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잉글랜드)가 마르세유(프랑스) 원정에서 득점없이 비겼습니다. 박지성-발렌시아-안데르손-퍼디난드 부상 및 긱스가 체력 안배 차원에서 마르세유 원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경기력 약화의 원인이 됐습니다. 특히 후반전에 이르러 페이스가 떨어진 공격력이 문제였습니다.
맨유는 24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스타드 벨로드롬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마르세유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최전방 공격수로서 극심하게 부진했던 여파가 맨유의 득점력 저하와 직결됐죠. 폴 스콜스 이외에는 허리에서 공격을 풀어줄 적임자가 없었던 문제점, 퍼거슨 감독의 소극적인 조커 기용이 맨유 공격력을 가라앉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다음달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릴 16강 2차전에서 마르세유를 이겨야 8강 진출을 자신하게 됐습니다.
맨유, 마르세유 원정에서 기선제압 성공
맨유는 마르세유 원정에서 4-2-3-1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비디치-스몰링-오셰이가 수비수, 캐릭-깁슨이 수비형 미드필더, 루니-플래쳐-나니가 2선 미드필더, 베르바토프가 원톱으로 출전했습니다. 최근에 박지성 공백을 메웠던 긱스가 체력 안배 차원에서 마르세유 원정에 임하지 않으며 루니가 왼쪽 윙어를 맡았습니다. 마르세유는 4-3-3으로 맞섰습니다. 망단다가 골키퍼, 에인세-디아와라-음비아-판니가 수비수, 카보레-시세가 수비형 미드필더, 루초가 공격형 미드필더, 아예우-브란당-레미가 공격수로 기용됐습니다. 기존에는 미드필더진을 역삼각형으로 세웠지만 이날은 세이루의 선발 제외로 삼각형 전환했습니다.
특히 맨유의 경기 초반 우세가 두드러졌습니다. 루니-나니가 좌우 측면에서 상대 수비진을 파고드는 움직임을 줄기차게 시도하면서 카보레-시세의 활동 반경이 후방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는 마르세유 선수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공간 침투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마르세유는 카보레-시세, 루초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고 아예우-레미 같은 좌우 윙 포워드들의 볼 터치가 적어지면서 좀처럼 공격이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루초가 경기 초반부터 발이 묶인 것이 마르세유에게 치명타가 됐죠. 맨유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렇다고 맨유가 무리하게 공격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수비시에는 루니-나니가 위치를 후방쪽으로 깊게 잡으면서 팀의 압박에 참여했죠. 엄연히 마르세유 원정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격을 펼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료 선수들과 협력 수비를 펼치면서 마르세유 선수들의 활동 반경을 앞쪽으로 끌어올리고, 상대의 패스 줄기를 차단하면 역습으로 노리겠다는 심산입니다. 경기 초반에는 카보레-시세의 위치를 후방쪽으로 몰아 넣었는데, 전술적으로 상대를 지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전반 15분 이후에는 공격쪽에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페이스를 조절했죠. 전반 막판이나 후반전에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뜻입니다.
[사진=마르세유 원정에서 부진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C) manutd.com]
베르바토프-브란당 부진, 전반전 0-0 원인
맨유는 전반 25분 패스 성공 횟수에서 98-101(개)로 근소하게 밀렸습니다. 그럼에도 경기는 맨유가 주도했습니다. 마르세유보다 양질의 패스가 많다는 뜻입니다. 마르세유가 후방 및 미드필더진에서 볼을 돌리며 점유율 회복에 주력했다면 맨유는 상대 선수들을 몰아 붙이거나 침투 목적의 패스들이 줄기차게 연결됐죠. 다만, 전반 19분 캐릭-20분 루니의 패스 미스가 상대에게 공격권을 내주는 장면은 옥의 티 였습니다. 그나마 마르세유의 빌드업이 느렸기 때문에 미드필더진의 압박이 수월했죠. 루초가 전반 30분까지 패스 성공율 61%(11/18개)에 불과한 것은 맨유의 수비력이 견고했음을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두 팀의 한 가지 공통점은 최전방 공격수가 서로 봉쇄 당했습니다. 베르바토프-브란당은 팀내 필드 플레이어들 중에서 가장 적은 패스 횟수를 기록했습니다. 두 선수가 전반 33분까지 각각 패스 8개(6개 성공), 4개(3개 성공)에 그칠 정도로 연계 플레이가 적었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판 데르 사르가 11개의 패스(9개 성공)를 연결한 것을 미루어보면 베르바토프의 팀 공헌은 미미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디이와라-음비아에게 막히면서 상대 압박에 취약한 문제점을 또 다시 되풀이했고, 브란당은 평균 8.25분 당 1개의 패스를 연결하는 '존재감 제로'의 극치를 달렸습니다. 두 팀의 0-0 접전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죠.
베르바토프는 마르세유전에서 압박에 취약한 약점을 극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순발력이 느린 약점 때문에 상대 수비수의 마크를 뿌리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죠. 상대가 빈 공간을 허용할 때 골문을 파고드는 타입에 속합니다. 그동안 강팀 경기에서 부진했던 원인이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베르바토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5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으며 지난 시즌 6경기에서도 골이 없었습니다. 맨유 데뷔 시즌이었던 2008/09시즌에는 9경기 4골(셀틱-올보르전 2골씩)을 기록했지만 지난 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에 약했습니다. 유럽 제패를 노리는 맨유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죠.
마르세유 입장에서는 강팀과 맞설 수 있는 공격 옵션의 부재가 아쉬웠습니다. 브란당의 부진은 아예루-루초-레미가 맨유 선수들의 압박을 뚫지 못하면서 어쩔 수 없이 최전방에서 고립된 원인이 없지 않았죠. 문제는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하거나 2선과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떨어졌죠. 그렇다고 지냑의 결장이 치명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여름 마르세유 이적 후 실망스런 공격력을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에서 꾸준히 파괴력을 끌어올렸던 발부에나가 부상 후유증으로 맨유전 선발에서 제외된 것이 마르세유 공격력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마르세유 입장에서는 후반전에 발부에나를 슈퍼 서브로 활용할 여지를 두게 됐죠.
맨유, 소극적 조커 기용이 아쉬웠던 0-0 무승부
후반전에 나선 맨유는 좌우 측면을 흔드는 공격 패턴으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후반 4분 오셰이의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 5분 에브라의 오버래핑을 통해서 말입니다. 베르바토프가 마르세유 수비에 고립된 현 시점에서는 좌우 풀백의 공격적인 활약이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오셰이가 후반 7분 패스 미스를 범하면서 마르세유에게 공격권을 내준 것은 맨유에게 아쉬웠습니다. 그 실수가 자칫 실점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시점부터 마르세유 미드필더들이 맨유 진영쪽으로 올라가는 움직임이 많았던 것은, 맨유가 후반 초반 경기 주도권에서 밀렸다는 느낌이 짙었습니다.
맨유의 마르세유전 공격력이 매끄럽지 못했던 또 하나의 원인은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줄 적임자가 없었습니다. 특히 플래쳐의 잦은 패스 미스가 아쉬웠습니다. 후반 10분까지 패스 정확도 57%(20/35개)에 그쳤기 때문이죠. 맨유의 공격이 원활하게 풀리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또한 캐릭-깁슨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도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패싱력이 떨어졌죠. 패스 정확도 70% 이상을 기록했지만 대부분의 패스가 상대 수비에게 읽히기 쉬운 형태였습니다. 스콜스가 선발에서 제외된 여파가 나타났지만 그 이전에는 지난해 여름 및 올해 1월 이적시장에서 걸출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중앙 미드필더를 영입하지 않았던 것이 근본적 문제였습니다.
그런 맨유는 후반전에 이르러 마르세유에게 끌려다니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공격 전개가 원활하게 풀리지 않았던 약점이 마르세유 선수들의 전진 배치로 이어졌죠. 그 과정에서 마르세유는 패스 정확도를 키우면서 맨유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패스들을 연이어 성공했습니다. 후반 15분에는 아예우가 아크 왼쪽에서 브란당의 슈팅을 유도하는 크로스를 띄우기도 했죠. 그래서 맨유는 루니-나니의 측면 공격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베르바토프의 고립이 가중되는 약점에 직면했습니다. 후반 22분 역습 상황에서는 나니-베르바토프 사이의 패스가 정확하게 공급되지 못하면서 슈팅 기회를 놓쳤죠. 그나마 스몰링이 상대 공격을 건실하게 차단하면서 실점 위기를 넘겼습니다.
맨유는 후반 27분 깁슨을 빼고 스콜스를 교체 투입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의 효율성을 키우면서 골을 노리겠다는 의도죠. 포메이션은 4-2-3-1에서 4-4-2로 전환했습니다. 루니-베르바토프 투톱 체제를 꾸리면서 플래쳐를 오른쪽 윙어로 배치했죠. 베르바토프의 부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루니의 최전방 이동이 불가피 했습니다. 그런 베르바토프가 2선으로 내려와 연계 플레이에 참여했고 스콜스가 짧은 스루패스로 공격의 무게감을 잡으면서 맨유가 다시 주도권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마르세유 선수들이 수비쪽에 깊게 포진하면서 맨유가 박스안에서의 공격 전개가 여전히 매끄럽게 풀리지 않았던 단점이 여전했죠.
반면 마르세유는 후반 33분 발부에나가 레미를 대신해서 조커로 기용했습니다. 발부에나의 투입은 맨유전 승리를 노리겠다는 의도였죠. 그 이전 이었던 후반 24분 시세를 빼고 세이루를 교체 투입하면서 미드필더진을 다시 역삼각형으로 배치했기 때문에 경기 막판 득점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의도와 달리, 경기 막판에 주도권을 잡은 팀은 맨유였습니다. 스콜스가 투입하면서 본래의 폼을 되찾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조커 기용에 소극적 이었습니다. 교체 카드 1장만 썼죠. 후반 중반 무렵에 베르바토프를 빼고 에르난데스를 교체 투입했다면 경기 양상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결국 맨유는 마르세유 원정을 0-0 무승부로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