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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2014년 밝게했던 기술 축구의 정착

 

한국 축구 대표팀의 지난 25일 온두라스전 4-0 대승이 의미있는 이유는 조광래호의 '기술 축구'가 정착했음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온두라스전 흐름을 놓고 보면 아시안컵에 비해 공격의 퀄리티가 높아졌습니다. 아직 미흡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자신감을 축적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깨우치고 정진하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세계를 빛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주창했던 '한국 축구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말입니다.

물론 온두라스의 경기력이 예상보다 미흡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수비가 좋은 팀이라고 자부했던 팀이 맞는지 의심 될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북중미 강호' 온두라스가 무기력했던 이유는 스스로의 자멸이 아닌, 그들의 수비가 상대하기에는 한국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벅찼습니다. 홈에서 진행된 경기임을 감안해도, 한국은 온두라스전에서 승리하는 기질을 익히며 그동안 내제되었던 불안 요소를 뿌리치고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아시안컵 인도전 4-0 승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온두라스전 4-0 승리였습니다.
 
한국 축구의 공격, 이렇게 진화했다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아시안컵 이전까지의 조광래호 행보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이 조광래호가 주문하는 기술 축구에 적응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한국 축구가 오래전부터 선이 굵고 롱볼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허정무호에서 테크니션들을 두루 활용하면서 차츰 완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롱볼은 계속 되었죠. 조광래 감독은 상대 수비 공간을 가르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하면서 풍부한 전술 이해도 및 움직임이 많은 선수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 소집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조광래 감독의 스타일을 따라가기에는 힘이 벅찬 상태였습니다.

그 흐름은 실전에서 그대로 반영 됐습니다. 조광래호는 지난해 8월 나이지리아전에서 기분좋게 승리했지만 9월 이란전-10월 일본전에서는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리면서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일본전은 0-0으로 비겼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 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기술 축구는 취지가 좋았지만 그때까지는 선수들의 유연한 전술 대처가 부족했죠.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라도 하루 아침에 드리블 패턴을 바꿀수는 없는 법입니다.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감독이 주문하는 전술을 몸과 마음에 맞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조광래호는 앞날을 위한 성장통에 직면했던 셈입니다.

조광래 감독의 기술 축구는 아시안컵에서 긍정적 희망을 얻었습니다. 비록 우승에 실패했지만 앞날의 비전 및 청사진, 조광래 감독의 축구 철학이 한국의 경기력에 그대로 반영된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선수들이 5주 동안 호흡을 맞추면서 조광래 감독 축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박주영 부상 공백을 4-6-0 체제의 제로톱(기본 전형은 4-2-3-1)으로 이겨내면서 미드필더들의 공격 작업이 활발해지고 전방 침투가 용이한 이점을 얻게 됐습니다. 터키전까지 포함하면 지동원-구자철-이용래-홍정호-남태희 같은 뉴 페이스들이 등장하면서 스쿼드의 내실이 탄탄해졌죠. 그러면서 조광래호의 볼 배급은 짧고 낮은 패스가 중심을 잡으며 상대 수비 공간을 노렸습니다.

그런 조광래호의 공격력 진화는 지난해 10월 일본전, 지난 25일 온두라스전 4-1-4-1을 통해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일본전에서는 조용형을 수비형 미드필더, 신형민-윤빛가람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형은 상대에게 수비 뒷 공간을 내주는 불안함에 직면했습니다. 전반전에는 상대 플레이메이커 혼다 봉쇄에 성공했지만 후반들어 집중력이 무너지면서 혼다에게 역습 기회를 내주는 문제점이 있었죠. 신형민-윤빛가람 라인은 일본과의 중원 싸움에서 밀렸습니다. 신형민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중장거리 패스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지만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어색했습니다. 윤빛가람은 아기자기한 볼 배급 속에서도 빠른 원터치 패스가 익숙하지 못한 단점이 있죠. 선수 개개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반면 온두라스전에서는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 이용래-김정우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습니다. 특히 이용래-김정우의 부지런한 기동력 및 패스 과정에서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팀 공격의 지속성을 키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후방 및 측면에서 누군가 볼을 잡으면 대각선쪽으로 움직임을 벌리거나 온두라스 수비 배후 공간을 선점하며 볼을 터치했고, 그 과정에서 볼 소유 시간을 줄이고 빠른 패스를 시도하면서 상대 수비 밸런스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이청용이 문전과 측면을 활발히 넘나들고, 박주영이 최전방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벗어나게 했고, 기성용까지 공격에 여유를 찾으면서 전방 공간에서 패스를 시도했습니다. 4-1-4-1 전술의 좋은 예 였습니다.

물론 일본과 온두라스는 팀 색깔 및 선수 개인의 레벨이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조광래호의 4-1-4-1이 6개월 사이에 변화된 것은 분명합니다. 선수들이 공간을 폭 넓게 커버하고 침투 패스를 줄기차게 시도하면서 상대 압박을 분쇄하는 힘을 기르게 됐죠. 앞으로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및 최종예선에서 상대팀 밀집 수비에 대처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임을 상기하면 온두라스전은 단순한 평가전이 아닙니다. 어느 팀이든, 공격 축구를 펼치는 팀은 상대팀의 견고한 압박을 받기 쉽습니다.

또한 4-1-4-1은 아시안컵에서 활용했던 4-2-3-1에 비해 실질적 공격 숫자가 늘어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4-1-4-1이 기본적으로 5명이라면 4-2-3-1은 4명입니다.(수비형 미드필더 및 풀백을 제외하면) 상대 진영에서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및 풀백까지 공격에 가담하여 상대의 수비 부담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격 옵션들이 공간을 넓게 움직이고, 짧은 패스를 활발히 연결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격 루트를 확보하여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집니다. 이용래-김정우로 짜인 공격형 미드필더 조합은 기본적인 수비 센스가 있는 선수들로서,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여 상대 역습 의지를 끊을 수 있는 이점까지 겸비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이후에 걱정했던 문제는 박지성 은퇴 공백 입니다. 터키전에서는 구자철이 측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온두라스전에서는 김보경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박지성의 후계자임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런 김보경 맹활약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조광래호가 박지성 공백을 팀 전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박지성이 팀 공격을 이끄는 지휘자였다면 김보경은 동료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팀 플레이에 주력했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용래-김정우가 중심이 된 것도 아니고 박주영-이청용-기성용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로가 팀으로 똘똘 뭉치면서 여러 형태의 패스를 주고 받으며 기술 축구의 정착을 주도한 셈이죠. 아시안컵에서 제로톱이 빛났다면 온두라스전은 4-1-4-1 효과가 컸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앞으로 3년 3개월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조광래호는 아시안컵을 기점으로 터키전 및 온두라스전에서 긍정적인 희망을 쌓으며 앞날의 밝은 미래를 알렸습니다. 물론 온두라스전에서는 경기 내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수비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수비가 강해야 공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수비는 고질적 불안 요소 였습니다. 하지만 온두라스전은 공격력 진화에 무게감을 둘 수 있습니다. 앞으로 수비 불안까지 해결하면, 한국 축구는 2014년에 브라질 땅에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지 모릅니다. 조광래 감독의 선택과 집중이 거듭된 성공을 거둔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