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오는 12일 라이벌 일본전 승리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남아공 월드컵 동반 16강에 진출하면서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 그 이유죠. 올해 마지막 A매치 경기인데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대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조성하기 위해서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일본에게 패하면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은' 조광래호의 향후 행보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라이벌전 패배 그 자체가 후유증이 쉽게 아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일본이 지난 8일 아르헨티나전에서 1-0 승리를 거둔 것은, 조광래호에게 긍정과 부정으로 상반된 양면적인 현상을 안겨줍니다. 전자의 관점에서는 일본의 현재 전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아르헨티나를 이겼다고 할지라도 전력이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조광래호 입장에서 전력 탐색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관점에서는 한국의 일본전 승리 과정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합니다. 일본은 몇달전 한국에게 무기력하게 패했던 그때의 일본이 아니며, 아르헨티나전 승리를 통해 어떠한 상대와 물러서지 않는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한국전 3연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월과 5월에 안방에서 한국에게 1-3, 0-2로 무릎을 꿇으며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한국전에서 승리를 벼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한국전에서 또 다시 패하면 아르헨티나전 승리 분위기가 한 순간에 차가워지게 됩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번 한국전은 아시안컵을 준비하면서 올해 두 번의 패배를 복수하는 계기로 마련할 것입니다.
사실, 일본이 올해 한국에게 두 번이나 패했을 때는 전임 감독인 오카다 체제가 경기력 저하로 어려움에 시달렸던 시기였습니다. 점유율과 패스를 기반으로 삼는 아기자기한 축구가 정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피지컬 부족 및 킬러 부재에 시달렸습니다.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패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2월에는 오카다 다케시 전 감독이 경질 위기에 몰렸고, 3개월 뒤에는 일본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3전 3패 분위기가 고조됐죠. 당시 한국의 일본전 승리 과정은 깔끔하고 통쾌했지만, 이제는 '침체된 일본'이 아닌 '강해진 일본'과 겨루게 됐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한국이 일본전 3연승을 거두려면 나를 알고 남을 알겠다는 마음으로 상대팀의 전력을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일본은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미드필더진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에 힘입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 강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기존의 패스 축구에 기동력과 짜임새 넘치는 조직력까지 가미되면서 공격 전개가 다채로워졌다는 평가입니다. 한때 한국 축구 여론에서는 '일본 축구는 압박이 없다'고 꼬집었지만, 이제는 일본이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 공격을 봉쇄하면서 유리한 경기 흐름을 노리고 있다는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하지만 일본도 엄연히 약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경기력이 좋아졌어도 피지컬 부족이 문제입니다. 한국이 몸싸움과 제공권 장악능력, 그리고 빠른 순발력을 충분히 살리며 일본의 기세를 무너뜨리면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은 순발력 및 압박에 강한 면모를 보였고 상대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승리욕으로 무장됐습니다. 최근에는 테크니션들이 팀 전력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조광래 감독이 기술 축구를 선호하기 때문에, 한국 축구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점이 유기적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결국, 두 팀의 대결은 미드필더진의 압박 싸움에서 경기 내용 및 결과가 좌우 될 것입니다. 어느 팀이 허리 싸움에서 상대를 무너뜨리고 기선 제압에 성공할지, 90분 동안 경기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내리며 허리의 밸런스를 강화하고 철저한 압박 플레이를 펼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고, 일본은 전통적으로 미드필더가 강한 이점을 활용하며 한국의 중원을 공략하겠다는 각오입니다. 또한 한국은 압박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며, 일본은 압박 강화를 위해 기존의 아기자기한 공격 패턴에 대한 비중을 줄였습니다.
중원의 수비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하는 스포츠이며 허리에서의 유기적인 공격 전개가 생명입니다. 상대의 압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빠른 볼 터치에 의한 간결한 공격 전개 및 스피드를 앞세운 돌파력으로 맞서야 합니다. 조광래호에는 기술력이 뛰어난 공격 옵션들이 즐비하며 상대 압박을 무너뜨릴 수 있는 돌파력을 자랑하는 선수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 선수들이 서로 하나 된 호흡을 앞세워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키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노릴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 김정우의 공백입니다. 박지성의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가 김정우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우는 남아공 월드컵 이후 군사훈련을 받았으나 경기 감각이 저하되면서 원래의 폼을 찾는데 실패한 끝에 일본전 엔트리에 뽑히지 못했습니다. 박지성과 더불어 공격과 수비 능력이 골고루 출중한 특징을 지닌 것이 자신의 강점이죠. 박지성은 적극적인 수비 가담에 따른 압박을 비롯해서 한국 공격의 젖줄 역할을 도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의 파트너는 궂은 역할을 도맡으면서 종패스에 강한 선수가 필요합니다. 박지성 파트너로 누구를 내세울지가 일본전의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대결은 '중원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원에서 누가 강력한 압박을 펼치고 상대 압박을 무너뜨리는 공격 패턴으로 골을 넣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 될 것입니다. 한국이 일본을 제압하려면 기존의 강점이었던 강력한 압박을 발휘해야 합니다. 과연 한국이 일본과의 압박 대결에서 우세를 점하고 경기에서 승리하여 국민들에게 기분 좋은 승전보를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