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토마스 로시츠키(30)는 유럽 축구의 대표적인 '유리몸' 선수로 유명합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상이 너무 많기 때문에, 쉽게 깨지는 특성을 지닌 유리가 자신의 몸과 비견되는 굴욕을 당했죠. 특히 2007년에 3번의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고 2008년 1월에도 같은 부위를 다쳤지만, 수술이 아닌 재활을 택하면서 오히려 부상이 더 악화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여기에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무려 1년 8개월 동안 결장했습니다. 날카롭고 창의적인 볼 배급으로 아스날 공격의 숨통을 틔웠던 그의 화려한 종적은 이대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로시츠키는 현재 아스날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부상 불운을 이겨내고 그라운드에서 멋진 공격력을 내뿜고 있죠.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라는 자신의 별명처럼 섬세한 공격 전개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콤비 플레이를 앞세워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비록 과거의 부상 여파 때문에 풀타임을 소화하기 힘든 체력적인 한계를 안고 있지만, 그라운드에서 볼을 잡으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하여 환성을 자아내는 아우라가 여전합니다. 재기에 성공한 로시츠키를 보면서, 한때 K리그를 평정했던 어느 플레이메이커를 떠올리게 됩니다. '시리우스' 이관우(32, 수원)가 그 주인공 입니다.
'부상 악몽' 이관우, 더 이상 주저앉지 않기를
어쩌면 일부 축구팬들은 이관우를 잊었을지 모릅니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지속적인 경기 출전에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 K리그에서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과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지난해 왼쪽 무릎 연골 부상으로 3경기 출전에 그쳤고 올해는 5경기에 모습을 내밀었지만, 지난 6월 6일 전북전 이후 왼쪽 무릎 연골에 또 이상이 생기면서 4개월째 결장중입니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수술을 받아 재활을 받고 있으며 사실상 시즌 아웃이 확정 됐습니다.
이관우는 한때 K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떨쳤지만 저평가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질긴 부상 이력을 비롯하여, 대표팀과 유독 운이 없었기 때문에 '국내용'으로 비아냥 받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1997년 U-20 월드컵 부진 및 브라질전 3-10 대패 악몽 때문에 국민적인 질타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양대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선수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문제는 그 교통사고가 2010년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부상 악몽에 시달리는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흔히 이관우하면 떠오르는 약점은 체력입니다. 90분 풀타임 동안 왕성한 활동량을 기반으로 그라운드를 활발히 질주하기에는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친정팀 대전 소속이었던 2001년 8월 전남전에서 '자신의 절친이었던' 김남일의 거친 태클에 의해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던 아픔이 뼈아픈 이유입니다. 1년간의 재활 끝에 팀에 복귀했지만 90분 보다는 45분, 또는 조커 출전에 익숙해지면서 풀타임을 뛰는 능력을 마음껏 기르지 못했습니다. 또한 수없이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상대를 거칠게 따라붙기에는 부상 재발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대표팀에서 수비력 부족 논란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 이후 이관우는 경기 출전 시간 및 수비 가담을 늘리고 몸싸움에 자신감을 키우면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힘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거의 매 경기마다 구김살없는 활약을 펼치면서 K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떨치게 됐습니다. 스쿼드가 약하기로 유명한 대전의 어려운 사정을 뒤로했던 쾌거였기 때문에 값진 일입니다. 그래서 2006년 여름 수원으로 이적하여 빅 클럽에서 자신의 화려한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롱볼 축구 및 측면에 의존하는 공격 패턴 때문에 성적 부진에 시달렸던 수원이 패스 축구에 눈을 뜨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하지만 이관우는 수원에서도 부상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007년 8월 전남전에서 강민수의 심한 파울에 의해 뇌진탕을 당하자마자 병원에 실려가고 말았습니다. 4년 전 A매치 오만전에서 순간적인 기억상실증에 의한 뇌진탕 증세를 일으켰던 악몽을 또 다시 경험한 순간 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때의 뇌진탕이후 좀처럼 번뜩이는 공격력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8년 3월 성남전에서 날카로운 킥력으로 직접 2골을 넣었던 경기를 제외하면 공격진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죠. 그래서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무릎 부상 후유증과 맞물려' 팀의 주축 선수 대열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수원은 지난해 이관우가 잦은 무릎 부상으로 3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정규리그 10위로 부진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는 정규리그 꼴찌로 추락하면서 2008년 정규리그 우승팀의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습니다. 급기야 윤성효 감독을 영입하면서 패스 게임 부활을 발판으로 명예회복에 어느 정도 성공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관우처럼 팀의 골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플레이메이커의 부재가 아쉬웠습니다. 김두현은 예전에 비해 궂은 역할이 많아졌고, 백지훈은 기복이 심한데다 최근 폼이 떨어졌고, 마르시오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죠. 이관우의 존재감이 아쉬웠던 이유입니다.
물론 이관우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2007년 뇌진탕 이전의 폼을 그대로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풀타임 출전은 아니더라도 경기의 흐름을 수원쪽으로 단번에 돌려놓으며 공격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커 본능은 여전했을지 모릅니다. 1년의 무릎 부상 공백 끝에 복귀했던 지난 5월 5일 대전전에서 절묘한 패싱력을 앞세워 경기의 페이스를 이끌었듯, 이관우의 클래스는 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윤성효 감독이 이관우의 부상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죠. 수원 전력에서는 여전히 이관우의 존재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관우의 재기 가능성은 좀 더 두고봐야 합니다. 내년이면 33세가 되는데다 전반적인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30대 중반에 접어듭니다. 과거의 민첩한 몸놀림으로 볼을 다루고 상대 배후 공간을 파고드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무릎 부상이 잦았음을 상기하면 전성기 시절의 경기력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일지 모릅니다. 이관우가 현역 선수로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거두려면 부상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관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관우는 축구팬들의 성원과 지지를 다시 얻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부상을 당했지만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재활에 충실했고, 다시 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지녔기 때문에 복귀전 맹활약을 벼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그동안 선보이고 싶었던 경기력을 축구팬들에게 과감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결코 거역되지 않을 것입니다. 별 중에서 가장 밝다는 '시리우스'라는 자신의 별명처럼, 축구팬들의 관심을 다시 사로잡아 그라운드에서 그 누구보다 멋진 노장 투혼을 과시하리라 믿습니다. 이관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는, 별은 쉽게 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