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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질 위기' 호지슨, 토레스와 상생하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10경기 중에 7경기가 현지 폭설로 연기됐습니다. '라이벌'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비롯해서, 아스날vs스토크 시티, 블랙풀vs토트넘, 버밍엄vs뉴캐슬, 위건vs애스턴 빌라, 웨스트 브로미치vs울버햄턴, 그리고 리버풀vs풀럼 경기까지 취소됐습니다. 최근 잉글랜드 현지에 폭설에 이어 한파가 몰아치면서 그라운드가 얼어붙는 바람에 정상적인 경기 개최가 힘들게 됐죠.

14개 팀은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연기에 의해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게 되었지만 앞으로의 체력 저하가 커지는 단점을 안게 됐습니다. 지난 1월에 잇따른 경기 취소 사례가 있었음을 상기하면 향후 경기 취소가 빈번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서 18라운드 연기가 반갑지 않게 느껴질 사람을 꼽으라면, 로이 호지슨 리버풀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풀럼과의 홈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지만 기상 악화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리그 9위' 리버풀에서 경질 위기에 놓인 호지슨 감독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을지 모릅니다.

리버풀은 풀럼전에서 승리 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풀럼이 올 시즌 원정 경기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5무3패/홈에서는 2승5무2패) 호지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시즌 원정 경기에서도 1승7무11패(홈에서 11승3무5패)로 고전했습니다. 원정에서 극심하게 부진했던 것을 홈에서 만회하는 양상이 두드러졌죠. 공교롭게도 리버풀은 올 시즌 홈 경기에서 강했습니다. 원정에서 1승2무6패에 허덕였지만 홈에서는 5승2무1패 였습니다. 호지슨 감독은 홈 경기에 강했고 원정 경기에서 약했는데, 풀럼은 호지슨 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원정 경기에 약했습니다. 그리고 호지슨 감독은 풀럼을 잘 알고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은 풀럼전 연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합니다.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 및 유로파리그 출전을 병행하면서 결코 체력이 좋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박싱데이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설 수 있는 이점을 얻었습니다. 27일 블랙풀, 30일 울버햄턴전에 이어 내년 1월 2일에는 볼턴과 경기하게 됩니다. 세 팀 모두 전력이 취약하기 때문에(볼턴은 1월 2일이면 이청용이 없기 때문에) 리버풀이 승리를 노려볼 만 합니다. 3일에 한 번씩 경기를 치르는 일정이 부담스럽지만, 18라운드에서 휴식을 취한 것이 단기적인 컨디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호지슨 감독과 달리, 페르난도 토레스는 18라운드 휴식을 반갑게 여길 입장입니다. 박싱데이에서 가벼운 몸 놀림을 되찾을 이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타구니 부상에 시달리면서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고, 남아공 월드컵 출전에 따른 휴식 부족까지 겹쳤던 여파가 지금의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스탯으로 직결됩니다. 올 시즌 리그 16경기에서 5골을 기록했지만, 2007/08시즌 33경기 24골, 2008/09시즌 24경기 14골, 2009/10시즌 22경기 18골에 비하면 부족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골 부진까지 겹쳤습니다. 지난달 10일 위건전 이후 4경기 연속 골이 없습니다.

그런 토레스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호지슨 감독의 전술입니다. 토레스가 상대 문전에서 발이 묶인 상태에서 어렵게 공격을 풀어가는 경우가 잦습니다. 아무리 토레스가 원래의 폼을 되찾더라도 지금의 팀 전술에서는 꾸준히 골을 생산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호지슨 감독이 토레스를 최전방에 고정시키는 형태의 전술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토레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은고그-카위트-바벌 같은 또 다른 공격 자원들도 같은 형태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리안 바벌은 최근 투톱 공격수로 전환했습니다.) 토레스가 침체에 빠졌기 보다는, 호지슨 감독이 토레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정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의 토레스라면 호지슨 감독 성향에 어울렸을지 모릅니다. 최전방에 머물려는 단점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빠른 스피드 및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타겟맨이었지만 그 특징을 살리기에는 활동 폭이 좁았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리버풀에서 해소됐습니다. '전임 사령탑'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현 인터 밀란)에 의해 박스 바깥쪽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여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도하면서 후방 공격 옵션들의 문전 침투가 간결해졌죠. 가장 대표격이 스티븐 제라드 였습니다. 토레스와 제라드가 공격진에서 하나가 되는 '제토라인'은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 조합 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레스는 공간을 넓게 움직이는 특성에 힘입어 자신의 빠른 스피드를 마음껏 내뿜을 이점을 얻었습니다. 특히 리버풀의 역습 상황일 때는 빠르게 문전으로 침투하여 결정적인 슈팅을 노리거나 골을 엮어내는 장면을 연출했죠. 상대 수비가 불안해지면 토레스의 클래스가 어김없이 빛을 발했습니다. 지금의 리버풀이 성적 부진에서 벗어나려면 토레스의 이러한 장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의 토레스 활용은 지금까지 실패작입니다. 토레스를 문전쪽에 묶으면서 후방에서 날아오는 롱볼을 따내거나, 골문에서의 1대1 기회를 노리는 상황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레스는 골을 노리거나 상대 수비 밸런스를 무너뜨릴 공간적 이점에 제약을 받으면서 자신의 이점을 맘껏 활용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토레스 고립으로 이어졌죠. 리버풀이 호지슨 감독 부임 이후 수비력을 강화하면서 선 굵은 축구를 펼치며 공격진의 한 방을 기대하게 됐습니다. 물론 토레스는 골을 잘 넣는 공격수지만, 자신의 스피드를 내뿜을 기회가 그리 호락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득점력까지 영향을 끼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호지슨 감독은 지난 12일 뉴캐슬전에서 토레스-은고그 투톱의 활동량을 늘리는 전술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은고그가 후반 4분에 골을 터뜨린 것이 리버풀의 성과로 볼 수 있겠지만 이날 경기에서 1-3으로 패했습니다. 제이미 케러거 부상에 따른 수비 불안이 한 몫을 했지만, 이번에도 토레스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리버풀 미드필더와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토레스의 활동량이 불가피하게 많아졌기 때문이죠. 리버풀이 캐러거 부상 및 마르틴 스크르텔의 경기력 저하로 수비 라인을 밑으로 내렸고 미드필더들까지 그 흐름을 따랐지만, 오히려 토레스에게 활동 부담을 떠안으면서 공수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 그 결과는 집중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뉴캐슬에게 세 골이나 헌납했습니다.

호지슨 감독은 고집스러운 성격의 지도자로 유명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전술을 잘 안바꾸며 특히 풀럼 시절에는 선발 스쿼드를 잘 바꾸지 않았습니다. 주축 선수들을 철저히 믿고 있기 때문에 후반전 교체 타이밍이 늦는 약점이 있죠. 이러한 호지슨 감독의 성향은 리버풀이 성적 부진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토레스 활용 실패 또한 마찬가지죠. 뉴캐슬전에서는 토레스 활용에 대한 변화가 있었지만(결과가 좋지 않음에도) 이제는 토레스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리버풀이 성적 부진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호지슨 감독에게 18라운드 풀럼전 연기는 토레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이점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호지슨 감독의 롱런 여부는 토레스 활용 효과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호지슨 감독이 토레스와 상생해야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