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성남 일화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기세를 K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서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했던 어려운 경기 속에서도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는 강팀의 클래스를 과시했죠.
성남은 21일 오후 3시 울산 문수 경기장에서 벌어진 2010 쏘나타 K리그 챔피언십 6강 플레이오프에서 홈 팀 울산을 3-1로 제압했습니다. 전반 23분 고창현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4분 뒤 사샤 오그네노브스키가 페널티킥 동점골을 넣었으며 후반 21분 제난 라돈치치가 역전골을 작렬했습니다. 후반 25분에는 마우리시오 몰리나가 추가골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굳히는데 일조했습니다. 성남은 올 시즌 울산전 2승1무, 2005년 11월 6일 부터 시작된 최근 울산 원정 8경기 연속 무패(4승4무)의 우세한 흐름을 6강에서 이어갔습니다.
6강 고지를 점령한 성남은 오는 24일 저녁 7시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전북과 준플레이오프를 치릅니다. 이 경기 승리팀은 2011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짓기 때문에 치열한 접전이 예상됩니다. 올 시즌 아시아를 제패했던 성남이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성남vs울산 희비를 가른 김치곤 파울 및 부상
성남은 울산 원정에서 4-2-3-1을 구사했습니다. 정성룡이 골키퍼, 전광진-사샤-조병국-김태윤이 포백, 김철호-김성환이 더블 볼란치, 몰리나-조동건-최성국이 2선 미드필더, 라돈치치가 원톱으로 뛰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왼쪽 풀백으로 뛰었던 김태윤이 오른쪽으로 옮겼고, 그 자리에 속했던 김성환이 중원쪽으로 올라오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전광진이 왼쪽 풀백으로 내려오는 변형 전술을 활용했습니다. 반면, 울산은 4-3-3으로 맞섰습니다. 김영광이 골키퍼, 김동진-김치곤-유경렬-이용이 수비수, 오장은-고슬기-에스티벤이 미드필더, 오르티고사-김신욱-고창현이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사실, 성남의 경기 초반은 매우 불안했습니다. 8일 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을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던 엄청난 에너지 소모, 얆은 선수층에 따른 주전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 때문에 소극적인 공격을 일관하는 움츠려든 모습을 보였죠. 성남의 강점이었던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무뎌지면서 고창현-오르티고사의 빠른 침투에 의해 뒷 공간을 뚫리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라돈치치-조동건-몰리나-최성국 같은 주요 공격수들이 울산 선수들에게 집중적인 견제를 당했죠. 전반 20분 점유율에서 39-61(%)의 열세를 나타낼 정도로 상대팀의 페이스에 끌려다녔고, 같은 시간대에 8-3(개)의 압도적인 파울 횟수를 기록하며 상대 공격을 끊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전반 23분에는 성남에게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고창현에게 선제골을 내줬기 때문이죠. 체력적인 어려움 속에서 상대에게 골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성남의 향후 경기 운영이 어려워지는 결정타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고창현의 선제골은 성남의 압박이 얼마만큼 느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르티고사가 오른쪽 측면에서 전광진의 견제를 뿌리치고 대각선 돌파를 감행하며 문전으로 쇄도했던 고창현에게 패스를 연결했고, 고창현은 김태윤-조병국 사이를 정면으로 파고들며 왼발 강슛에 의한 골을 넣었습니다. 경기 몰입 부족에 따른 압박 약화로 고창현-오르티고사의 침투를 허용했던 성남 수비력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성남 수비보다 더 불안했던 존재는 울산 수비 였습니다. 김치곤이 전반 26분 울산 박스 안에서 최성국 유니폼 뒷쪽을 손으로 잡아당겨 넘어뜨린것이 페널티킥 파울로 이어졌죠. 그래서 사샤가 1분 뒤에 페널티킥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김치곤의 파울이 없었다면 울산은 경기 내내 1-0 리드 속에서 매끄러운 경기 운영을 펼쳤을지 모릅니다. 고창현-오르티고사의 호흡이 무르익은 상황이었고, 오장은-고슬기-에스티벤이 성남과의 허리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울산의 원활한 패스 공급을 주도했고, 수비 밸런스 또한 탄탄했습니다. 하지만 울산은 김치곤의 뜻하지 않은 실수로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이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김치곤은 전반 34분 울산 진영에서 동료 선수에게 횡패스를 연결한 것이 라돈치치에게 볼을 빼앗겨 역습을 허용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페널티킥 허용을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위축된 경기를 펼쳤던 것이 치명적 실수로 이어졌죠. 다행히 역전골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지만 이 때부터 울산 미드필더들이 수비 부담을 의식하며 우왕좌왕하는 불안한 경기 운영을 일관했습니다. 경기 내내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수비적인 역할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위치선정이 불안하거나 포백과의 간격을 좁히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김치곤의 실수는 울산의 수비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정타로 작용했죠.
울산의 또 다른 악재는 김치곤 부상 이었습니다. 전반 42분 라돈치치와의 헤딩 경합 도중에 코가 함몰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 출전이 어려웠죠. 그래서 1분 뒤에 이재성이 교체 투입하여 무난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미 울산의 수비 밸런스가 깨진 상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김동진이 성남 공격에 흔들리는 불안한 수비력을 나타냈죠. 울산 미드필더들이 불안해진 수비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진영쪽으로 내려오고 고창현-오르티고사의 빠른 발을 통한 역습을 노리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공격 과정에서 패스 미스가 반복되면서 성남이 경기 주도권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성남의 공격 전개가 매끄러웠다고 볼 수 없지만, 울산은 김신욱이 사샤에게 봉쇄당하면서 공격에 이렇다할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결국, 성남의 역전승은 울산의 자멸이 컸습니다. 김치곤의 페널티킥 헌납을 시작으로 몇차례 실수와 악재까지 따르더니 후반 21분 라돈치치의 결승골 및 25분 몰리나의 추가골은 울산 센터백 유경렬 실수에서 비롯된 장면들 입니다. 유경렬이 성남의 롱패스를 헤딩으로 걷어내려던 볼이 앞쪽에 있던 몰리나에게 걸렸고, 몰리나-최성국 패스에 이은 라돈치치의 왼발 아웃사이드킥으로 울산 골망이 출렁였습니다. 25분 몰리나의 추가골 과정에서는 유경렬이 라돈치치와의 공중볼 경합 도중에 볼을 빼앗겼죠. 그래서 라돈치치의 횡패스에 이은 몰리나의 골로 이어졌습니다. 성남이 완벽한 공격 전개 속에서 골을 넣지 못했지만, 울산의 실수를 틈타 골 장면을 연출한 것은 상대팀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울산은 반격할 힘을 잃은 끝에 패했죠.
성남의 울산전 경기 운영이 결코 매끄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얇은 선수층에 따른 체력 저하, 장학영-홍철 공백에서 비롯된 왼쪽 풀백 자원 부재 및 전광진의 부진, 최성국 공격력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조동건의 기복 때문에 어려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울산이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에서 상대 실수에 조급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골을 노렸던 것이 세 골을 기록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선제골 허용 이후 수비 밸런스가 안정을 되찾으며 김신욱 봉쇄애 성공했고 고창현-오르티고사의 발을 묶었던 것이 공격 옵션들의 수비 부담을 줄이는 이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강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축구의 진리를 성남이 입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