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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칼링컵 패배, 0-4 졸전 원인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칼링컵에서 웨스트햄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시즌 첫 패배를 당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꼴찌팀 웨스트햄에게 0-4로 패한 것을 비롯해서 경기 내용까지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1위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0-4 졸전이 아쉽습니다.

맨유는 1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업튼 파크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칼링컵 8강 웨스트햄 원정에서 0-4로 대패하여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전반 22분과 37분에 조너선 스펙터에게 골을 허용했으며 후반 11분과 21분에는 칼튼 콜에게 추가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경기 내내 불안한 수비력과 잦은 패스 미스를 일관하면서 웨스트햄의 강력한 저항에 흔들렸던 것이 대량 실점의 빌미로 작용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3시즌 연속 칼링컵 우승이 무산되었으며 올 시즌 첫 패배로 21경기 연속 무패행진(13승8무, 커뮤니티 실드 포함)이 종료 됐습니다. 아울러 박지성은 웨스트햄전에 결장했습니다.

동기부여 부족-수비 조직력 불안이 패인이었던 웨스트햄전

맨유의 웨스트햄전 졸전의 대표적인 원인은 동기부여 부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최근 5시즌 동안 세번이나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특히 두 시즌 연속 우승했기 때문에 올 시즌 칼링컵에 대한 우승 의욕이 크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웨스트햄전에서는 루니-베르바토프-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스콜스-박지성 같은 주요 멤버들이 결장했습니다. 박지성 같은 경우에는 웨스트햄전 후보 명단에 있었지만, 한국의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스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런던(웨스트햄 연고지) 일정을 경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맨유가 웨스트햄에게 0-4로 패했다고 해서 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맨유는 지난 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칼링컵에 우승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같은 중요한 대회 우승을 위해 사력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칼링컵 패배로 인해서 앞날 일정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됐습니다. 2007/08시즌 프리미어리그-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제패했을 때는 칼링컵 32강에서 코벤트리 시티(당시 2부리그 소속)에게 홈에서 0-2로 패했습니다. 맨유가 지난달 28일 블랙번전 7-1 대승에 힘입어 첼시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1위에 등극한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그런 맨유는 웨스트햄전에서 4-4-2를 구사했습니다. 쿠쉬착이 골키퍼, 파비우-에반스-스몰링-오셰이가 수비수, 긱스-안데르손-플래쳐-베베가 미드필더, 에르난데스-오베르탕이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특히 수비진 및 골키퍼는 백업 멤버로 짜였고 중원에는 '슬럼프에 빠진' 안데르손이 선발에 모습을 내밀었습니다. 과연 이 선수들이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최소화하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지가 웨스트햄전의 관건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맨유의 수비 조직력은 매우 부실했습니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급되는 볼 배급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웨스트햄에게 수없이 커팅당했고, 안데르손-플래쳐가 허리 싸움에서 이렇다할 우세를 점하지 못하면서 수비진의 부담이 컸습니다. 특히 에반스-스몰링 센터백 조합의 부진이 아쉬웠습니다. 그동안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원인도 있지만, 상대 공격 옵션의 움직임을 번번이 놓치거나 불안한 위치선정을 일관하며 팀의 경기력 저하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빈나의 빠른 움직임을 놓치면서 뒷쪽과 옆쪽 공간을 계속 내주더니 스펙터-칼튼 콜의 문전 침투에 뚫리고 말았습니다.

특히 전반 16분 오빈나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처리된 상황에서는 에반스-스몰링의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오빈나의 슈팅 상황에서 두 선수의 위치가 가운데 쪽으로 쏠렸고 견제 타이밍까지 늦어졌기 때문이죠. 스펙터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골이 무효되었지만 오히려 그 장면이 웨스트햄에게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22분 스펙터가 맨유 중앙 수비 불안을 틈타 결승골을 넣었죠. 문전으로 쇄도할 때 오빈나의 왼쪽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 맨유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스몰링이 오빈나를 밀착 마크하지 못하면서 크로스를 허용했고, 에반스는 스펙터의 골 넣는 움직임을 놓치면서 상황 판단력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전반 37분 스펙터의 추가골은 맨유의 수비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정판 이었습니다. 베베가 스펙터의 중앙 드리블 돌파를 놓치면서 오빈나가 문전에서 볼을 받아 슈팅을 노렸고, 파비우가 오빈나의 슈팅을 저지했지만 그 볼이 근처에 있던 스펙터에게 향하면서 두번째 골을 내줬습니다. 특히 에반스-스몰링은 실점을 막기 위해 커버 플레이를 펼치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베베가 스펙터에게 뚫리면서 순식간에 역습 상황을 맞이 했지만, 파비우가 스펙터의 문전 접근을 막아내고 에반스-스몰링이 오빈나의 슈팅을 막아내는데 분주했다면 추가골은 내주지 않았을 것이며 맨유가 0-1로 전반전을 마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스펙터에게 골을 내주기 직전에는 두 선수의 위치가 가운데쪽에 쏠렸습니다. 위치 선정이 좋지 못하면서 커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후반 11분 칼튼 콜의 골 장면은 파비우-에반스의 수비력이 아쉬웠습니다. 맨유 미드필더진이 오빈나의 왼쪽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내줬던 것이 칼튼 콜의 문전 쇄도에 이은 헤딩슛으로 이어졌죠. 파비우가 오빈나에게 크로스 공간을 너무 넓게 벌려줬습니다. 파비우의 실수는 맨유가 갑작스럽게 역습을 허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에반스의 문전 수비 대처가 옥에 티 였습니다. 칼튼 콜이 문전쪽으로 달려드는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크로스만 물끄러미 바라봤던 것이 실점의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스몰링이 헤딩슛을 시도하는 타이밍에서 마크를 시도했지만, 이미 스몰링은 에반스의 앞쪽 위치에 자리잡은 상황 이었습니다. 에반스가 실전 감각 저하로 시야가 좁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후반 19분 파비우를 빼고 하파엘을 교체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하파엘도 오빈나의 거침없는 공격력을 막지 못했습니다. 21분 오른쪽 측면에서 오빈나에게 다리 가랑이 사이로 논스톱 패스를 내줬던 것이 칼튼 콜의 추가골로 이어졌습니다. 축구 선수가 다리 가랑이 사이로 공격을 허용한 것은 대인마크 동작이 문제 있음을 뜻합니다. '쌍둥이 형제'인 파비우-하파엘이 오빈나 한 명에 쩔쩔맸던 셈이죠. 그리고 논스톱 패스 이후에는 에반스가 칼튼 콜의 빠른 터닝 동작을 놓치고 여지없이 골을 허용했습니다. 결국, 에반스는 맨유의 4실점 상황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에반스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008/09시즌 비디치와 함께 찰떡궁합 호흡을 과시하며 튼튼한 수비력을 내뿜었던 포스가 지금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퍼디난드의 부상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맨유 수비진을 빛낼 미래로 꼽혔지만 그 기대는 현실과 정반대 였습니다. 에반스의 폼은 지난 시즌부터 내림세가 시작되었고 올 시즌에도 그 여파는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웨스트햄전 부진은 팀 내에서의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됐습니다.
 
문제는 스몰링도 아직까지 맨유에서 이렇다할 두각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에반스와 더불어 웨스트햄전 졸전을 키운 것이 찝찝합니다. '부상 잦은' 퍼디난드 대체자가 절실한 맨유로서는 에반스-스몰링의 부진이 고민입니다. 결국, 맨유는 웨스트햄전에서 비디치-퍼디난드의 커다란 빈 자리를 실감하며 0-4로 대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