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드디어 스탬포드 브릿지 징크스에서 벗어났습니다. 적지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면서 4강 진출의 실낱같은 희망을 이었습니다. '산소탱크' 박지성은 후반 48분까지 뛰면서 상대팀 공격을 끊는데 주력하여 맨유 승리에 힘을 보탰습니다.
맨유는 7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첼시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24분 웨인 루니가 박스 중앙에서 라이언 긱스의 왼쪽 논스톱 패스를 오른발 인사이드로 밀어넣으면서 결승골을 작렬했습니다. 루니는 지난 2일 웨스트햄전 해트트릭에 이어 첼시전 승리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최근 13경기에서 10골을 터뜨리는 고공행진을 펼쳤습니다.
런던 원정에서 승리한 맨유는 2002년 4월 이후(첼시전 3-0 승리)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11경기 연속 무승(4무7패)에 시달렸던 열세를 드디어 만회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전략이 첼시의 약점을 파고들었던 승리였습니다. 오는 13일에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8강 2차전을 치릅니다.
4-4-2로 나선 두 팀, 하지만 스타일은 달랐다
홈팀 첼시는 4-4-2로 나섰습니다. 체흐가 골키퍼, 애슐리 콜-테리-이바노비치-보싱와가 수비수, 지르코프-램퍼드-에시엔-하미레스가 미드필더, 토레스-드록바가 선발로 나섰습니다. 아넬카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6골 넣었음에도 선발에서 제외된 것은, '맨유 킬러' 토레스-'최근에 폼이 살아난' 드록바가 더 적합하다는 안첼로티 감독의 뜻이었습니다. 4-4-2의 맨유는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하파엘이 수비수, 박지성-긱스-캐릭-발렌시아가 미드필더, 루니-에르난데스가 투톱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에서 4-2-3-1을 즐겨 구사했지만 첼시전은 달랐습니다.
전반 4분까지는 첼시의 공격 시도가 많았습니다. 패스 22-8(개)로 앞서면서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맨유가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의 폭을 좁히면서 조심스러운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첼시의 공격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맨유가 그동안 스탬포드 브릿지에 약했고,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원정에서도 많은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점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지성은 수비에 주력했습니다. 자신의 마크맨 보싱와가 경기 초반부터 미드필더 라인으로 올라오면서 전반 4분까지 5개의 패스를 시도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리한 공격보다는 동료 선수와의 협력 수비에 시간을 할애하며 첼시의 오른쪽 공간 침투를 막으려 했습니다.
[사진=첼시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웨인 루니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루니 결승골, 첼시 좌우 밸런스 공략한 맨유의 우세
맨유는 전반 10분이 되면서 공세를 시도했습니다. 포백이 전진 수비를 취하면서 미드필더진과 볼을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되찾았고, 박지성이 짧은 패스를 통해 첼시 왼쪽 전방으로 올라가는 움직임을 취하면서, 하파엘이 첼시 중앙 공간으로 파고들면서 상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아 직접 역습을 주도하는 움직임을 취했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전반 14분과 15분에 슈팅을 날렸습니다. 경기 초반 수비에 주력했던 것은 첼시의 초반 공세를 끊으며 상대팀 특유의 빠른 템포를 제어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스탬포드 브릿지에 약한 징크스가 있다는 점에서 초반 실점은 치명적이죠. 그래서 경기 분위기가 첼시에서 맨유쪽으로 넘어갔습니다.
특히 발렌시아가 복귀하면서 오른쪽 수비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발렌시아는 오른쪽 측면 깊숙한 지점으로 수비 가담을 펼치면서 애슐리 콜의 활동 반경을 앞쪽으로 끌어 당겼고, 팀의 역습시에는 상대 진영쪽으로 치고드는 움직임을 펼치며 첼시의 밸런스를 끊으려 했습니다. 첼시의 주 공격 루트 중 하나인 애슐리 콜의 오버래핑 세기를 약화시키고, 공격시에는 애슐리 콜의 뒷 공간을 뚫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왼쪽에 있는 박지성은 앞쪽으로 올라가면서 무게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하미레스-보싱와의 수비 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죠. 맨유의 첼시전 승리 전략은 박지성-발렌시아 콤비를 통한 '상대팀 좌우 밸런스 흔들기' 였습니다.
맨유는 전반 24분 1-0으로 앞섰습니다. 긱스가 왼쪽 측면에서 박스쪽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중앙쪽으로 왼발 논스톱 패스를 내준 것이 루니의 오른발 밀어넣기 골로 이어졌습니다. 첼시의 좌우 밸런스 공략을 노렸던 맨유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틈을 긱스가 왼쪽 측면에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하면서 루니가 골을 넣는 발판을 마련했죠. 특히 긱스는 그때까지 맨유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18/25개)를 시도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1분 뒤에는 박지성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직접 첼시의 공격을 끊고 드리블 돌파를 통한 역습을 시도하는 재치가 돋보였습니다.
반면 첼시는 맨유에게 전술적인 역량에서 밀렸습니다. 최근에 4-3-3에서 4-4-2로 전환하면서 수비 뒷 공간을 내주는 커버 플레이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죠. 지난달 2일 맨유전에서는 2-1로 승리했음에도 전반전에 램퍼드-에시엔 중앙 라인이 무너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맨유전에는 좌우 측면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지공을 시도할때는 램퍼드-에시엔 라인과 포백 사이에서 넓은 공간이 벌어지면서 맨유가 중앙에서 인터셉트에 이은 역습을 허용당하는 단점까지 직면했죠. 수비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허리 싸움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특히 램퍼드는 공격을 주도하는 활약상이 눈에 띄지 않았죠.
토레스가 맨유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움직임이 많았던 것은 첼시가 유일하게 잘했던 공격 전개 였습니다. 하지만 맨유가 포백과 미드필더 라인을 좁히면서 빈 공간을 내주지 않으려는 촘촘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첼시의 공격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맨유와의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렸죠. 좌우 측면에서는 박지성-발렌시아에 의해 공격이 눌리면서 경기 분위기를 반전짓는 흐름을 가져가지 못했죠. 센터백 루이스가 결장하면서 이바노비치가 그 공백을 메워야했고, 보싱와까지 애매한 경기를 펼쳤던 첼시의 수비력 저하가 전반전에 0-1로 밀리는 문제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소강 상태였던 후반전, 맨유 1-0 승리...스탬포드 브릿지 징크스 깼다
맨유는 하파엘이 왼쪽 무릎을 다치면서 후반 5분에 교체했고 나니가 첫번째 조커로 나섰습니다. 그래서 발렌시아가 오른쪽 풀백으로 내려갔으며, 박지성-나니가 측면 공격을 담당했습니다. 발렌시아가 전반전에 수비적인 역할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오른쪽 풀백으로 전환하는데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발렌시아는 포지션 전환 이전까지 패스 정확도 54%(13/24개)에 그치면서 공격력이 좋지 못했던 단점이 있었습니다. 맨유는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나니를 투입하여 공격력 강화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맨유 박스 쪽에서 후반 9분과 12분에 각각 드록바-보싱와의 공격을 끊으며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했죠.
후반 초반에는 첼시가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0-1 열세를 회복해야 하는 입장이었죠. 포백을 앞쪽으로 끌어당겨 3선의 간격을 좁히고, 그 과정에서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특히 드록바는 후방에서 연결되는 패스를 따내며 슈팅을 시도하는데 여념 없었습니다.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박스 좌우 공간 사이를 파고들었죠. 하지만 토레스가 후반 초반에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 첼시의 불안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토레스가 전반전에 도맡았던 역할을 드록바가 후반 초반에 대신 소화했지만, 다른 공격수의 역량이 살아나지 않는 파괴력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드록바가 전반전에 부진했다면 후반에는 토레스 였습니다. 두 선수 공존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 중반에는 경기가 소강 상태에 빠졌습니다. 첼시가 여러차례 공격을 시도했으나 맨유 수비에게 끊기는 장면들이 여러차례 노출됐죠. 그런데 맨유는 공격쪽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지 못했습니다. 수비에 비중을 두는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상대 진영에서 추가골을 노리기가 어려웠죠. 후반 22분에는 나니-발렌시아 사이에서 역습을 시도했지만 박스쪽으로 향하는 볼 배급이 부드럽지 못했습니다. 루니-에르난데스가 상대 수비수들과 맞서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정 선수가 역습을 주도하면서 받아주는 움직임이 없었죠. 4-4-2의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첼시는 후반 24분 지르코프-드록바를 빼고 말루다-아넬카를 교체 투입했습니다. 공격력이 살아나지 못하면서 새로운 공격 옵션을 투입하는 변화를 택했습니다. 그러면서 4-3-3으로 전환했습니다. 말루다-토레스-아넬카로 짜인 스리톱이 형성되었고, 하미레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까지 커버하면서 활동 폭을 넓혔죠. 그 과정에서는 보싱와가 적극적인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를 시도하며 측면 공격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맨유는 선수들의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면서 첼시에게 수비 뒷 공간을 내주는 허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루니가 2선으로 내려오면서 미드필더 협력 수비에 힘을 보탰지만, 1-0 이후 추가골을 넣을 공격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맨유는 후반 32분 에르난데스를 벤치로 부르고 베르바토프를 투입했습니다. 첼시도 같은 시간에 보싱와를 빼고 미켈을 마지막 조커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에시엔이 오른쪽 풀백으로 전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윙어나 다름 없었습니다. 맨유는 4-2-3-1로 변경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원톱, 루니-박지성-나니가 2선 미드필더를 형성하여 수비를 강화했습니다. 후반 37분에는 박지성이 맨유 진영에서 미켈이 소유한 볼을 빼앗아 첼시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긱스-캐릭이 수비쪽에 전념했고, 루니-박지성-나니가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면서 맨유의 수비가 후반 막판에 다시 강해졌죠. 맨유는 1-0 리드를 지킨 끝에 8강 1차전에서 승리하여 스탬포드 브릿지 징크스 극복에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