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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조광래호 새로운 고민, 박주영 공존 문제

 

한국의 터키전 경기력은 아시안컵에 비해 아쉬움에 남습니다. 터키의 레벨은 아시아 팀들과 엄연히 레벨이 다르지만,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한달 넘게 호흡을 맞추었고 그 대회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터키전을 치렀습니다. 단순한 기대치를 놓고 보면 아시안컵 보다 더 좋은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영표 대표팀 은퇴 공백을 처음으로 실감했고, 터키의 압박이 제법 견고하고 강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끼리의 호흡이 안맞았습니다.

특히 터키전 선발 라인업은 아시안컵과 차이가 있습니다. 홍철-홍정호가 좌우 풀백을 맡았으며, 공격 옵션에는 아시안컵에 출전하지 않았던 박주영-남태희가 선발 출전했습니다. 홍철-홍정호는 이정수-황재원과 존 디펜스를 유지하면서 상대 공격을 틀어막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지만(그럼에도 홍철의 소극적인 공격력이 아쉬웠던), 박주영-남태희의 등장은 기존 공격 옵션들과 손발이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터키 진영에서 지속적인 연계 플레이가 전개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죠. 그나마 남태희가 조광래호에 부족한 '과감함'을 채웠다는 것이 긍정적입니다.

박주영, 지동원-구자철과 포지션이 겹친다

터키전에서 아쉬운 것은 박주영 입니다. 2009년 9월 5일 호주전 이후 1년 5개월 동안 A매치에서 필드 골이 없었으며,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또는 왼쪽 윙어로서 대표팀의 패스 플레이를 주도하거나 상대 수비 뒷 공간을 겨냥하는 공격력이 세밀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박주영의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을 터키전 무득점의 원인으로 꼽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구자철의 왼쪽 윙어 변신이 실패작 입니다. 그래서 전반 20분 박주영이 왼쪽 윙어로 자리를 옮기면서 구자철이 본래의 위치였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으며 원톱 지동원을 보조했죠. 그러나 박주영은 측면에서 기민한 공격력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박주영은 후반전에 원톱으로 전환하면서 전반전에 조용했던 경기력이 살아났습니다. 후반전 몇몇 장면에서는 2선으로 내려오면서 동료 선수들과 스위칭을 펼쳤지만, 원톱을 맡으면서 터키 수비진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움직임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터키 수비진이 박주영쪽을 의식하는 견제 자세를 취했고 상대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이 밑쪽으로 쏠리면서 한국의 패스 줄기가 곧게 뻗기 시작했습니다. 박주영은 측면보다는 중앙에 더 어울리는 공격 옵션이라는 것이 터키전을 통해 입증됐죠.

문제는 박주영의 포지션이 지동원-구자철과 겹칩니다. 원톱으로는 지동원,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구자철과 중복되죠. 지동원-구자철은 아시안컵에서 한국 공격진을 이끈 선수들이기 때문에 터키전 선발 출전은 당연한 시나리오 였습니다. 박주영은 아시안컵에서 무릎 부상으로 불참했지만 그 이전에는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 였죠. 하지만 조광래호는 터키전을 통해서 박주영과 지동원-구자철의 공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포지션 전환이 불가피하거나 주전에서 제외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박주영-지동원-구자철은 왼쪽 윙어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박주영은 아드보카트호-FC서울-AS모나코에서 왼쪽 윙어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지만 끝내 포지션 혼란에 빠지면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화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중앙에서의 경기력을 선호하는 타입이죠. 구자철도 박주영과 더불어 철저한 중앙 옵션 입니다. 원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며 아시안컵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지동원은 지난해 전남 4-2-3-1에서 김명중과 왼쪽 윙어 및 공격형 미드필더를 번갈아가며 꾸준히 평균 이상의 경기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원 포지션은 공격수이며 그 역할에 많은 재능과 잠재력을 겸비했습니다. 또한 조광래호 제로톱 역할에 있어 중요한 선수죠.

하지만 터키전에서는 어느 누구도 왼쪽 윙어로서 만족스런 경기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구자철이 일찌감치 자리를 몾잡으면서 박주영이 대체했고, 후반전에는 지동원-최성국이 스위칭을 통해서 왼쪽 공격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죠. 박지성 공백이 부각되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왼쪽 윙어를 언급한 것은, 박주영이 지동원-구자철과의 포지션 중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터키전처럼 구자철이 될 수도 있죠. 그러나 공존 문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홍명보호 같았으면 공존 문제는 쉽게 풀릴지 모릅니다. 박주영을 원톱, 지동원을 왼쪽 윙어로 기용하면서 구자철을 수비형 또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배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동원이 왼쪽 윙어에 자리잡기에는 빠른 기동력 및 넓어지는 활동 폭을 요구 받습니다. 홍명보호는 조광래호처럼 제로톱을 쓰지 않기 때문에 지동원이 전형적인 윙어가 되죠. 그러나 지동원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4위전 이란전을 제외하면 왼쪽 윙어로서 에너지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그동안 잦은 경기 출전 때문에 혹사로 고생했던 원인이 있었지만, 그런 체력적인 어려움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동원은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공격을 풀어가는 만능적 기질에 강합니다. 그런데 최전방에 세우면 제로톱에 의해 왼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 특징이 박주영의 장점을 키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주영은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는 타겟맨이 있을 때 2선에서 공격력을 끌어올리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청소년 대표팀 시절 신영록-김승용이 3-4-1-2의 투톱 공격수로서(당시 김승용은 공격수) 상대 수비 밸런스를 흔들어주면서 1의 위치에 있던 박주영에게 골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물론 박주영은 AS 모나코의 원톱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했지만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풀어가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고립이 잦은 편이죠.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때 측면에 배치 되었지만 중앙에서의 역량에 너무 익숙해 졌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은 조광래호에서 중앙을 맡아야 합니다. 문제는 구자철과 포지션이 겹치죠. 대표팀에 마땅한 왼쪽 측면 옵션이 발굴되기 이전까지는 두 선수 중에 한 명은 왼쪽 측면을 맡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누군가 주전에서 제외될 수 있죠. 그러나 박주영은 대표팀의 주장이며 구자철은 아시안컵 득점왕 출신의 미들라이커 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제로톱에 의한 스위칭으로 공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술이 성공하려면 박주영-구자철을 비롯한 공격 옵션들의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요구합니다. 비효율적으로 움직임이 늘어나는 전술적 역효과를 나타냈죠. 과연 박주영은 조광래호에서 지동원-구자철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인지 조광래호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