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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대표팀과 맨유 사이에서 놓인 고민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지난 19일 라이벌 리버풀전 결장은 의외였습니다. 그동안 강팀에 강했던 면모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현지 언론에서 박지성의 선발 출전을 예상했지만 실상은 18인 엔트리 조차 이름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언론에서는 박지성의 리버풀전 결장 원인에 대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박지성의 출전 여부에 일희일비했던 언론의 보도는 여론에서 곱지못한 시선을 받았지만, 리버풀전 결장은 언론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이 제기하는 박지성의 리버풀전 결장 원인은 '공격력 임펙트 부족' 입니다. 경기의 흐름을 결정지을 과감한 움직임 및 공격 포인트 생산이 팀 내 주력 공격 옵션들보다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지성은 공간 창출 및 오프 더 볼에서의 움직임, 종 방향의 활동 패턴, 부지런함을 강점으로 삼으며 이타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문제는 그 빈도가 너무 높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팀이 골을 필요로 하거나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에서 박지성을 제외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결국에는 '박지성은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선입견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언론의 보도는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언론들은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컨디션입니다. 박지성이 국내에서 치러지는 대표팀 경기에 차출된 이후 컨디션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선수 본인이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기용 될 이유가 없었죠.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오랫동안 유럽에서 뛰었기 때문에 시차 적응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며 대표팀 차출 이후 컨디션 저하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실제로 박지성은 대표팀 동료 이청용에게 23세가 넘은 이후부터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에 무릎 부상 재발 가능성까지 덧붙이면, 박지성의 컨디션 저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은 올 시즌 들어 최상의 몸 상태로 경기에 임한적이 없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일정을 소화하면서 다른 시즌에 비해 휴식기가 넉넉하지 못했고, 8월과 9월에는 A매치 나이지리아전과 이란전 출전을 위해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한국과 잉글랜드를 오갔기 때문에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나이지리아전과 이란전 이후에 열렸던 뉴캐슬전과 에버턴전은 결장했거나 후반 막판에 교체 투입했습니다. 대표팀 차출 이후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을 맨유가 의식해서 선발 제외를 택한 것입니다.

문제는 박지성이 다음달 12일 A매치 일본전 출전을 위해 또 다시 한국땅을 밟아야 합니다. 아직 대표팀의 일본전 엔트리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엄연히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데다 일본전은 한국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입니다. 물론 일본전은 평가전에 불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일본전은 대표팀의 2010년 A매치 일정을 마감하는 경기이고 라이벌전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조광래 감독이 최정예 엔트리를 구축 할 것입니다. 내년 1월에는 아시안컵을 치르는 만큼, 일본전을 통해 아시안컵 우승을 대비하겠다는 대표팀의 계획에는 박지성이 포함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8월-9월-10월에 한 달 간격으로 대표팀에 차출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맨유에서의 정상적인 일정 병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맨유 입장에서도 손해입니다.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발목 골절 부상으로 내년 2월에 돌아오기 때문에 로테이션에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합니다. 박지성-긱스-나니 만으로는 윙어 숫자가 적은 것이 사실이죠. 더욱이 긱스는 올해 37세 선수로서 체력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박지성이 평소보다 더 많은 경기에 뛰어야 합니다. 리버풀전전 같은 경우에는, 긱스가 체력적으로 충전이 된 상황이었고 박지성은 4일전 레인저스전에서의 몸놀림이 무거웠기 때문에 결장이 불가피 했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박지성의 올 시즌 행보가 지난 시즌과 비슷합니다. 대표팀 출전에 따른 컨디션 저하 때문에 결장하거나 또는 교체 투입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난 시즌 중반까지는 맨유가 속공에서 지공 형태의 점유율 축구로 전환했기 때문에,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의 선택에 의해 제외된 케이스가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9월-10월 국내에서 A매치를 치렀던 컨디션 저하가 결정적 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무릎이 나빠지면서 퍼거슨 감독이 무리시키지 않으려고 했죠.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박지성의 팀 내 입지를 연관시켜 '박지성 위기설'을 제기했지만, 실상은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9월말에는 독감까지 겹쳤습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내년 1월 아시안컵에 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맨유가 박지성의 아시안컵 출전을 동의하는지는 아직 입장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박지성은 아시안컵 출전과 동시에 맨유의 1월 일정을 포기해야 합니다. 아시안컵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똑같은 대륙 대항전이기 때문에 박지성 같은 유럽파들의 대표팀 차출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박지성이 맨유의 박싱데이를 병행하는 강행군을 치르며 아시안컵에 참가하기 때문에, 그 대회가 끝나면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 맨유에 복귀합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기까지 적잖은 노력을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 시점에서 결장 또는 후반 교체 출전이 불가피한데, 국내에서 '박지성 위기론'이 불거지거나 부추기는 것은 곤란합니다.

또한 박지성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출전이 이루어지려면 대표팀이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시안컵 이후에는 대표팀이 최소 1년 동안 큰 대회를 병행하지 않기 때문에 박지성을 차출할 명분이 약합니다. 조광래 감독은 지난달 30일 이란전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박지성이 브라질 월드컵에 필요한 선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을 위해서 박지성을 거의 매 경기에 차출하거나 중요도가 낮은 경기에 출전시키면, '내년이면 30대가 되는' 박지성의 맨유 행보가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대표팀 은퇴 시기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자서전에서 밝혔듯이), 그를 체력적으로 힘들게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이러한 현실을 피하기 위해 맨유를 떠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른 유럽팀으로 이적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 입니다. 대표팀 출전을 위해 유럽에서 국내로 이동하는 것이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아시안컵 이후의 박지성이라면, 적어도 1~2년 동안은 체력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맨유에 전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수 본인이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국내 축구계가 인지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박지성은 대표팀과 맨유에서 거의 매 경기 뛰는 것은 컨디션 때문에 힘들며 지난 시즌에도 그랬고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의 발전을 바란다면, 섣부른 위기론으로 흔드는 일은 없어야 겠습니다.