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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EPL 5위' 볼턴의 빅4 진입은 불가능하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 활약중인 볼턴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5위(4승7무2패, 승점 19)를 기록중입니다. 4위 맨체스터 시티(6승4무3패, 승점 22, 이하 맨시티)를 승점 3점 차이로 추격할 정도로 괄목할 오름세를 나타냈습니다. 지난 시즌 중반까지 강등권에 머물렀음을 상기하면 성적 향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욱이, 볼턴의 5위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역대 최고 성적입니다.

이제는 볼턴의 4위 진입 여부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 시나리오는 충분히 이룰 수 있습니다. 맨시티가 최근 리그 6경기에서 1승2무3패 부진의 늪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대로의 흐름이라면 유로파리그 병행에 따른 체력 부담과 맞물려 4위권 안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볼턴은 중상위권에 속하다가 5위에 진입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적이 기대됩니다. 토트넘이 지난 시즌 리그 4위로 마치면서 빅4 진입에 성공했던 사례를 볼턴이 올 시즌에 되풀이할지 주목됩니다. 일시적인 4위 진입은 가능하지만, 4위와 무게감이 다른 빅4 진입 이라면 차원이 다릅니다. 빅4는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강팀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볼턴의 빅4 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볼턴의 선전은 놀라운 일, 하지만...

우선, 볼턴의 5위 진입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평준화를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강팀들이 강팀답지 않은 침체된 행보를 나타냈으나 볼턴을 비롯한 몇몇 약팀들이 "약진 앞으로!"를 외치며 경기력의 퀄리티를 높였습니다. '프리미어리그가 하향 평준화 되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약팀들의 선전으로 프리미어리그가 신선해졌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볼턴이 있습니다. 한때 '롱볼 축구'의 이름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재미없는 경기를 펼치기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볼턴 축구가 재미있다'는 축구팬들의 반응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입니다.

볼턴의 선전 원동력은 '체질 개선'에 있었습니다. 지난 1월 코일 감독을 영입하면서 롱볼 축구를 버리고 패스 축구에 눈을 떴습니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볼을 띄우는데 급급했던 롱볼을 청산하고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경기를 다채롭게 풀어가는 역량을 키웠습니다. 올 시즌 초반까지 몇몇 선수들이 롱볼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단점을 노출했지만, 이제는 철저한 패스 워크를 중심으로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며 '공격 축구'가 성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즌 후반 역습 패턴의 공격으로 재미를 봤다면 이제는 경기 내내 공격적인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지난 6일 토트넘전에서는 스코어(4-2 볼턴 승)를 비롯 경기 내용까지 우세를 점하며 '볼턴 축구가 달라졌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 시켰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 봐야 할 키워드는 압박 입니다. 지난 시즌 중반까지는 수비진의 느슨한 대인마크 및 밸런스 붕괴 때문에 불필요한 실점을 범했던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코일 감독 영입 이후 미드필더진과 포백의 거리를 좁히고 압박의 세기를 강화하며 수비 밸런스를 향상시켰고 포백의 단점을 커버하는 이점을 얻으며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올 시즌에는 홀든이 볼턴의 붙박이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아 리그 태클 1위(74개)를 기록할 정도로 상대 선수를 부지런히 압박했고, 테일러(페트로프)-무암바-이청용까지 적극적인 수비 가담에 의해 상대 공격의 맥을 끊었습니다. 데이비스-엘만더 투톱은 높이 및 몸싸움에서 상대 수비를 제압하며 전방 압박에 강한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탄탄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특징 또한 빼 놓을 수 없죠.

이러한 볼턴의 경기 스타일은 앞으로 계속 될 것입니다. 코일 감독의 전술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으며, 선수들은 그 전술을 충분히 이해하며 경기력을 최대화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욱 조직적이고 짜임새 넘치는 축구를 통해 내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또한 데이비스-엘만더 투톱의 폼이 지난 시즌보다 무르익었고, 홀든의 건재함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청용이 얼리 크로스-킬 패스 같은 볼 배급의 퀄리티가 지난 시즌보다 부쩍 높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공격력을 발휘할거라 기대됩니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흐름만을 놓고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볼턴의 오름세가 박싱데이를 넘어 시즌 막판까지 계속 될 지는 의문입니다. 약팀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수층이 약하기 때문이죠. 일부 주축 선수가 징계로 결장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매 경기에서 베스트 일레븐을 그대로 기용하고 있습니다. 주전 선수와의 기량 차이가 크지 않은 백업 자원이 부족합니다. 백업 윙어 테일러를 제외하면 주전으로서 손색없는 활약을 펼칠 옵션이 허전합니다. 그나마 테일러는 페트로프의 부상 회복을 틈타 최근에 주전 왼쪽 윙어로 모습을 내밀었으며 지난 시즌까지 볼턴의 주전 이었습니다. 이청용이 휴식 부족 속에서도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는 원인 또한 볼턴의 열악한 선수층 때문입니다.

프리미어리그는 9개월 동안 치러지는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직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선수층이 약한 팀은 언젠가 발목이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시즌 중반까지 선전하더라도 막판이 되면 체력 저하에 허덕이며 경기력이 주춤합니다. 일부 선수의 부상 문제까지 겹치면 더욱 골치 아픕니다. 그 예로, 애스턴 빌라는 2008/09시즌 이었던 지난해 2월 리그 3위로 진입하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그 이후 유로파리그 토너먼트 일정과 병행하며 체력 저하에 시달린 끝에 6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선수층 약화에 따른 주전 선수 의존증이 아쉬운 결과로 이어졌죠. 볼턴이 그 전례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아직까지 그런 문제가 없는 이유는 칼링컵 32강 조기 탈락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볼턴의 가장 큰 고비는 내년 1월 입니다. '에이스' 이청용이 아시안컵 차출을 위해 카타르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청용이 언제까지 카타르에 있을지는 한국 대표팀 성적에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한국은 반 세기 동안 아시아 제패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 우승에 매우 목말라 있습니다. 국내 축구계 입장에서는 아시안컵 우승이 중요하지만, 볼턴 입장에서는 이청용의 차출을 반갑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안컵이 2010/11시즌 경기 일정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볼턴이 이청용 차출을 임의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안컵은 대륙 대항전이기 때문에 소속팀이 해당 선수의 대표팀 차출에 반드시 응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처럼 말입니다.

만약 볼턴이 이청용 차출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우지 못하면 순위가 떨어지는 결정타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청용이 있음에 공격진이 골을 터뜨릴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청용 백업' 모레노가 리그에서 꾸준한 출전 감각을 기르지 못했고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된 선수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1월이 넘으면 그동안 시즌을 치르면서 누적된 피로가 쌓이기 때문에 주전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청용은 기존의 휴식 부족에 아시안컵 차출에 따른 피로까지 겹치기 때문에 시즌 후반 꾸준한 맹활약을 펼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볼턴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문제가 구단의 재정 적자 입니다. 볼턴은 지난 시즌 3540만 파운드(약 64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그동안 누적된 적자 액수는 9300만 파운드(약 1697억원) 입니다. 그래서 케이힐-엘만더가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볼턴의 적자 극복을 위해 팀을 옮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케이힐은 볼턴 잔류를 원하고 있지만 팀의 재정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엘만더는 내년 여름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볼턴이 이적료를 받아 다른 팀으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1월 이적시장입니다. 한때 리버풀 이적설에 직면했던 이청용도 두 선수와 같은 범주에 포함 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볼턴의 빅4 진입은 불가능합니다. 일시적으로 4위 안에 포함 될 지 몰라도 그 순위를 지키기에는 발목 잡힐 요소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볼턴이 지금의 매력적인 경기력을 계속 이어가려면 앞으로 겪게 될 고비를 슬기롭게 이겨야하는데 약팀의 클래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볼턴의 목표는 유로파리그 진출입니다. 하지만 볼턴이 좋지 못한 선수층 속에서도 5위에 진입한 그 자체는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볼턴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에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공들였던 저력 만큼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볼턴의 향후 경기력을 지탱할 희망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