죠. 이것이 첼시의 현실입니다.
[사진=페르난도 토레스 (C) 첼시 공식 홈페이지(chelseafc.com)]
유럽 제패애 실패한 첼시를 바라보며
냉정히 말하면,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강력한 위용을 발휘했던 시기는 2008/09시즌 4강 진출이 아닐까 싶습니다. 8강 리버풀전 1차전 원정에서 3골을 몰아 넣으며 안필드를 침묵으로 빠뜨렸고 2차전에서는 4-4 접전을 펼친 끝에 4강 고지에 올랐습니다. 4강에서는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에게 떨어졌지만 1~2차전에서 모두 비겼습니다. 당시 바르사와 챔피언스리그에서 팽팽한 접전을 펼쳤던 유일한 팀이 첼시였습니다. 2차전 종료 직전 이니에스타에게 동점골을 내주면서 원정 다득점에 의한 탈락을 했지만 '지지않는 힘'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2007/08시즌 결승 맨유전이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테리가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것은 매우 불운한 일이었습니다. 그 실수만 없었으면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꿈이 이루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결승 무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지난 두 시즌 동안의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전적은 아쉬움이 짙습니다. 지난 시즌 16강 인터 밀란전 및 올 시즌 8강 맨유전을 포함한 1~2차전 모두 패했습니다. 올 시즌 16강은 무난히 진출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였던 코펜하겐은 토너먼트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팀입니다.
첼시가 두 시즌 동안의 과오에서 깨우쳐야 할 것은, 그동안 팀 전력의 중심을 잡아줬던 황금세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드록바-램퍼드-에시엔-애슐리 콜-테리-페레이라-체흐 같은 무리뉴 감독 시절부터 함께했던 주역들이 다음 시즌에도 첼시의 주축으로 뛰기에는 힘에 부칩니다. 그나마 체흐만이 골키퍼로서 구김살없는 활약을 펼쳤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전성기가 지나면서 노쇠화에 직면했거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상태에 직면했습니다. 테리의 단단함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테리는 지난 시즌부터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손을 쓰면서 파울을 범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지난 1월 이적시장 마감 당일에 5000만 파운드(약 889억원)의 이적료로 야심차게 영입했던 토레스의 부침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토레스는 첼시 이적 후 11경기에서 무득점 부진에 빠졌습니다. 5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감안하면 예상보다 저조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 첼시의 토레스 영입은 화력을 보강하면서 장기적으로 드록바를 대체하는 복안이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안첼로티 감독의 뼈아픈 실수도 있었습니다. 맨유와의 8강 1차전에서 부진했던 토레스를 2차전에 선발 기용하면서 팀 공격력이 저하된 것은 잘못된 선택 이었습니다.
이러한 토레스의 부진은 소위 말하는 '분노의 영입'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보장하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균형잡힌 스쿼드'가 전제되지 않으면 유럽 제패는 어렵습니다. 토레스의 침체는 팀 전술과의 괴리감과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빠른 스피드로 골을 양산하는 토레스가 활동하기에는 점유율을 늘리면서 빠른 템포의 공격으로 맞서고, 피지컬을 활용하는 첼시의 현 공격 컬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토레스 곁에는 전방쪽으로 킬러 패스를 공급하거나 침투 공간을 열어주면서 팀 공격을 주도하는 유형의 공격형 미드필더(제라드 스타일)와 공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첼시는 리버풀이 아니었습니다.
단언컨데, 첼시는 다가오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할 것입니다. 기존의 황금 세대를 대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루다-지르코프의 내림세 및 오른쪽 풀백 문제까지 포함하면 대대적인 스쿼드 보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루머에 따르면, 발렌시아의 왼쪽 윙어로 뛰는 마타 영입에 3000만 파운드(약 533억원)를 쏟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습니다. 네이마르(산토스) 판 데르 비엘(아약스) 같은 또 다른 대형 선수의 영입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레스 사례에서 보듯, 이적시장에서 많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우승이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이 서로 손발이 안맞거나 팀 전술에 어울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팀 전력의 계륵같은 선수들이 쏟아지기 마련이죠. 토레스-루이스 영입 이전까지 스쿼드의 노령화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세대교체가 절실한 팀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음 시즌 팀 컬러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1차적으로는 토레스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공격 옵션의 영입이 필요합니다. 토레스 부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첼시에게는 손해입니다. 5000만 파운드를 쏟았던 보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램퍼드-에시엔 경쟁자 혹은 대체자 영입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첼시가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안첼로티 감독의 거취입니다. 지난 2009년 여름에 유럽 제패를 위해 영입했지만, 지난 두 시즌 동안의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행보는 답답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2007/08시즌 결승 맨유전 승부차기 이후에 경질되었던 그랜트 감독의 전례를 밟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가 안첼로티 감독이 물어야 할 책임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맨유와의 8강 2차전에서 토레스를 기용했던 패착이 있었지만, 맨유전만으로 경질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안첼로티 감독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는지 여부를 되새겨야 합니다. 선수 영입 권한이 안첼로티 감독에게 없기 때문이죠. 토레스의 경우에는 안첼로티 감독이 원했던 선수가 아닙니다.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은 첼시에게 좋지 않은 전례로 회자 될 것입니다. 지난 2003년 부터 8년 동안 첼시 사령탑에 몸담았던 지도자만 6명(라니에리-무리뉴-그랜트-스콜라리-히딩크-안첼로티) 입니다. 잦은 감독 교체는 팀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선수들이 혼란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안첼로티 감독이 야심찬 리빌딩을 단행할 수 있는 지도자로 판단하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감독 경질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해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이나 유럽을 제패했던 무리뉴 감독도 첼시에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은 첼시의 영광을 이끈 대표적인 주인공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돈보다는 튼튼한 내실이 더 중요함을 첼시가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