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는 최근 프리미어리그 5경기에서 3승1무1패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일 선덜랜드전까지 3승을 기록했다면 7일 리버풀전에서 0-1 패배, 15일 풀럼전에서 0-0 무승부를 올렸죠. 특히 최근 두 경기에서는 페르난도 토레스를 선발 기용했지만 오히려 무득점에 빠졌습니다. 토레스 영입을 위해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 1위에 해당하는 5000만 파운드(약 901억원)의 거금을 리버풀을 보냈지만, 아직까지는 토레스 효과가 팀 전력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격력 저하에 빠졌죠.
공교롭게도 토레스가 첼시 소속으로 상대했던 리버풀-풀럼은 수비쪽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토레스가 빠른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면서 골을 겨냥하는 체질임을 상대팀들이 읽었죠. 그래서 리버풀은 토레스에게 뒷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3백이라는 맞춤형 전술을 구사했고(13일 위건전에서 4백으로 복귀), 풀럼은 수비 라인 전체를 골문 깊숙한 곳으로 내렸습니다. 결국 토레스는 두 경기에서 부진에 빠지며 5000만 파운드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팀의 새로운 분위기 및 전술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지만 문제는 첼시의 사정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첼시-토레스, 무엇이 문제인가?
첼시는 지난 두 경기에서 승점 3점 획득에 실패하면서 리그 5위(13승6무7패, 승점 45)로 추락했습니다. 4위 토트넘(13승8무5패, 승점 47)과의 승점 경쟁에서 밀렸죠.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6승9무1패, 승점 57)와의 승점은 12점으로 벌어지면서 리그 2연패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대해야 하는 눈치입니다. 첼시가 아직까지 그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없었고, 토레스는 오래전부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염원했던 공격수였기 때문에 서로 유럽 제패를 벼르는 공통된 목표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안첼로티 감독은 첼시에서의 롱런을 보장받기 위해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숙명이죠.
하지만 리버풀-풀럼전 경기력으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챔피언스리그 및 프리미어리그에 걸쳐서, 앞으로 첼시와 상대하는 팀들은 '토레스에게 뒷 공간을 내주지 않으면 승산 있다'는 노하우를 터득했습니다.(풀럼전에서는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현장에서 경기를 봤습니다.) 토레스가 골을 노리는 패턴이 항상 일정했기 때문이죠. 서두에 언급을 했지만,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지 못하면 최전방에서 고립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며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장점을 겸비했지만 수적 열세에 밀리면 어림 없습니다. 올 시즌 부상 후유증과 더불어 고전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리버풀-풀럼전 부진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리버풀은 토레스가 불과 보름전까지 뛰었던 팀이기 때문에 그의 특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풀럼은 지난달 27일 리버풀전에서 토레스 봉쇄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풀럼은 한겔란트-휴즈로 짜인 센터백이 토레스를 꽁꽁 따라 붙으면서 적절하게 커버 플레이를 펼쳤고, 살시도-버드 같은 좌우 풀백까지 존 디펜스에 참여하면서 토레스의 발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시드웰-머피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은 토레스쪽으로 향하는 리버풀-첼시의 종패스 길목을 차단했습니다. 또한 견고한 수비 조직력을 강점으로 삼고 있죠.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리버풀-첼시가 풀럼전에서 토레스를 원톱으로 두면서 똑같은 문제점에 직면했습니다. 토레스가 상대 수비에게 받는 압박을 덜어줄 공격수 내지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었습니다. 친정팀 리버풀의 간판 골잡이로 맹활약을 펼쳤던 것은 제라드-카위트-베나윤(현 첼시) 같은 박스 안에서 공격력을 키울 수 있는 옵션과의 공존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카위트는 2008/09시즌 까지의 폼을 의미합니다. 점점 이타적인 윙어로 변화했죠.) 하지만 리버풀은 당시 풀럼전에서 막시-메이렐레스-카위트가 4-2-3-1의 2선 미드필더를 맡았으나 상대의 밀착 방어를 넘지 못하면서 토레스와의 간격을 좁히는데 실패했습니다. 결국 토레스는 최전방을 외롭게 지켰죠.
그리고 첼시는 풀럼전에서 4-3-2-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말루다-아넬카가 기존의 4-3-3과 다르게 토레스 뒷쪽 공간에서 윙 포워드 역할을 맡는 체제로 말입니다. 하지만 말루다-아넬카의 활동 반경은 측면 또는 2선쪽에 치우쳤습니다. 램퍼드-에시엔-하미레스로 짜인 미드필더진이 종으로 넓게 움직이지 못하면서(횡방향의 움직임이 많았던) 윙 포워드들의 활동 폭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토레스가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죠. 리버풀이 풀럼전에서 고전했던 흐름을 첼시가 똑같이 짊어졌습니다. 결국, 4-3-2-1은 토레스의 역량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포메이션이 아니었습니다. 말루다-아넬카와 공존하는 체제에서 말입니다.
풀럼전에서는 윙 포워드들의 경기력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아넬카는 돌파 위주의 경기를 펼쳤지만 볼을 끌었으며, 말루다는 볼 터치가 많았던 것에 비해 특유의 돌파력으로 상대 수비 사이를 흔들지 못하면서 연계 플레이에 실패했습니다. 서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박스 안에서 토레스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레스가 최전방에서 볼을 받으면 동료 선수에게 패스할 공간이 열리지 않으면서 외롭게 경기를 풀었죠. 풀럼전 무득점 무승부를 토레스 한 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첼시는 풀럼전을 통해서 드록바를 윙 포워드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투톱 형태에서 쉐도우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드록바가 토레스의 압박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토레스도 문제가 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만들어준 골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죠. 전반 35분에는 하프라인 왼쪽 부근에서 전방에서 램퍼드의 킬러 패스를 받으려고 했지만 상대 견제를 뿌리치지 못하면서 볼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전반 44분에는 아크 왼쪽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며 오른발 슈팅을 날렸지만 피니시가 약했습니다. 전반 46분에는 루이스가 후방에서 찔러준 롱볼을 전방에서 받으며 상대 수비진을 파고들었지만 볼 트래핑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차례 골 기회가 무산되었던 장면들이 있었지만, 골을 포착하는 상황에서 볼 컨트롤 및 볼 키핑이 좋지 못했으며 몸놀림이 안좋았습니다. 그래서 슈팅에 힘이 실리지 못했죠.
공격수는 골이 본분이며 그것을 물고 늘어지려는 맹수같은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토레스가 리버풀에서 꾸준히 많은 골을 넣었던 이유는 항상 골 갈증에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 시즌 부상 후유증 및 상대 수비에게 읽히면서 골 결정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나타냈고 그 여파는 첼시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풀럼전에서의 무거운 활약은 리버풀전 부진이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첼시가 토레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전술적 방안도 중요하지만, 토레스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5000만 파운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첼시와 토레스는 서로 궁합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시즌 중에 이적이 성사되었기 때문에 호흡이 안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며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첼시는 급합니다. 앞으로 프리미어리그 12경기 남았으며, 챔피언스리그는 토너먼트에 접어들면서 매 경기가 중요합니다. 토레스가 첼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첼시의 올 시즌 행보가 좋지 않았음을 상기하면 토레스 부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더 이상 실험이 통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토레스의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첼시는 토레스 맹활약 없이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못합니다.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이 달려있는 프리미어리그 4위 확정 또한 같은 맥락이죠.
p.s : 토레스는 올 시즌 상반기에 리버풀 소속으로서 유로파리그에 참가했습니다. UEFA에서는 같은 시즌에 전 소속팀에서 유로파리그를 뛴 선수 1명은 현 소속팀에서 챔피언스리그 엔트리에 포함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토레스는 올 시즌 후반기에 첼시 선수로서 챔피언스리그에 뛸 수 있습니다. 반면, 루이스는 올 시즌 벤피카 소속으로서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을 뛰었기 때문에, 앞으로 잔여 경기에서 첼시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 뛰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