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캡틴'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아스날전 활약상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전반 41분 골문쪽에서 솟구쳐 올라오면서 헤딩 결승골을 터뜨린 것을 비롯,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펼치면서 맨유의 1-0 승리 및 프리미어리그 선두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지난달 7일 울버햄턴전(2골)에 이어 올 시즌 두 번째로 결승골을 터뜨렸고 시즌 6호골(리그 4호골)까지 작렬했습니다.
이대로의 흐름이라면, 박지성은 자신의 목표였던 시즌 10골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프리미어리그가 아직 스케줄의 절반을 소화하지 못했고 FA컵까지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박지성이 골에 도전할 경기들은 여전히 풍부합니다. 내년 1월 한국의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잠시 카타르로 떠날 예정이지만(선수 본인이 아시안컵 출전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10골 고지를 밟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미 시즌 6호골을 기록하면서 '수비형 윙어'를 넘어 '미들라이커'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죠.
박지성, 나니와 함께 팀 플레이로 호날두 공백 메웠다
박지성은 아스날전 골에 힘입어 맨유 득점 랭킹 공동 3위(18경기 6골)로 도약했습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18경기 12골) 하비에르 에르난데스(19경기 8골)에 이어 루이스 나니(22경기 6골)와 함께 맨유의 대표적인 골게터 중에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죠. 네 명 중에서 최근에 득점력이 무르익은 선수가 박지성 입니다. 시즌 초반 부진을 이겨내고 꾸준히 6골을 기록했기 때문이죠. 베르바토프는 10경기 연속 무득점에 이은 블랙번전 5골, 그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롤러 코스터에 빠졌고 에르난데스는 최근 선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것이 흠입니다. 나니는 지난달 27일 블랙번전에서 1골을 기록했지만 그 이전에 6경기 연속 골이 없었죠.(다만, 9도움을 기록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의 득점력 발전이 눈에 띄는 이유는 맨유가 두 가지의 약점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루니-베르바토프 콤비의 부족한 점을 박지성을 비롯한 다른 공격 옵션들이 틈틈이 메웠습니다. 루니는 올 시즌 11경기에 출전했지만 아직까지 필드골이 없었고(페널티킥 2골), 베르바토프는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약팀에 강하고, 강팀에 약한' 행보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아스날전 결장도 같은 맥락이죠. '솔샤르의 재림' 에르난데스가 맨유 공격의 뉴페이스로 떠올랐고, 나니가 득점력에서 힘을 실어줬고, '골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박지성이 드디어 골에 눈을 떴습니다. 맨유가 루니-베르바토프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둘째는 '전 맨유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현 레알 마드리드) 공백을 박지성-나니의 팀 플레이로 메웠습니다. 맨유가 2008/09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달성했으나 2009/10시즌 첼시에게 우승을 허용했던 결정적 원인은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여파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카를로스 테베스의 맨체스터 시티 이적과 맞물렸지만, 호날두의 존재는 매우 독보적 이었습니다. 특히 2008/09시즌에는 호날두를 칼링컵까지 포함해서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시킬 정도로 에이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죠. 그래서 2009/10시즌에 호날두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호날두의 대체자로 볼 수 있습니다. 맨유가 호날두와 작별하면서 위건의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던 발렌시아를 영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발렌시아는 2009/10시즌 49경기 7골 1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위건에서의 세 시즌 동안 기록했던 76경기 7골 9도움의 공격 포인트를 넘어서는 파괴력 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호날두와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의 대체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클래식 윙어'로서 한정된 공간에서 돌파를 시도하거나 크로스를 띄우는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고질적으로 왼발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상대 수비에 읽히기 쉬운 단점이 있죠.
반면, 박지성-나니는 호날두와 더불어 역동적인 성향을 과시하는 윙어입니다. 맨유가 공격을 펼칠 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것을 비롯해서, 빠른 볼 처리에 의한 패스를 날리며 예측불허의 공격을 전개합니다. 세부적 관점에서는 세 선수의 성향이 모두 다르지만, 맨유의 전술적 관점에서는 공격 분위기를 맨유쪽으로 끌어올리는 기질이 다분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지성-나니는 맨유의 호날두 공백을 팀 플레이로 메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우선, 나니는 과거에 비해 개인 플레이를 줄이고 동료 선수의 공격력을 뒷받침하는 이타적인 기질을 키우면서 '넥스트 호날두'로 거듭났습니다. 최근에는 폼이 떨어진 아쉬움이 있지만, 순간순간 마다 날카로운 볼 배급으로 강렬한 임펙트를 불어넣는 클래스를 내뿜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의 공격력이 올 시즌에 이르러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빈 공간 창출을 기반으로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쳤지만 올 시즌에는 빠른 볼 터치에 의한 볼 배급으로 맨유 공격을 주도하는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종패스 및 짧은 패스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면 올 시즌에는 모든 공격 패턴을 자유자재로 즐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가는 프리롤 형태의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공략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조급하게 공격을 풀어간다는 지적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맨유가 '박지성 있음에' 우세한 경기 흐름을 가져가는 긍정적 이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난 8일 발렌시아전에서 안데르손의 동점골 과정이 대표적이며, 이번 아스날전에서는 박지성이 맨유의 역습을 주도했습니다.
박지성이 올 시즌 6골을 터뜨린 것도 이러한 공격력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패스 및 경기 완급 조절에 의해 맨유의 공격력이 좌우되면서 과감한 경기력을 기르는 돌파구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골 욕심까지 더해지면서 그동안 맨유에서 숨겨졌던 득점 실력을 뽐냈습니다. 특히 아스날전에서는 박스 안에서 골 냄새를 맡으면서 헤딩슛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마치 골잡이를 보는 것 처럼 골을 낚아채는 기질이 넘쳐 흘렀습니다. 더 이상 골이 부족한 선수가 아님을, 지금의 골 행진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표적 장면 이었습니다.
또한 박지성의 골이 늘어나게 된 배경은 웨인 루니의 부진과 관련이 깊습니다. 루니는 지난 시즌 맨유의 골잡이로서 많은 골을 터뜨렸지만 올 시즌에는 이타적인 활약에 치우쳤습니다. 부상 후유증-스캔들-진로 문제 등 여러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경기력이 떨어졌죠. 지난 3월 31일 바이에른 뮌헨전 이후 8개월 넘게 필드 골이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유는 지난 시즌처럼 루니에 의존하기 보다는 미드필더진과 공격진의 철저한 팀 플레이를 통해 박지성-나니의 득점력을 끌어 올렸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국내 축구팬들에게 '박날두(박지성+호날두)'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으며 자신의 컨셉을 성공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맨유의 미들라이커로 거듭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