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두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블루 드래곤' 이청용(22, 볼턴)의 '코리안 더비' 첫 맞대결이 성사 됐습니다. 두 선수가 나란히 그라운드를 밟아 서로 다른 클럽 소속으로 활약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직접적인 볼 경합을 펼친것을 비롯 파울까지 범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인상깊은 장면을 축구팬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두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함께 호흡했던 40분의 시간이 가슴 뭉클했습니다.
박지성과 이청용은 26일 저녁 8시(이하 한국시간) 리복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이청용이 볼턴의 오른쪽 윙어로 선발 출전하여 후반 47분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면 박지성은 후반 7분 교체 투입했습니다. 두 선수가 몸담고 있는 맨유와 볼턴은 2-2로 비겼습니다. 전반 5분 볼턴의 잿 나이트가 선제골을 넣은것을 비롯 전반 22분 맨유의 루이스 나니, 후반 21분 볼턴의 마르틴 페트로프, 후반 28분 맨유의 마이클 오언이 골을 기록하고 사이좋게 2골을 나누면서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특히 볼턴은 이번 경기 이전까지 최근 맨유전 11경기 중에 10번을 패했던 통계적인 열세를 이겨내고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슈팅 숫자에서 15-13(개)으로 근소하게 앞섰고 점유율 34-66(%), 패스 시도 181-462(개)의 열세를 나타냈음에도 경기 흐름에서는 맨유와 대등한 접전을 펼치는 비약적인 성과를 일구었습니다. 반면 맨유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3승3무를 기록했는데, 3승을 홈에서 기록했고 3무를 원정에서 추가하면서 '원정에 약한' 면모를 이겨내는데 실패했습니다. 두 팀의 팽팽한 접전 때문인지, 박지성과 이청용의 코리안 더비는 막상막하의 흐름이 두드러졌습니다.
성장 입증한 이청용, 제 몫 다했던 박지성...두 선수 모두 인상적
단순한 경기 출전 시간을 놓고 보면 박지성보다는 이청용의 승리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이청용은 선발, 박지성은 교체 출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기 출전 시간만으로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혹은 중하위권에 속한 클럽, 박지성은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는 프리미어리그 우승권 클럽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박지성은 지난 23일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에서 75분 동안 뛰었고 오는 30일 스페인 발렌시아 원정 선발 출전이 유력하기 때문에, 볼턴전 교체 출전이 거의 예고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두 선수 모두 팀을 위해 잘 싸웠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능숙하게 소화했습니다. 이청용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맨유에 기꺼이 덤벼들었다(Willing to run at United)"는 평가와 함께 평점 7점을 부여 받았고, 박지성도 "맨유가 반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Helped United fight back)"며 이청용과 똑같이 평점 7점을 기록했습니다. 스카이스포츠의 평가를 놓고 보면, 이청용은 볼턴의 공격을 주도하는 '주연' 역할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고 박지성은 동료 공격 옵션들이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며 '조연'에 충실했습니다. 서로가 팀 내에서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고 비교적 선전했기 때문에 두 선수의 대결은 무승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청용은 나날이 향상된 공격력을 바탕으로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임펙트를 과시했습니다. 후반 21분 오른쪽 측면에 있을 때, 후방에서 날아든 롱볼을 받아 엘만더에게 얼리 크로스를 연결했고, 엘만더가 왼쪽 측면에서 달려들던 페트로프에게 왼발로 횡패스를 이어준 과정이 결국에는 골로 이어졌습니다. 이청용의 발에서 시작된 공격 전개가 볼턴의 골이 되었죠. 그동안 동료 선수의 패스를 받는 움직임이 능동적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맨유전에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 경기력을 바탕으로 얼리 크로스 같은 빠른 볼 처리 및 판단력에 의한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청용의 인상깊은 공격 장면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전반 27분 페트로프의 왼쪽 크로스가 올라올 때, 박스 가까이에서 비디치의 마크를 따돌리기 위해 옆쪽 공간으로 빠지며 공중볼을 따낸 뒤 헤딩슛을 날렸고, 30분과 42분에는 2선 중앙에서 엘만더에게 정확한 스루패스를 연결하면서 볼턴의 공격 기회를 열어줬습니다. 후반 9분에는 에브라와 하프라인에서 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몸싸움에 밀리지 않고 끝까지 볼을 지켰고, 27분에는 에반스의 공을 빼앗아 자신이 정면에 있던 엘만더에게 패스를 연결하며 슈팅 기회를 유도했고, 31분에는 박스 왼쪽 바깥에서 나니를 따돌린 뒤 엘만더에게 크로스를 정확하게 연결했습니다.
특히 전반 19분 상황은 프리미어리그에 완전히 정착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소유하고 루니와 맞닥드리면서, 뒷쪽으로 물러나서 방향 전환한 뒤에 자신의 앞쪽으로 오버래핑하던 스테인손에게 롱패스를 정확하게 연결했죠. 루니는 볼턴전에서 부진했지만 타고난 몸싸움과 파워를 자랑하는 선수입니다. 체격이 왜소한 이청용이 불리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담대하게 볼을 지켜내면서 공격을 전개하는 민첩함과 발재간을 과시했습니다. 지난 시즌 상대 수비에 일방적으로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올 시즌에는 그것을 대비하는 개인 능력이 부쩍 향상됐습니다.
한편 박지성은 왼쪽 윙어로 출전했던 긱스의 햄스트링이 좋지 못한데다 경기력까지 부진하면서 후반 7분 교체 투입했습니다. 25분 플래처 대신에 오언이 교체 출전한 이후에는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습니다. 베르바토프-오언이 투톱, 마케다-나니가 좌우 윙어를 소화하면서 박지성이 중앙에서 뛰게 되었죠. 왼쪽 윙어로서의 박지성은 12분에 부정확한 크로스를 날렸고 3분 뒤에는 로빈슨-리켓츠를 제치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과정에서 볼을 놓치는 바람에 맨유의 공격이 끊어지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왼쪽과 상대 문전을 부지런히 오가며 나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신쪽에 대한 기동력을 키우는 긍정적인 흐름을 연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후반 21분 볼턴 페트로프의 골 장면을 박지성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페트로프가 박지성을 제끼고 과감한 오른발 슛으로 플래쳐의 몸을 맞추는 골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페트로프에게 달려들지 않았다면 그 상황은 여지없이 노마크 상황 이었습니다. 오셰이가 자신의 매치업 상대였던 페트로프를 사전에 놓쳤던 것이 문제였죠. 이날 오셰이는 페트로프 봉쇄에 실패한데다 공수 양면에 걸쳐 활동 폭을 넓히지 못하면서 수비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박지성은 페트로프와 맞닥드리면서 볼을 빼앗지 못했지만 그의 슈팅 타이밍을 한 박자 늦춘것은 긍정적 이었습니다. 다만, 그 슈팅이 플래쳐의 몸에 맞는 운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뿐이죠.
후반 25분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한 이후에는 수비에 집중하면서 맨유의 빌드업을 직접 전개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습니다. 상대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착실히 커버 플레이를 펼치면서 두 번이나 공격을 끊었습니다. 그동안 4-2-3-1 또는 4-3-3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인상깊은 활약을 펼쳤지만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볼턴전에서의 수비적인 경험이 앞날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40분에는 후방에서 롱볼이 날아들 때 이청용과 공중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발을 높게 드는 바람에 파울을 범했습니다. 볼턴과 2-2로 맞선 상황에서 맨유의 공격이 무산되었지만, 이청용과 볼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그 장면은 국내 축구팬들을 사로 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팀의 공격 분위기를 조성하는 움직임 또한 긍정적 이었습니다. 후반 34분 하프라인 정면에서 마케다와 2:1 패스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마크 데이비스의 파울 및 경고 카드를 유도하며 프리킥을 얻었습니다. 1분 뒤에는 스콜스가 박스 왼쪽 부근에서 중거리슛을 날리기 이전에, 직접 문전으로 이동하여 볼턴 수비수들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하여 스콜스의 슈팅 기회를 이끌어내는 자신만의 이타적인 기질을 연출했습니다. 이날 맨유가 전체적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를 펼쳤지만 박지성은 제 몫을 다하며 팀에 헌신하는 자세를 나타냈습니다. 이청용과의 코리안 더비가 팽팽한 접전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박지성이 교체 멤버로서 기대 이상의 폼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